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리뷰

항구의 사랑 - 김세희

728x90

항구의 사랑

김세희

책 읽으러 가기

책속에서

쟤가 항도여중에 다니던 박인희라고, 누군가 일러 주었다. 3년 사이에 인희는 우리 시의 여학생들 사이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특정한 부류의 아이들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 된 모양이었다. 당시 인기를 끌던 가수들처럼 칼머리를 하고 커다란 옷을 입고 건들거리며 돌아다니는 아이들. 나도 그 아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내가 다닌 중학교에도 그런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 아이들은 ‘이반’이라고 불렸다. 당시에 난 레즈비언이라는 말을 몰랐다. 하지만 이반이라는 말은 잘 알고 있었다. 여자끼리 사귀는 아이들은 전부 이반이라고 불렸다.

저런 애들 때문에 진짜 동성애자인 아이들이 피해를 입는다고 규인은 말했다. 동성애자들에 대해 편견을 만들고 이미지를 흐려 놓는다고. 중학교 때 친한 친구가 ‘진짜 동성애자’였다고 했다. 규인은 인희 같은 애들이 진짜 동성애자가 아니라 유행에 따라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뭔가 남과 다른 걸 하고 싶고, 관심을 끌고 싶고, 우쭐해하려고 그러는 거라고 말이다. 칼머리, 힙합 바지, 그런 게 그 표시였다.

그녀는 다시 뒤로 물러났다.
“근데 너 눈이 진짜 땡그랗다.”
그러고는 주위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 꼭 토끼 닮지 않았냐? 맞지?”
이상하게 뭐라고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 연습이 시작되었는데 그날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쪽을 향해 앉아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 그녀의 말과 행동이 계속해서 재생되었다. 얘 꼭 토끼 닮지 않았냐. 얘 꼭 토끼 닮지 않았냐.

가끔 그 애들이 부러웠다. 그건 종교가 없는 사람이 가끔 신자들을 부러워하는 심리와 비슷한 데가 있었다. 1초도 빠짐없이 나를 주시하고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 주는 신이 있으면 사는 일이 한결 든든하지 않을까.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는 상관없다. 그걸 믿으면 얼마나 위안이 되겠나. 그가 실제로 그걸 믿는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는 눈동자 같은 신의 존재를 느끼며 힘을 내어 하루하루 살아갈 테니 말이다. 그 애들은 날마다 반복되는 강도 높은 수험생 생활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연인 관계를 누리고 있었다.

이 책을 추천한 크리에이터

이 책을 추천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