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역량껏, 이미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삶이 아무렇게나 돼도 상관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픈 게 좋은 사람, 힘든 게 좋은 사람이 정말 있긴 할까. 이미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는 서로에게 ‘노력’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얼마나 가혹하고 무의미한 일인지, 이제는 나도 좀 알 것 같다. 안 그래도 아픈데 이게 다 네가 더 노력하지 않아서 아픈 거고, 안 그래도 힘든데 네가 더 노력하지 않아서 힘든 거라니. 노력. 그 말이 주는 무력감, 자괴감, 그리고 상처를 안다. 그래서 나는 희귀병 진단을 받고도 기뻤고,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어, 이 긴 글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_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중에서
사는 게 참, 힘들죠?
하지만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왜 이렇게까지 ‘나만 힘든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걸까?
_ ‘나도 그래, 그래도 너는…’ 중에서
나만 힘든 사람들은 또한 대부분, 자연스럽게 그다음 순서인 “그래도 너는…”이란 말로 넘어갔다. ‘그래도 너는, 결혼도 안 하고 혼자 사니까 얼마나 편해. 그래도 너는, 회사도 안 다니고 자유롭게 일하니 얼마나 좋아. 아파도 출근해야 하는 사람이랑 똑같니’ 화제를 돌려볼까 영화 얘기를 꺼내도, ‘그래도 너는, 영화 볼 시간도 있어 좋겠다.’ 괜히 식물 얘기를 꺼내도, ‘그래도 너는, 여유가 되니까 화분도 들여놓고 그렇지.’ 그래도 너는, 그래도 너는, 그래도 너는….
타인의 삶에선 장점만 쏙쏙 뽑아내는 그 탁월한 재능이, 자신의 삶에선 급격히 빛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늘 신기했다.
그런데 나는 사실, 욕심이 없는 게 아니다. 욕망의 형태가 조금, 다를 뿐이다. 내 욕망의 사이즈가 유난히 작아서, 여기 조금 뒷줄에 서 있는 게 아니다. 어느 자리에서나 주인공이 되어 대화를 이끌어가고 싶은 욕망보다는, 조용히 듣고 싶은 욕망이 더 강할 뿐이다. 누가 날 알아봐 주길 바라기보다는, 내가 그들을 관찰하는 쪽이 더 즐거울 뿐이다. 유려한 말과 뛰어난 재기로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쪽보다는, 작은 내 방에서 긁적거린 소박한 몇 줄의 글로 손을 내미는 게 그나마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또한 그렇게 내 자리에서, 내 몫의 삶을, 잘 살아내는 것도 만만치 않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나처럼 조금 다른 형태의 욕망을 가진 사람들도, 그 욕망을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이 조금 더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_ ‘타나카군은 항상 나른해’ 중에서
도움을 받는 데, 조금 더 익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_ ‘도와달라는 말을 왜 안 해요?’ 중에서
도와달라는 말을,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고맙다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받은 도움으로,
조금 더 밝은 사람이 되고 싶고,
조금 더 마음이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럼 누군가 내게 도움을 청할 때도,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손을 내밀 수 있지 않을까. 아슬아슬 버거운 삶을 견뎌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나 또한 작은 힘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일어나면 일단, 창을 열고 환기를 하며 침대 정리를 한다. 누군가에게 칭찬받기 위해서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잘 정리된 침대 이불을 걷으며 그 안으로 쏙 들어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넷플릭스나 왓챠를 보는 그 게으른 시간이,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다. 내가 느리게 느리게, 조금씩 조금씩, 계속 움직이며, 게으른 애들 중에 제일 부지런하게 사는 이유는, 사실 그 하나다. 나를 달래기 위해서. 나를 우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겐 너무 행복한 그 게으른 시간을, 죄책감 없이 만끽하기 위해서.
_ ‘나는 참 게으르고, 참 부지런하다’ 중에서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씩 지워가고,
_ ‘닥터 하우스의 소거법’ 중에서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하나씩 지워가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지금, 지금의 내 삶을 살고 있다.
하나씩 지워간다는 것이, 꿈이 더 작아지고 삶이 더 초라해지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언제쯤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도 알아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하나씩 지워간다는 것은, 초라해지는 게 아니라 그저 달라지는 것뿐이었다. 하나씩 지워간다는 것은, 불행해지는 게 아니라 그저 ‘나는 사실 이런 사람이었구나’를 깨달아 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다들 어떻게 견디고 있는 걸까?
_ ‘10만 개의 구름방울’ 중에서
머릿속의 물음표는 자꾸만 늘어갔다. 잠들지 못한 채 한참을 뒤척거리며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길을 걷다가도 문득 일을 하다가도 문득 답이 없는 문제 속에 갇힌 듯 자꾸만 내쉬어지는 그 한숨을, 겨우 한고비 넘어온 것 같은데 또다시 시작되는 그 수많은 하루하루를, 다들 어떻게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기억에 남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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