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누구 닮았어
-<누구 닮았어: 그런 말을 들을 만해> 중에서
➊ 당신은 그것을 닮았다는 말을 듣기에 마땅하다.
이 표현에는 상대방이 그 대상과 비교되는 일이 문제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예컨대 누군가의 닮은꼴로 히틀러나 골룸, 연쇄살인마가 떠오른다면 입 밖으로 꺼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비교 자체가 상대에 대한 모욕이란 걸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언급을 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닮은꼴로 대조되기에 무리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기준은 말을 뱉는 사람이 정한다. 따라서 ‘닮았다’라는 말은 그 대상이 멋있거나 예쁘다고 늘 듣기 좋은 게 아니다(들어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를테면 장동건의 눈을 떠올리며 닮았다 하더라도 평소 자신의 부리부리한 코가 싫었던 상대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김고은의 단아하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닮았다는 의미에 상대는 평
소 불만이었던 외꺼풀을 떠올릴 수 있다. 내가 보기엔 썩 닮지도 않았는데 그런 말을 하면 이 사람이 내 얼굴을 두고 아무 말이나 하나 싶어 성의 없음을 느낄 것이요, 닮았다 한들 내가 그들보다 빼어나긴 쉽지 않으니 보급형 장동건, 10미터 앞 김고은 정도의 언짢은 수식만 얻을 것이 아닌가. 심지어 닮은꼴이 불미스러운 일에라도 휘말리면 은근히 내 일처럼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농담이야
-<농담이야: 스스로 부여하는 면책특권> 중에서
➊ 농담이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할 말이라는 건 알고 있어.
➋ 그래도 농담이니까 괜찮지?
‘농담이야’라는 표현에는 일종의 자체 부여 면책특권이 있다.
내가 뱉은 실언에 상대가 완전히 반응하기 전, 스스로를 평온한 위치로 옮겨두고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다. 상대는 당장의 불편감을 해소하기 위해 평화로운 그곳을 들쑤셔야 하니 사소한 농담 하나도 웃어넘기지 못하는 좀생이가 되기 쉽다(혹은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 되거나). 그래서 순간 대응력이 없는 사람들은 농담으로 들을 수 없는 그 농담을 농담으로 넘겨야 할 때가 많다. 농담이니까.
저는 별거 아니에요
-<저는 별거 아니에요: 진짜예요. 운이 좋았다니까요> 중에서
➋ 저는 이런 식으로 과대평가 받고 싶지 않아요.
습관적으로 자신을 낮게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특히 주변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들었을 때 유독 몸서리치며 부인하곤 하는데, 이런 태도를 스스로는 겸손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겸
손은 ‘자신의 대단한 면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지 ‘부족한 면에 집중하며 낮추는 것’이 아니다. 나를 낮춰서는 상대를 존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나에 대해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 그 관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평가라는 게 당사자의 생각이나 가치관도 담겨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나를 너무 낮추면 먼저 높였던 상대방도 덩달아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좀 비약적인 예시이긴 하지만) 누군가 워런 버핏에게 “돈 걱정 없게 만드는 그 능력이 참 부럽고 대단하다.”라고 말했을 때 “그렇지 않다. 살아보니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더라.”라고 답한다면 어떨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답변이 실감나지 않을 것임은 물론, ’부럽다‘는 표현이 민망해짐과 동시에 ‘돈은 중요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내포했던 상대는 묘한 상실감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널 위해 하는 말이야
-<널 위해 하는 말: 그게 곧 날 위하는 길> 중에서
➊ 너에게 이로운 내용이야. 아닐 가능성은 없어.
➋ 널 위하는 내 마음도 알아줘야 돼. 그러니 잠자코 내 충고를 새겨들어.
당신의 충고는 옳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설령 옳다고 해도 그것이 상대에겐 이롭지 않을 수 있다. 충고가 입을 떠나 상대의 귓전에 도달한 순간부터 그것을 취할지는 오롯이 그의 몫인 셈이다.
하지만 ‘널 위해’라는 말을 가미하면 상대는 그 얘기를 무조건 이롭게, 혹은 고깝게 들어야 할 것 같은 기로에 놓이게 된다. 정상적인 판단의 기회를 잃게 되는 셈이다. 상대를 위하든 그렇지 않았든 이 말의 효력은 그렇다.
나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이
-<나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이: 가장 안 괜찮은 게 나야> 중에서
➊ 나는 괜찮은데, 나 빼고는 다 안 괜찮다더라고.
➋ (사실은 내가 싫어. 내가 괜찮으면 말할 이유도 없거든. 갈등은 피하고 싶으니 이 사실은 숨길게.)
이 표현의 위력은 범위를 알 수 없는 불특정 다수가 화자의 뒤에서 나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고 생각게 하는 점이다. 그들에게 일일이 정말이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같잖은 충고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딴지, 심지어 직접적인 비난조차도 이 말이 달라붙으면 쉽게 흘려보낼 수 없게 된다.
누군지조차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차가운 눈빛을 상상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부정성 효과가 시작된다.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유사한 장면을 잘게 곱씹는가 하면 본래 편하게 나누던 대화에서도 전에 없던 신경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상한 딸기가 잔뜩 뿌려졌다.
내가 너 정도 됐으면
-<내가 너 정도 됐으면: 어차피 쉽게 얻은 거잖아?> 중에서
네가 가진 그것들, 원래부터 있던 거잖아.
이 표현은 상대가 가진 좋은 성향이나 환경이 별 노력 없이 원래부터 탑재되어 있던 것이고, 따라서 그 좋은 패를 갖고도 한 발짝 못 나서는 꼴이 무력하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상대가 어떻게 현재에 도달했는지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다.
도미노 게임을 상상해보자. 처음 놓는 도미노와 가장 마지막에 놓는 도미노가 같을까. 놓는 행위만 따지면 유사하지만 정작 그것을 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다. 이 마지막 도미노는 지난 고행 후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이자 도전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누군가 나타나 그깟 플라스틱 하나 놓는 일이 뭐 어렵냐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나는 더 그래
-<나는 더 그래: 현재형 나 떄는> 중에서
네 고민은 별게 아니야.
누군가의 고민이나 고통을 뭉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건 앞 단원에서 다루었던 ‘나 때는’이다. 그런데 이 표현을 사용하려면 내가 상대방보다 앞선 경험이 있어야 하고, 따라서 같은 연령대보다는 세대가 다른 선후배 사이여야 사용이 수월하다. ‘나 때는’이라는 표현은 ‘나는 더 그랬어.’로 풀어서 말할 수 있고, 이는 과거형이기 때문이다. 동시대를 살며 유사한 상황을 겪고 있는 친구나 동료 간에 사용하려면, 이것을 현재형인 ‘나는 더 그래.’로 변형해야 한다.
내가 뭐랬어?
-<내가 뭐랬어: 그럴 줄 알았다니까> 중에서
내 말이 맞지 맞지 맞지? 그럴 줄 알았다~! ㅋ.
이 표현은 일종의 ‘무속인 화법’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의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주로 활용되는데, 언젠가 내가 예언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간질거리는 입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역할을 한다. 재미있는 건 딱히 정확하게 예언한 적이 없더라도 이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듣는 입장에서 그게 결국 맞았는지 여부가 별 의미 없기 때문이다. 지금 눈에 뵈는 게 없을 테니.
사람은 실패를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찾는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그 과정의 소요 시간은 저마다 차이가 있다. 누군가는 실패를 인정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한 반면, 누군가는 그 실패를 통해 얻은 것들을 헤아리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한다. 어떤 방식이든 다음 장면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들이다. 그런데 ‘내가 뭐랬어’는 상대가 실패를 의미화하는 속도를 인위적으로 재촉하는 역할을 한다. 의미를 찾는 길목에 비스듬히 누워서는 ‘어, 여기야. 이쪽이야. 빨리 와.’ 하는 셈. 아마 들어서려던 이들 중 몇은 그 모습을 보고 돌아설지도 모른다.
솔직함이 오해 받는 상황들의 공통점은 그것이 편향적인 솔직함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내면에 있는 다양한 생각 중 나를 대변할 수 있고 유리한 부분만 솔직함으로 꺼내는 것이다. 이런 식의 태도는 무의식 중에 ‘솔직함’ 자체의 가치만 입증하기 위한 방향으로 작동한다. 누군가에게 불편감을 야기하거나 부정적인 면만을 꼬집게 되는 것이다. 한두 번이야 상대방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겠지만 그 분위기가 역전되는 건 한순간.
-<그냥 솔직하게 말한 거야: 거짓말이 아니라고> 중에서
당신이 스스로 솔직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내가 선택적인 솔직함을 사용 중인 건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만약 긍정적인 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말들이 솔직하게 들릴 것 같지 않아 꺼내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오늘은 당신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사랑과 감사를 전해보자. 솔직함에도 균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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