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리뷰

냉정한 이타주의자 - 윌리엄 맥어스킬(William MacAskill)

728x90

냉정한 이타주의자

윌리엄 맥어스킬(William MacAskill)

무분별한 선행은 오히려 무익할 때가 많다. 실효가 전혀 없거나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선행 사례는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아프리카 물부족 국가에 식수 펌프를 보급하려 했던 '플레이펌프스인터내셔널'은 선의와 열정만 앞세운 사업 운영으로 결국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으며 폐업했다. 저자는 광범위한 사업을 전개하는 월드비전, 옥스팜, 유니세프 등 거대 자선단체도 효율성이 떨어지긴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보건사업에 비해 비용은 더 많이 들고 효율은 더 떨어진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에도 재해구호에 전력을 기울이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개인 차원의 선행도 효과가 없기는 매한가지다. 공정무역 제품 구매도, 노동착취 제품 불매도, 온실가스 감축 노력도 소용이 없다는 수치가 넘쳐난다.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이타적 행위가 실제로 세상에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 냉정하게 따져 봐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은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냉정한 판단이 앞설 때라야 비로소 우리의 선행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책 읽으러 가기

책속에서

당신이 자선단체에 얼마간의 돈을 기부하려 한다고 치자. 아이티 지진 구호활동을 펼치는 단체에 기부하면 재난 희생자들을 도울 수 있다. 이는 우간다의 에이즈 퇴치나 당신이 사는 동네의 노숙자 돕기에 기부할 돈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당신의 선택에 따라 생활이 개선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한 군데를 선택하기보다 차라리 모든 단체에 빠짐없이 기부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기부할 돈을 더 마련하거나 기부금을 쪼개 몇 군데로 나눠 보내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가진 돈과 시간은 제한돼 있고 당신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따라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당신은 누구를 도울 것인가? 저마다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 처해 있고 우리의 행동에 따라 삶이 더 개선될 수 있는, 도움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누구를 도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결정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결정이다.

어떤 사람이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사육되는 동물의 고통을 덜어 주려는 생각에 닭가슴살 대신 채소를 구입한다. 그렇다고 상황이 달라질까? 당신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1명이 오늘부터 닭가슴살을 구입하지 않는다 해도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변함없이 닭고기를 구입한다면 식용으로 도살되는 닭의 수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슈퍼마켓에서 닭고기 반입량을 결정할 때 닭가슴살 1인분 매출이 감소한 사실에 신경이나 쓸까? 하지만 수천 명, 수백만 명이 닭가슴살을 사지 않으면 수요가 감소하므로 식용으로 사육되는 닭도 줄어들 것이다. 이때 우리는 역설에 직면한다. 개인은 변화를 일으킬 수 없지만 수백만 명의 개인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역설 말이다. 그런데 수백만 명의 행동은 수많은 개인들의 행동이 한데 모인 총합이 아닌가. 이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해답은 기대가치에 있다.

어떤 행위의 잠재력을 평가할 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리가 없다'는 이유로 묵살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상식이 된 대다수의 윤리적 관념들도 과거에는 매우 급진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여성, 흑인, 비이성애자nonheterosexual 도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생각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여겨졌다.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1790년 미 의회에 노예제 종식을 청원하면서 철벽같은 반대에 부딪쳤다. 의회는 이틀간 논쟁을 벌였고 노예제 옹호론자들은 '노예 소유주에게는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인종이 뒤섞이면 미국의 가치와 특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결국 노예제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그 같은 반대론은 용납하기 어렵다. 여성, 흑인, LGBT(성소수자)의 평등권을 쟁취하기 위해 힘쓴 운동가들은 승리가 눈앞에 보였기 때문이 아니라 목표를 이뤘을 때의 보상이 매우 컸기 때문에 활동을 전개해 나간 것이다.

당신이 맥Mac을 살지 PC를 살지 고민 중이라고 하자. 당신은 어떤 요소를 고려할까? 아마 디자인과 편리함,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의 가격을 비교해 볼 것이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비는 얼마인지, CEO 연봉이 얼마인지는 따져 보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소비자 입장에서는 돈을 지불하고 구입할 상품만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상품 제조사의 세세한 재무 정보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애플이 거액의 연봉을 지급해 유능한 관리자들을 경영진으로 영입한다면 애플 제품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오히려 이를 좋게 볼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을 위한 상품을 살 때도 기업의 재무건전성에 신경 쓰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위한 상품을 살 때는 왜 그래야 할까? 다소 어이없는 예를 들어 보자. 내가 배고픈 경찰들에게 도넛을 나눠 주는 자선단체를 설립했다고 하자. 사명감에 불탄 나머지 사업 경비 중 0.1퍼센트만 간접비로 쓰고 나머지 비용은 나눠 줄 도넛을 사는 데 쓴다. 게다가 단체의 CEO인 나는 보수를 전혀 받지 않는다. 나는 훌륭한 단체를 설립한 걸까? 앞서 봤듯 가장 중요한 건 해당 자선단체가 가져올 '영향'이다. 당신의 기부금 100달러로 무엇을 하는지, 그 결과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답이 뻔한 질문 같지만 실제로 단체가 하는 일은 예상과 딴판인 경우가 허다하다. 나만 해도 선진국의 의료 자선단체 상당수가 마케팅과 웹사이트를 통해 연구 활동을 강조하면서도 실상 연구비로는 극히 일부만 할당하고 여타 사업에 나머지 기부금을 쏟아 붓는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가령 미국암학회American Cancer Society는 사업비의 43퍼센트를 환자 지원에, 21퍼센트를 예방에, 14퍼센트를 검진 및 치료에 사용하고 연구비로는 22퍼센트만 투입하고 있다. 아이스버킷 릴레이로 유명한 ALS협회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ssociation (미국루게릭병협회)는 사업비의 41퍼센트를 대중 및 전문가 교육에, 24퍼센트를 환자 및 공동체 지원에 투입하고 연구비로는 35퍼센트만 집행한다. 연구비 비중이 낮다고 해서 이들 단체에 기부하지 말라거나 해당 단체가 기만적인 마케팅 전략을 쓴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당신의기부금이 연구비가 아니라 기타 여러 사업에 분산된다는 걸 알면 이들 단체를 다르게 평가할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널리 보급된 방법 중 대다수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 그중에서도 잘 알려진 방법이 전자제품을 쓰지 않을 때 전원을 꺼 두라는 지침인데 실제 효과는 미미하다. 휴대폰 충전기를 1년 내내 꽂아 두는 것보다 뜨거운 물로 목욕 한 번 더 하는 게 탄소발자국을 더 늘린다. 대기전력 소비의 주범인 TV 플러그를 1년 내내 꽂아 두는 것보다 자동차로 2시간 달리는 편이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한다. 방에서 나갈 때 전등을 끄라는 조언도 효과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전등이 가정용 에너지 사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3퍼센트다. 집에 아예 불을 켜지 않고 살아도 탄소 배출량을 감축시키는 효과는 미미하다. 비닐봉지 사용은 어떨까? 비닐봉지를 전혀 쓰지 않아도 연간 감축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100킬로그램CO2eq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도 크게 부풀려 잡은 수치이지만 이마저도 당신의 연간 탄소배출량 중 0.4퍼센트에 불과하다. 현지 생산 제품을 구매하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것도 과장된 얘기다. 식품 생산으로 생겨나는 탄소발자국 중 10퍼센트만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고 80퍼센트는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실 국내산인지 수입산인지를 따지는 것보다 구매하는 식품 종류가 더 중요하다. 수입 식품을 전혀 사지 않는 것보다 일주일 중 하루는 붉은색 육류 및 유제품을 먹지 않는 것이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데 더 효과적이다. 수입 식품보다 국내산 식품의 탄소발자국이 더 큰 경우도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북유럽인들이 자국에서 생산한 토마토를 먹으면 스페인에서 수입한 토마토를 먹을 때보다 탄소발자국이 5배 커진다. 온실재배에 필요한 난방 및 조명 시설 가동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량이 수송에 따른 배출량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윤리적 소비 물결이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고 생각할 만한 까닭이 있다. 바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도덕적 허가moral licensing ' 효과 때문이다. 이는 착한 일을 한 번 하고 나면 이후에 선행을 덜 실천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 하는 경향을 말한다. 도덕적 허가 효과는 사람들이 실제로 착한 일을 하는 것보다 착해 보이는 것, 착한 행동을 했다고 인식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보여 준다. 에너지절약 전구를 구입하는 행위로 '내 몫을 했다'고 생각하면 조금 뒤에 잔돈 몇 푼을 훔쳐도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이 흔들리지 않는다. 도덕적 허가 효과는 결심을 비틀 수 있다. 다른 사람이 효율적인 선행을 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향후 남을 돕는 횟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이타적 행위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고 한다면 의미가 없다. 작은 선행에서 출발해 이를 발판 삼아 앞으로 더 효율적인 선행을 실천할 수 있도록 틀을 마련해야 도덕적 허가 효과를 방지할 수 있다. 비효율적인 이타적 행동이 문제가 되는 건 이 때문이다. 착한 일을 했다는 생각에 취하면 이후에 효율적인 이타적 행동을 할 여지가 줄어들 수 있다.

피터는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훗날 지니게 될 영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보니 로스쿨은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매력이 훨씬 떨어졌다. 한 가지 경로에 모든 공력을 집중시켜야 할뿐더러 매우 제한적인 전문기술을 익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3년 후에는 엄청난 빚을 떠안게 될 터였다. 같은 기준으로 보면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시장조사 분석가가 비영리 단체보다 더 유망해 보였다.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며 직접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시장조사 분석가로 일하며 많은 돈을 기부하는 쪽이 영향력은 더 컸다) 졸업하자마자 바로 비영리 단체에 들어가는 것보다 우선은 영리기업에 취직하는 게 장기적으로 유용한 기술들을 익히면서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길인 듯했다. 그래서 피터는 대학 4학년 때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술을 익히는 데 전념했다. 덕분에 그는 신용이 준우량near-prime 등급인 사람들에게 온라인 대출을 제공하는 시카고의 한 신생업체에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취직할 수 있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가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앞장서는 곳이긴 했지만 그에게 열려 있는 진로 가운데 가장 효율적인 경로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프로그래밍 및 통계 기술을 익히고 사업 수완과 금융 경험을 쌓아 두면 훗날 그에게 다른 기회가 열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자유시간도 넉넉해 비영리 분야도 계속해서 탐색해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면 향후 비영리 단체로 아예 전직할지, 현업에 종사하면서 기부를 위한 돈벌이에 집중할지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이 책을 추천한 크리에이터

이 책을 추천한 포스트

미끄럼틀 설계 대참사

미끄럼틀 설계 대참사

그럴듯해 보이는 아이디어도 현실에서는 전혀 그럴듯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해롭기까지 한 경우도 많다. 아래에 나온 그럴듯해 보이는 미끄럼틀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런 짧은 비디오는 웃자고 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은 생각보다 …

클라라 '연탄 봉사 주작 논란'에 네티즌 저격 사진 추가 공개

클라라 '연탄 봉사 주작 논란'에 네티즌 저격 사진 추가 공개

클라라의 연탄 봉사 활동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오자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클라라는 9일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연탄 봉사를 한 사진을 올렸다. 사진에는 미소를 지으며 연탄이 얼굴에 묻힌 사진이 올라왔다.참고 클라라 인스타 @actressclara"작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