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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인생의 밑줄 - 김경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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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밑줄

김경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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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여러 이유나 핑계로 미루거나 회피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은 꿈이 있다. 힘을 다 써버리기 전에 꼭 한 번 해야겠다는 의지를 벼르며 사는 것, 끝내 시도하는 것, 그것이 나에 대한, 내 삶에 대한 예의다.

확률을 따지기 전에 그것을 해낼 내적 추동력이 내 안에 남아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게 없는데 무턱대고 덤벼봤자 헛심만 쓸 뿐이다. 그게 머지않아 소멸될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자리 박차고 도전에 나서는 게 좋다. 빵을 손에 쥐는 동시에 먹기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패한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도전해보지도 않은 게 두고두고 후회되지 않기 위해서는 도전해볼 일이다. 그 도전이 내 삶을 역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금상첨화요, 마다 할 일이 아니다. 도전이 성공할 확률이 1퍼센트라 해도 로또 당첨 확률보다는 훨씬 높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가치 있는 것을 향한 태도”라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일찍이 말했다. 아무리 남루해도 그것을 똑바로 마주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 소로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당당하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격려한다. ‘하찮은 나’에게 굴복하지 않는 ‘당당한 나’를 구현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그래야 한다.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꿀 일이다. 예전의 중년은 삶의 쇠퇴기며 마감을 앞둔 시기다. 유엔에서 지정한 연령대를 따지면 이제 청년 후반기의 삶이다. 그러니 중년의 삶은 늦지 않았다. 의무의 삶은 대강 이행했다. 계속해서 의무의 삶을 찾으면 또다시 외롭고 허전하고 상실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당당하게 권리의 삶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의무도 다했는데 내 삶에 충실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중년을 넋두리로 보내기에는 남은 시간도 많고 아깝다. 숭숭 뚫린 구멍 채우며 살아가면 될 일이다. 더 늦기 전에.

제주 오름의 상당수는 민둥산처럼 보인다. 거창한 숲이 없고 낮은 관목이 듬성듬성 있고 푸른 초원이 완만한 경사면을 덮고 있는 듯 보인다. 감춘 길이 없어서 사방으로 연결되고 하늘과 직접 교통한다. 작은 동산 같지만 오름이 하나의 소우주인 까닭은 그것 때문이다. 삶에서도 백두산 한라산처럼 웅대한 산과 산맥을 거느린 주연만 있는 게 아니다. 모두가 각자의 삶에서 주인공이고 주연이다. 조연의 연기가 뛰어나야 영화가 사는 것처럼 내가 누군가의 멋진 조연일 때 관계의 망은 촘촘해지고 매력적이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란 말이 있다. 가까이하지도 멀리하지도 말라는 뜻이다. 멀리서 보면 존경할 인품과 흠모할 행적의 인격으로 보였던 사람도 가까이서 보면 욕망과 술수로 똘똘 뭉쳐진 인간성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상처받는다. 그러니 너무 가까이하지 말라는 충고다.

오름의 가장 큰 매력 가운데 하나는 아무도 높이를 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도 그의 직업, 학력, 수입, 인간관계 등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에 근거해서 그 사람을 판단한다. 사람이건 사물이건 어떤 지표로 가늠한다. 오름은 거대한 산맥도 아니고 고산준봉이 아닌 까닭에 높이를 따지지 않는다. 오름은 높이로 평가되는 게 아님을 사람도, 오름도 다 안다. 오름들은 높이를 경쟁하며 과시하지 않는다. 그저 수줍게, 사람들이 이름을 모르거나, 따로 이름 붙여주지 않아도 묵묵히 그곳에 존재할 뿐이다. 오름에서 의연함을 배운다.

쉼은 나를 느끼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게 빠지면 그냥 지친 몸을 쉬게 하고, 다시 충전한 에너지로 일상을 달리게 하는 열량 보충에 불과하다. 그런 쉼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나를 느끼면 저절로 존재 의미에 대해 혹은 자아실현에 대해 한 토막이라도 생각하게 된다. 그런 쉼이야말로 소중한 선물이다. 그런 쉼을 마련하면서 누려야 한다, 삶은. 이제는 그런 시간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petit’나 영어의 ‘little’ 모두 두 가지 이상의 뜻을 갖는다. ‘어리다’와 ‘작다’가 그것이다. 작가의 의도는 ‘어리다’가 아니라 ‘작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다. 비가역적이다. 그러니 책을 읽으면서 ‘그래 나도 그랬어’ 하고 위로한다. 그 어린 시절의 생각을 동심이라고 여긴다. 순수하고 맑고 깨끗했던 시절. 그러나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니 지금의 나와는 상관없다. ‘어린 왕자’가 아니라 ‘작은 왕자’다. 지금도 내 안에 ‘살고 있는’ 작은 왕자다. 그게 동심이다. 그러니 잃을 수 없다. 다만 있다는 걸 잊을 뿐이다. 동심은 ‘나인 나’가 있을 때 가능하다. 잊지 않아야 잃지 않는다.

노벨문학상을 받고 세계적인 인권사회운동을 펼쳤던 펄 벅(1892~1973)이 일흔이 되었을 때 그녀에게 물었다.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그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 데 치른 값이 얼마인데요. 나는 다시 그것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지금이 좋습니다. 지금 이 나이를 누리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겁니다.”
그렇다. 지금을 살기 위해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 내 인생에서 최상의 시간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최상의 시간인 ‘또 다른 오늘’이어야 한다. 그게 제대로 나이 들어가는 일이고 그래야 나이 듦이 즐겁다.

어중간은 한쪽에 쏠리지 않는다. 중간에서 완충의 역할도 한다. 어중간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게 아니라 이것도 품고 저것도 품는 너그러움일 수도 있다. 조직에서도 그런 인물이 필요하다. 개인에게도 그런 품성이 필요하다. 매사 경계가 또렷하고 명료한 것만 있을 수 없다. 그 경계(境界)를 허물고 경계(警戒)를 누그러뜨리는 요소와 인간이 필요하다. 내 안에 어떤 어중간이 있는가. 얼마나 넉넉한 어중간이 있는가 너그럽게 생각해볼 일이다. 가끔은 어중간한 것도 좋다. 늘 각 세우고 살 것도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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