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여자아이는 길게 땋아 내린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가닥 뽑아서 매슈에게 내밀며 말했다.
“아저씨, 이게 무슨 색이라고 생각하세요?”
매슈는 지금까지 여자의 머리카락 색깔을 구별해 본 경험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빨간색 아니냐?”
여자아이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요, 빨간색이에요. 주근깨나 녹색 눈, 말라깽이인 것 따위는 상상으로 지워 버릴 수 있어요. 살결은 장밋빛이고, 눈은 아름다운 별빛 같다고 상상할 수 있단 말이에요. 그렇지만 이 빨간 머리만은 상상으로도 지워지지가 않아요. ‘자, 내 머리는 깊은 밤처럼 까맣고, 까마귀 깃털처럼 검다.’ 하고 상상을 해 봐도 자꾸 사실이 떠오르거든요. 아마 평생을 안고 갈 슬픔이 될 것 같아요.
둘이 집 근처의 오솔길까지 왔을 때, 갑자기 앤은 마릴라에게 기대면서 손을 잡았다.
“집으로 돌아온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에요. 진짜 자기 집 말이에요. 저는 이제 초록색 지붕 집이 너무너무 좋아요. 지금까지는 아무 곳도 좋아할 수가 없었어요. 내 집 같은 생각이 드는 곳이 없었으니까요. 아, 마릴라 아주머니, 전 정말 너무 행복해요.”
앤의 가냘프고 작은 손이 손바닥에 닿았을 때, 마릴라는 온몸이 따뜻해지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 이것이 모성애인지도 모른다. 마릴라는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고, 마음을 녹이는 것 같은 감미로움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마릴라는 앤의 말을 꿈꾸는 것 같은 얼굴로 듣고 있었다.
“그래선 안 된다, 앤. 나 때문에 네가 희생을 하다니.”
“아니에요. 조금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해 온 대로 공부를 계속하면서 이 소중한 초록색 지붕 집을 지키자는 얘기예요. 아, 이것저것 계획이 많아요. 아주머니, 저 좋은 선생이 될 거예요. 제가 퀸 학원을 나올 때는 제 앞날이 곧게 뻗은 길처럼 느껴졌어요. 저 끝까지 한눈에 다 보이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지금 길모퉁이에 와 있는 거예요. 모퉁이를 돌아가면 다음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잖아요. 그렇지만 틀림없이 제일 좋은 것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거기에는 거기대로 신 나고 좋은 점이 있을 것 같아요.”
마릴라는 되살아난 듯 기쁜 모습이었다.
기억에 남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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