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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운을 부르는 외교관 - 이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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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을 부르는 외교관

이원우

1988년 제22회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31년 간 외교관으로 활동한 저자가 미국, 영국, 러시아 등지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외교적 사례를 중심으로 교섭의 기술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가 외교관이 되기 전 글로벌 기업인 한국IBM에 입사해 3년 반을 근무하면서 배웠던 LSP(Logical Selling Process)라는 교섭기술로 외교 현장의 난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생생히 담아내고 있어 교섭에 대한 기술은 물론 우리나라 외교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동해병기의 기회는 누가 어떻게 날려버렸는가, 한러비자면제협정은 어떻게 진행되었고 고위공직자 외유감시 프로그램은 왜 폐기되었는지 등 이 책에 소개된 36개의 외교 에피소드는 현장 교섭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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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례들을 분석해 보면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한니발과 프랑스의 경우에는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과거에 자신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 준 방법에 집착하여 대패大敗를 하게 되었다. 이 경우에는 흥부와 놀부가 동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의 경우는 이순신 장군이라는 흥부가 한산도에서 거둔 대단한 승리를 본 선조와 원균이라는 놀부가 흥부의 전술을 흉내 내어 대함대를 이끌고 부산까지 가서 왜군 함선들을 섬멸시키려다 오히려 가는 동안 매복하여 기다리고 있던 적군에 의해 전멸당한 사례인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교섭의 기술’은 우리 주위에 있는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좋은 상태로 유지시키면서도 만약 일이 잘못되어 위기 상황에 봉착하게 되더라도 현장에서 즉시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노하우를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LSP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약자에게 필요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천 냥을 빌린 사람에게 필요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라뽀는 상대방이 호의적인 태도로 진지하게 들을 수 있는 사전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이 교섭의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날 저녁 주재관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해 설득력 있는 반론, 즉 반론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그들도 기존의 반대 입장을 번복할 확실한 이유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자신들의 부처를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러 비자면제협정 추진과정의 사례는 큰 영향력을 가진 주재관들을 설득하는 데 라뽀는 물론 반론대응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외교부 본부에서 1년 반 동안 IVI 업무를 하면서 느낀 것은 끝없는 절망감이었다.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예산당국으로부터도 버림받았던 IVI는 수천억 원 규모에 달하는 예산을 확보해야 했지만 이는 누구의 눈에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시도했던 미국인 독지가에게 호소하는 방법은 기적과도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인은 인도주의적 사업에 호의적일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을 하게 된 것은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해 보라는 교섭기술의 원칙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외교현장은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해야 하는 것을 늘 실천해야 하고 경험하게 된다. 상대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첫 번째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입장에서 대화하는 것이 다. 두 번째는 상대방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얘기하는 것이다.

D의 말처럼 미국 정부에서 발간하는 세계지도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CIA 지도를 지칭하는 것인 만큼 여기에 동해가 병기된다면 미국 정부에서 동해를 병기하기로 결정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미국지명위원회에서 ‘( )’ 괄호 병기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확인한 것도 상당한 수확을 거둔 것이라 생각되었다.

프랑스가 외규장각 서적 5,000여 권을 불 태웠던 것을 를 통해 공개적으로 방송한 것은 그동안 문화선진국인 프랑스가 인류의 공동유산인 《외규장각 의궤》를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해오던 논리에 대한 효과적인 반론대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해외출장정보 사이트에 대한 강력한 지지는 반대여론을 일거에 잠재웠다. 얼마 뒤 우리 외교부의 L 차관은 국무회의에서 해외출장정보 사이트에 대하여 브리핑하였고 외교부 대변인실에는 사이트 운영팀이 신설되었다. 그렇게 해서 외교부 내에서도 철없는 사업, 무모한 사업으로 치부되어 폐기 일보 직전이었던 해외출장정보 사이트는 노무현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가장 성공적인 혁신 사례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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