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의 글쓰기 특강
고미숙(Ko Mi-Sook)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20여 년간의 공부공동체 활동을 통해 경험해 온 고전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비전과 노하우를 담은 책이다. 자기를 성찰하면서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매개인 말과 글을 가지고 내가 창조하고 조율하며 소통할 수 있는 능력―바로 그것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읽고 써야 한다.
특히 저자는 읽기와 쓰기의 관계에 대해서도 단순히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 한다는 정도를 넘어 “쓰기는 읽기의 연장선이자 반전이며 도약”이기에 “읽으면 써야 한다”면서, 삶과 세계에 대한 통찰로 가득 찬 고전들을 맹렬히 읽고 쓸 때, 글쓰기는 “양생술이자 구도이며 또 밥벌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책의 2부 ‘실전편’은 실제 진행했던 글쓰기 강의의 녹취록을 토대로 한 것으로, 실전 글쓰기에 도움이 될 노하우가 ‘칼럼 쓰기’, ‘리뷰 쓰기’, ‘에세이 쓰기’, ‘여행기 쓰기’ 등 네 개의 카테고리에 담겨 있다.
책속에서
“읽기가 생명의 활동이 되려면 써야 한다. 아, 여기 또 지독한 오해가 있다. 쓰기를 읽기 다음에 두는 것이다. 읽은 다음, 아주 많이 읽은 다음에야 쓰기가 가능하다는 오해 말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읽기와 쓰기는 동시적이다. 읽은 다음에 쓰는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 읽는 것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쓰기가 전제되지 않고 읽기만 한다면, 그것은 읽기조차 소외시키는 행위다. 그런 읽기는 반쪽이다. 책을 덮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저 몇 개의 구절만이 맴돌 뿐이다. 그래서 어차피 잊어버릴 거 뭣하러 읽지? 많이 읽어 봤자 다 헛거야, 라는 ‘북(book)-니힐리즘’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쓰기를 전제하고 읽으면 아주 달라진다. 부디 해보시라. 쓰기는 읽기의 방향과 강/밀도를 전면적으로 바꿔 준다. 결코 니힐리즘 따위에 걸려들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구경하는 것과 창조하는 것 사이의 차이라 할 수 있다. 구경꾼은 영원히 구경만 할 뿐이다. 창작자도 구경을 한다. 하지만 그 구경 역시 창조의 일환이다. 마찬가지로 쓰기를 염두에 두면 읽기의 과정이 절실해진다. 읽기 또한 쓰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1부 「2장 안다는 것 ― 읽고 쓴다는 것」 중에서)
“자존감을 회복하는 길도 어렵지 않다. 자신을 외부와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 계속 연결, 확충해 가면 된다. 성공과 경쟁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존재의 심층적 차원에서 ‘초연결’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 독서법이다. 내가 읽는 책이 곧 ‘나’ 자신임을 아는 것.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내가 곧 세계가 되고 별이 되고 우주가 된다. 그 자체가 이미 힐링이다. 세상을 경쟁과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내 존재의 광대무변한 토대이자 배경으로 여기게 된다. 그 유동성 속에서 자존감이 충만해진다. 그것을 누리고 싶다면? 무엇이든 ‘읽을 수 있는’ 신체가 되는 것, 모든 책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1부 「3장 읽는다는 것, 그 거룩함에 대하여」 중에서)
“읽으면 써야 한다. 들으면 전해야 한다. 공부도, 학습도, 지성도 최종심급은 글쓰기다. 다른 무엇일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런 분할선을 방치하는가? 자본의 은밀한 전략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자본은 거의 모든 장벽을 다 철폐했다. 자본의 이동에는 국경도 인종도 지역도 없다. 대신 훨씬 더 근원적이고 심오한 분할선이 있다. 상품을 만드는 자와 소비하는 자. 영화를 만드는 자와 관람하는 자. 스포츠맨과 관객, 음식을 만드는 자와 맛보는 자 등등. 이런 인식에 사로잡혀서인가. 인문학 공간에서도 지식을 전파하는 이와 지식을 구경하는 이 사이의 장벽이 견고해진 것이다. 듣는 자와 전하는 자, 쓰는 자와 읽는 자, 말하는 자와 듣는 자 - 학연, 지연, 계층보다 더 선명한 구획! 그야말로 새로운 계급의 탄생을 목격한 것이다.”(1부 「4장 쓴다는 것, 그 통쾌함에 대하여」 중에서)
“아, 그때 알았다. 글쓰기는 나처럼 제도권에서 추방당한 이들의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수행해야 할 근원적 실천이라는 것을. 인식을 바꾸고 사유를 전환하는 활동을 매일, 매 순간 수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써야 한다. 쓰기를 향해 방향을 돌리면 그때 비로소 구경꾼이 아닌 생산자가 된다. 들으면 전하고, 말하면 듣고, 읽으면 쓴다! 이것은 한 사람에게 온전히 구비되어야 할 활동들이다. 신체는 그 모든 것을 원한다! 어느 하나에만 머무르면 기혈이 막혀 버린다. 막히면 아프다. 몸도 마음도. 통즉불통(‘통’하면 아프지 않다/아프면 ‘통’하지 않는다) - 글쓰기가 양생술이 되는 이치다.”(1부 「4장 쓴다는 것, 그 통쾌함에 대하여」 중에서)
“실제로 글을 쓴다는 건 인생과 세계를 마주하는 거예요. 좀 거창해 보이지만 참 평범한 말이에요. 산다는 건 결국 누군가를 만나고 이 세상에 대해 알아 가는 과정이잖아요? 글쓰기는 그걸 언어와 문자로 하는 것뿐입니다. 해서, 글쓰기에서 제일 중요한 건 사람에 대한 관심이죠. 또 세상에 대한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게 안 되면 글이 제대로 나오기가 어려워요. 자신 안에서, 자의식의 굴레 안에서 맴돌기 십상입니다.”(2부 「1장 칼럼 쓰기: 1,800자의 우주」 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라고 하면 ‘공부를 생업으로 할 생각이 없는데 그걸 왜 읽어요?’ 이런 식으로 반문하는 분들이 더러 있어요. 이게 공부가 뭔지 모르는 겁니다. 내가 육체노동을 하든 공무원이 되든 혹은 택배를 하든 공부하지 않는 삶은 불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소외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자기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데 어떻게 자존감이 생깁니까? 자존감이 있어야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을 진실하게 대할 수 있어요. 진실한 태도를 만들어 내는 그 힘, 그게 바로 집중력이고 책을 읽어야 되는 이유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힘과 지혜는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책을 읽는다는 것, 글을 쓴다는 건 일생을 살아가면서 늘 꺼내 쓸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을 확보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이게 바로 밥벌이가 됩니다. 글을 써서 밥을 버는 것도 되고, 다른 노동을 하는 데도 그 노동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가지면 거기서 또 밥이 생기는 거죠. 이런 순환, 밥과 글과 책의 순환. 이거를 잘 염두에 두시고요. 그러면 지난주에 텍스트를 선택했잖아요. 선택을 했고, 왜 선택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서 말로 전달해야 됩니다. 가능하면 자기가 메모한 거를 참조하되 술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돼요.”(2부 「2장 리뷰의 달인-되기: 텍스트와의 ‘활발발’한 케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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