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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어른이 되지 못하고 어른으로 산다는 것 - 박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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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지 못하고 어른으로 산다는 것

박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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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사랑해요. 나의 보물, 나의 엄마>
당신은 내가 덤벙거릴 때마다 조심하라며 손을 잡아준 사람, 당신은 내가 아플 때마다 밤새 나의 곁에서 이마를 짚어준 다정한 사람, 당신은 옷이 낡아도 아직 오래 입을 수 있다고 말해도 내 옷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서 입혀주던 사람, 당신은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해맑지만 나를 볼 땐 늘 근심으로 바라보던 사람, 당신은 좋은 걸 손에 얻으면 제일 먼저 내게 쥐어주던 사람, 당신은 이 세상 그 어떤 보물보다 내가 더 빛난다던 사람, 당신은 나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오직 나만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 당신은 몸이 아픈 줄도 모르고 밤마다 내 교복을 다려주던 사람, 당신은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 아무것도 삼킬 수 없으면서 내가 어린 마음에 사 갔던 결혼기념일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먹었던 사람, 당신은 내가 돌아간 후에 병실에서 새벽 내내 토한 미련한 사람, 당신은 그로부터 며칠 후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떠난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 당신은 떠나기 전 남은 힘을 다해 손 편지를 쓴 사람, 당신은 당신이 없는 세상에 남겨질 나를 상상하며 몇 번이고 살고 싶다 기도한 사람,
당신은 지금껏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다정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람.

<애늙은이>
나와 한 번쯤 대화를 거친 이들에게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편이다. 세월에 묻은 흔적을 바탕으로 내 겉모습이 아닌 속에 담긴 모습이 어딘가 많이 낡아 있다는 뜻이겠다. 어른이 되어가는 건 구슬프고 외로워지는 일 중 하나이지만 애늙은이가 된다는 건 아직 어리숙한 면을 두고 어른인 척 애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가끔은 강한 어른인 척 애쓰는 걸 포기하고 그냥 누군가의 품에 고개를 숙인 채 기대어 있고 싶다. 아무런 투정 없이 가만히 기대어 누군가의 따스한 온기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

<낯선 말>
돌이켜보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한 위로의 말은 꺼려지는 일처럼 어렵게 느끼는데 주변 사람들에겐 이상하리만큼 애를 써가며 위로의 말을 전한다.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말부터 네가 행복해야 주변 사람들도 웃을 수 있다는 말들을 거리낌 없이 꺼내곤 한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얼마나 잘하고 있으며 얼마나 행복해하고 있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그래서인지 나를 위한 말은 어딘가 많이 낯부끄러운 일 같다. 그러다보니 누군가가 내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 나를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누군가가 없으면 세상이 곧 무너지기라도 할 듯 불안할 만큼 스스로를 돌볼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조금씩 내 곁을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내주면서 생각했다.
‘나는 언제쯤 나를 위한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160page
나는 항상 당신 위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당신이 흘리듯 뱉은 말을 냉큼 주워 담아 기억하는 그런 사람이었죠. 이따금 당신이 내게 권태로워질 때면 말 못 할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상상만큼이나 무서웠죠. 내게 그런 존재인 당신을 두고 시들어가는 애정에 대해 어떠한 말도 어떠한 문제도 내세우지 못했습니다. 그저 묵묵히 당신을 믿고 기다렸죠. 하지만 그런 당신은 나를 혹처럼 생각했는지 속 시원히 떼어내고 떠나버리더군요. 내 침묵과 관심을 단 한 번도
살펴주지 않은 채로.
나는 그런 당신을 사랑했던 만큼 당신이 불행하길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부디 언젠가 나와 정반대인 사람을 만나 당신이 매달리고 애원하는 처지가 되길 바랐습니다. 누군가가 곁에서 묵묵히 믿어주고 섬세히 살펴준다는 게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깨달았으면 했습니다. 받는 사랑보다 외롭고 아픈 주는 사랑으로 힘겨워하고
그때 내 아픔을 깨달았으면 했습니다.
나도 참 못난 어른입니다.

기억에 남는 문구

소중한 순간은 늘 추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