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지 않는 도시
신경진
“세상 모든 사랑은 실루엣이 없다!”
세계문학상 수상작가 신경진 신작 장편소설
도시인의 자발적인 사랑을 지지하는 현실 공감 로맨스
한국 장편소설의 지평을 연 세계문학상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은 신경진 작가가 7년 만에 발표한 화제의 신작. 스타카토처럼 끊어지는 간결한 문장력과 밀도감 넘치는 단단한 스토리텔링이 다시 한번 독자들의 곁을 찾아왔다. 특히 소재가 주는 한계성을 뛰어넘으며 세태를 관통하는 섬세한 터치와 묘사가 기존 연애소설의 경계를 완벽히 허물었다는 평이다.
작품은 최근 사회적 이슈를 일으킨 ‘자발적 비혼’과 결을 같이하고 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세 남녀의 이야기를 번갈아 전개함으로써 그 안에서 발현되는 결혼의 허울을 시시각각 파고든다. 가정의 단란함 속에 원인 모를 결핍을 느끼는 쇼윈도 부부, 사각관계라는 줄타기를 감행하는 위험한 커플, 그들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결합하는 현실 남녀까지.
작가는 성격도 문화도 판이한 이야기로 다양성과 3040세대를 다루며 미래지향적인 사랑의 결정체를 보여준다. 동시에 그 끝에 둘의 완전한 합일이 반드시 결혼으로 귀결돼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연애 아니면 결혼, 연애는 곧 결혼. 그 어디쯤에서 이분법적 세상에 회의하는 이들에게 바치는 문제작, “지금 당신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책속에서
사정이 어찌 됐든 그녀에겐 아이가 필요했다. 결혼은 종족 번식과 재산 유지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으니까. 그녀는 고통을 감내하며 남편을 받아들였다. 행복한 가정에 아이의 부재는 치명적인 결핍이었다. 미칠 것만 같았다. 한낮의 게으른 강을 내려다보며 그녀는 괜한 헛구역질로 귀머거리 삼신할미를 저주했다.
― 「타인의 침범」 중에서
하욱은 아내를 사랑했다. 이 자존심 강한 여자가 지닌 매력을 언어로 묘사하기란 글쓰기가 직업인 자신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외모가 화려하지도 내면의 개성이 특출하지도 않은 여자는 독특한 아우라로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람들은 그녀가 지닌 낙천적인 분위기에 동화돼 근거 없는 기대로 들떴다.
― 「타인의 침범」 중에서
확신과 의혹 사이를 오가는 여자의 얼굴에서 정우는 지난 시절 느꼈던 혼돈의 악취를 감지했다. 그는 여자를 이해하려 애썼다. 그녀의 불안한 시선과 겁먹은 표정은 자신이 처음 압구정동에 왔던 날을 상기시켰다. 그는 미간을 좁혀 여자의 정체를 더듬다가 기적을 본 사람처럼 얼어붙었다.
― 「신기루와 오아시스」 중에서
“나…… 태윤이에요. 기억나요?”
새해가 되자 한나는 다시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가 되었다. 시베리아의 찬바람이 점령군처럼 밀고 내려와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겨울이었다. 전기장판 위에 담요를 뒤집어쓰고 다시 인터넷 구직 사이트를 검색했다. 두 달이 채 못 돼 통장 잔고가 바닥났다. 그녀는 수치심에 떨며 엄마 신용카드로 빵과 우유를 샀다.
― 「신기루와 오아시스」 중에서
정우가 은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열기가 공기를 타고 불과 한 뼘 가까이 밀려들어왔다. 은희는 고개를 숙여 그에게 키스했다. 입술이 부드럽게 젖어 있었다. 그리고 고백이라도 하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 「신기루와 오아시스」 중에서
“오빠, 우리 결혼할까?”
찰스와의 동거는 새로운 형태의 결혼생활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주었다. 그들이 사는 20층 아파트에는 다양한 커플들이 모여 살았다. 법적인 결혼보다는 사랑해서 함께 사는 것에 만족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동성 커플, 비혼남과 비혼모, 서로 다른 인종과 나이 차를 극복한 커플. 정확하지는 않아도 다수의 파트너와 교제하는 커플도 있었다.
― 「이곳이 평행세계라면」 중에서
은희의 현실감이 미지근한 적도의 공기를 타고 그에게 전해졌다. 동수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다 불에 덴 사람처럼 깜짝 놀랐다. 그제야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사실에 허둥거렸다. 그들은 고작 하루 먹고 마시고 놀았을 뿐이었다. 사랑이 완성되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 두려움 없이 침대에 올라야 하고 결혼까지 달려가야만 한다. 그 길은 지난하다. 그들은 식후의 포만감 대신 둔중한 피로를 느꼈다.
― 「이곳이 평행세계라면」 중에서
“결혼은 사랑과는 또 다른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흔히들 두 대상을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죠. 사랑의 종착점이 결혼이라고 여기는 생각 말이에요. 하지만 결혼은 연애와 달리 관습과 제도의 문제를 동반합니다. 반면, 사랑이 결혼의 필수 조건이 된 것은 불과 얼마 안 된 일이에요. 과거에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남녀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았거든요. 어쩌면 현재의 결혼은 근대 낭만주의의 욕망이 만들어낸 사생아일지도 모르겠네요.”
― 「이곳이 평행세계라면」 중에서
기억에 남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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