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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 백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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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백은선

[가능세계] 시인 백은선의 첫 산문집

“이제 내 꿈은 내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폭력의 세계를 찢고 쏟아져나오는 누구보다 과감하고 솔직한 고백들


2012년 [문학과사회]로 데뷔한 이후 백은선은 파토스 넘치는 강렬한 언어로 ‘백은선 마니아’를 무수히 양산해냈다. 2017년 “가장 뛰어난 첫 창작집”에 수여하는 김준성문학상을 받은 첫 시집 [가능세계]는 신인의 시집으로는 이례적으로 작가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등단 이후 시인이 발표해온 산문들과 함께, 2020년 4월부터 기대를 모으며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한 글을 묶는다. 산문의 첫인상은 상쾌하다. 반짝이는 삶의 순간들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는 백은선의 문장들은 부끄러움과 즐거움, 후회와 안도 사이를 오가며 산문을 읽는 재미를 일깨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폭력의 경험이 깊게 새겨진 슬픔과 분노가 자리잡고 있다. 누구에게나 익숙할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슬프고 기쁘고 이상하고 안도하고”라는 양가감정은 스스로에 대한 긍정과 슬픔이 혼합된 감정일 것이다. 양가감정 안에 담긴 ‘나’는 약하고, 악하기에 그대로 묻어두고 모르는 척하고만 싶다. 그럼에도 백은선은 자신의 내면을 누구보다도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밝히며 진정한 ‘나’를 찾아간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게 하는 안팎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해 긍정해내는 길을 몸소 증명하며 걸어간다.

나는 내가 싫다. 나는 내 삶이 싫으면서 좋다.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면서 안도한다. 나는 시인같이 말하는 걸 즐기지만 속으로는 시인같이 말하는 나를 약간 우스꽝스럽다고도 생각한다.
(…)
엄마로 시인으로 작가로 가사노동자로 선생으로 살면서 매일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습니다. 그래, 그게 숙명이라면 파편의 대마왕이 되고 말 거야. (13~15쪽, 「시와 산문 사이를 우왕좌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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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최고 좋았던 건 내 글 읽고 뭔가 쓰고 싶어져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혹은 글을 쓰게 되었다는 리뷰들이었다. 그것은 최고의 칭찬입니다. 늘 쓰고 싶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다짐, 다짐.

한편으로는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이혼한 여성도 세상에 있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런 전례를 보지 못했던, 혹은 어머니가 쉬쉬하듯 소문을 물어나르며 ‘누구는 이혼했다더라’ 같은 방식이 아니라,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말하고 싶다. 그런 가까운 사람을 보고 자란 사람은 훗날에 다를 거라고 생각하니까.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나는 그 말을 좋아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동의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어설프게라도 계속 이야기해서 말할 수 없는 것을 약간이라도 드러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목소리가 많아져야 그 안에서 중심에 가장 가까운 것들의 접점이 점점 보이게 되고 결국에는 말할 수 없는 것의 실체가 드러나는 게 아닐까.

나는 이것 또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지나갈 거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 아플 땐 실컷 아파하고 기쁠 땐 열심히 기뻐하면서 일희일비하며 시를 쓰자. 모든 순간이 중요하니까.
그리고 그 순간순간이 모여 우리를 만드는 거니까. 나는 아직도 어렵지만 곁에서 아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것도 내 고통스러운 일상 중 하나니까.

“누군가가 우리가 대화 나누는 모습을 소리없이 영상만 본다면 우리가 아주 재미있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는 힘들고 죽고 싶었던 얘기를 하면서도 자꾸만 비실비실 웃음이 새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늘 그런 식으로 나를 방어하려고 했던 것만 같다. 나는 늘 재미있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했고 어딜 가든 웃긴 애로 보이고 싶어했다. 이런 일들이 있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세상은 원래 그런 거고 난 그게 우습다고 온몸으로 외치고 싶었던 것 같다.

종종 술에 취했다가 깨어나면 지난밤의 일이 모두 꿈같을 때가 있다. 그날이 그랬다. 나는 완전 까먹고 있었는데 착실히 아침에 일어난 친구가 말했다. “기억나? 어제 그 여자?” 나는 아, 그 여자 기억나지 하고 대답했는데 “그후에 우리 그 여자 찾아서 온 아파트를 돌아다닌 것도 기억나?” 하고 친구가 말하자 갑자기 주마등처럼 기억이 머릿속을 휙 지나갔다. 그 여자가 가고 나서 내가 그 여자 아무래도 이상하다, 진짜 귀신인지도 모른다. 그 여자가 어떻게 알고 우리집을 찾아왔겠냐 너무 이상하지 않냐 아무래도 우리가 그 여자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취해서 우기는 바람에 우리는 핸드폰 빛을 플래시 삼아 각층을, 그 여자를 찾아 엄청 진지한 탐정처럼 “그 여잔 여기 없어” 이러면서 복도를 휘젓고 다녔다고 한다.

습관적으로 메일 말미에 쓰던 말 ‘평안하고 무탈하시기를 기원합니다’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요즘은 매일매일 마음으로 깊이 깨닫고 있다. 평안하고 무탈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것이다. 그것은 고요한 행복의 편안함이 아니다. 투지를 불태우며 투쟁해야 얻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제는 그것을 안다.

모두 함께 단결합시다. 전 세계의 동지들이여.

기억에 남는 문구

의심이란 내게 나쁜 말이 아니다.
의심 없이 믿는 것이 나쁜 것이다.
의심이란 면밀히 살펴보고 검증 하는절차니까.
그건 더 오래 바라 본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