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내 삶의 스케치를 매일 조금씩 그려보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돌아보며 그저 생각나는 대로, 좋은 일, 나쁜 일 모두 썼어요.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지요. 다 우리가 겪어내야 하는 일들입니다. 나의 삶을 돌아보니 하루 일과를 돌아본 것 같은 기분입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마쳤고 내가 이룬 것에 만족합니다.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합니다.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어요. 결국 삶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언제나 그래왔고, 또 언제까지나 그럴 겁니다.
봄이 되면 참 할 일이 많습니다. 이른 봄, 아직 눈발이 흩날릴 때 숲으로 가서 그해 처음으로 피어난 아르부투스 꽃을,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그 꽃을 찾아다니거나 갯버들을 꺾던 그날들이 그립습니다! 그럴 때면 하느님의 뜻 가까이, 대자연 가까이에 다가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지요. 생각해보면, 대자연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고 아름다움과 평온을 간직한 곳이며, 삶의 소음에서 벗어나 고요해지기 위해 간절히 가고픈 그런 곳이 아닐까요.
나는 다혈질처럼 흥분해서 난리를 피운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도 그런 적이 없어요. 화가 나면 그저 가만히 머릿속으로 ‘이쉬카비블’이라고 말해요.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엔 흔히들 쓰는 표현이었고, ‘악마에게나 잡혀가라’와 비슷한 의미라고 하더군요. 사람이 흥분을 하게 되면, 몇 분만 지나도 안 할 말과 행동을 하게 되지요. 하지만 벌컥 화를 내버리는 게 앙심을 품고 꽁해 있는 것보다 나을 때도 있습니다. 꽁해 있다 보면 자기 속만 썩어 들어가니까요.
애나가 집을 떠나기 전에 나는 처음으로 투표를 했습니다. 나는 여자도 투표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일하는데 목소리를 못 내서야 되겠습니까? 남자보다 일을 잘 하는 여자도 얼마든지 있고요. 여자가 가정을 돌보아야 한다고 해도 가정을 돌보는 것에 관한 자기주장을 펼 수 있어야 하지요. 투표권을 갖게 된 이후 여성들은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내 경우엔 노년에 접어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그림을 조금씩 그리긴 했지만요. 그런데 한번은 여동생 셀레스티아가 놀러와서 내 털실 그림들을 보고는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언니, 털실로 그림을 수놓는 것보단 물감으로 그리는 게 더 예쁘고 더 빠를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동생 말대로 했어요. 소일거리 삼아 그림을 시작했습니다. 수를 놓는 일이나 그림을 그리는 일이나 내게는 다 똑같았어요.
그다음엔 진 헐리가 유명해지니 기분이 어떤지, 내 그림으로 만든 크리스마스카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더군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아, 유명세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고요. 그보단 다음엔 어떤 그림을 그릴지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싶은 게 정말 많거든요. 크리스마스카드에 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데, 애리조나주에 사는 손녀딸이 나를 놀리더라고요. 빗자루가 아니라 붓 자루를 타고 전국을 날아다니는 마귀할멈이라고.”
이튿날인 5월 15일 일요일에는 트루먼 여사가 우리를 블레어하우스로 초대해 차를 대접해주었습니다. 차를 다 마셔갈 무렵 요란하게 천둥 번개가 치는 바람에 모두들 소파에 앉아 비가 그치길 기다렸어요. 옆에 앉은 트루먼 대통령이 내게 “이 건물은 워낙 커서 피뢰침이 많으니 겁먹지 마세요”라고 하더군요. 이 할머니가 겁먹을까봐 걱정이 되었나 봅니다.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꼭 내 아들 같더군요. 나는 피아노 한 곡을 연주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피아노를 연주해주었는데, 참 듣기 좋았습니다.
내가 만약 그림을 안 그렸다면 아마 닭을 키웠을 거예요. 지금도 닭은 키울 수 있습니다. 나는 절대로 흔들의자에 가만히 앉아 누군가 날 도와주겠거니 기다리고 있진 못해요. 주위 사람들에게도 여러 번 말했지만, 남에게 도움을 받느니 차라리 도시 한 귀퉁이에 방을 하나 구해서 팬케이크라도 구워 팔겠어요. 오직 팬케이크와 시럽뿐이겠지만요. 간단한 아침 식사처럼 말이에요. 그림을 그려서 그렇게 큰돈을 벌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늘그막에 찾아온 유명세나 언론의 관심에 신경 쓰기에는 나는 나이가 너무 많아요.
이 나이가 되니 세월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네요. 차라리 열여섯 살 때가 내 나이를 가장 실감했던 것 같아요. 화이트사이드 부부를 떠날 무렵 나는 성숙했고 평온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난 늘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나는 내가 늙었다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아요. 손주 열한 명과 증손주 열일곱 명을 둔 할미이지만요. 참 많이도 두었네요!
기억에 남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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