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리뷰

소설 보다 : 겨울 2020 - 이미상,임현,전하영

728x90

소설 보다 : 겨울 2020

이미상,임현,전하영

책 읽으러 가기

책속에서

언제나 베푸는 쪽이 베풀어짐을 당하는 쪽보다 나은 법이지. [……] 나는 고마워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누구에게도 아무것에도 고마워하지 않을 거야…… 누군가 멜론을, 누군가 햄을, 누군가 하다못해 방울토마토를 꺼냈다. 수진은 와인과 멜론과 햄을 먹으며 고마워하지 말자고 다시금 다짐했다. 고마워하는 순간 더는 이곳에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감사는 감정이고 감정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수진은 그만 고마워져버렸다. 여러 날을 거쳐 여러 일을 겪으며 그렇게 됐다. 그리고 고마움은, 염치는, 때로 사람에게 가장 헐하고 험한 일을 시킨다.
이미상, 「여자가 지하철 할 때」

나는 진실의 반대말이 주로 거짓이나 가짜라고 배워왔는데, 살면서 오히려 무지에 더 가까운 개념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나는 종종 진실을 알고 있다고 오해할 때가 많았고, 그것이 잘못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은 대체로 무언가를 더 알게 되었을 때였으니까.
임현,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

트위터에서 난리 폭풍이 일어난 것과 상관없이, 현실세계에서는 그보다 더 두드러지는 말들이 장피에르를 호위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가 얼마나 훌륭하고 자상한 선생이었는지, 얼마나 투쟁적이고 명망 있는 인물이었는지, 이십대 초반의 장피에르가 써서 전설로 회자되었다던 (혁명과 지성 운운하는) 선언서가 역사를 뚫고 나와 다시금 공유되었다. 그리고 으레 그렇듯 장피에르에 대한 비판 뒤에 누군가의 ‘진짜’ 의도가 숨어 있다고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다. 어쨌거나 이 모든 비난과 옹호, 논쟁과 음모에도 불구하고 그는 안정적인 삶 속에 있었다. 그는 많은 것을 이루었다. 그는 여전히 교수님이고, 자식이 있고, 이혼당하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는 여전히 그를 따르는 이들이 넘쳐났다. 한때 그가 대항했던 권위는 그 자신이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커스터마이즈되어 찬란히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전하영,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기억에 남는 문구

무서운 것은 인생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이 누군지, 혹은 뭘하는지 모른 채
살아왔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것이 그의 내면에 전율을 일으켰고,
그는 그것을 자신이 느낀 대로
정확히 표현할 단어조차 잘 찾아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