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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인생은 왜 50부터 반등하는가 - 조너선 라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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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왜 50부터 반등하는가

조너선 라우시

중년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노년에게는 희망과 응원을!
슬럼프와 번아웃 탈출을 위한 최고의 팩트풀니스 인생 안내서

브루킹스연구소 수석연구원이자 저명한 언론인인 저자가 과학적 연구와 사실에 근거해 행복과 나이 듦을 둘러싼 기왕의 오해를 바로잡고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인생 여로를 바라보게 해주는 획기적인 인생 안내서를 선보인다.
청춘은 최고의 시절, 중년은 위기의 시간, 노년은 슬픔과 상실의 시대라는 고정 관념이 뿌리 깊다. 인간 발달은 성장-절정-위기-쇠락으로 이어지는 ∩ 모양을 띤다는 생각이 팩트처럼 통하고 있다. 그런데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데이터 분석을 보면 놀랍게도 인생 만족도가 40대에 최저점에 도달했다가 나이 들수록, 특히 50 이후부터 반등하는 U자 모양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최근 20년 사이 이루어진 뇌과학, 심리학, 경제학 등의 연구 성과와 약 300명에 이르는 직접 설문 조사 및 인터뷰에 근거해 우리의 마인드셋과 라이프스타일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경이로운 발견으로 우리를 이끈다. "U자 모양 행복 곡선이 우리 유전자 속에 새겨져 있다." "중년은 위기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인생 전환기다." "중년과 노년 사이에 길게는 20년에 이르는 앙코르 성인기가 존재한다." 이러한 새로운 진실 앞에 설 때 우리는 중년이 위기가 아니라 가치관이 재설정되고, 기대치가 재조정되고, 뇌가 재조직되는 리부팅기이며, 나이 듦이 힘겹고 고통스러운 짐이 아니라 인생 재창조를 위한 선물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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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프롤로그: 인생 여로의 비밀을 찾아서
이 책을 쓰기 위해 나는 많은 사람에게 설문지를 나눠 주고 현재와 과거의 인생 만족도를 점수로 매겨 달라고 했다. 인생을 10년 단위로 나눠서 0~10점으로 만족도를 평가하고, 각 10년을 표현하는 단어나 구절도 알려 달라고 했다. 칼은 40대를 두고 “혼란” “탐색” “두려움”이라는 표현을 썼다.
“왜 ‘두려운’ 거죠?” 내가 묻자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그도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 지금 인생이 엉망진창이라면 두려울 법하다. 하지만 그는 원하던 걸 다 가졌다. 아니, 그 ‘이상’을 가졌다. “내가 정신이 어떻게 된 걸까요?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죠? 매사에 적극적이고 고학력에 누가 봐도 출세한 사람이 길을 잃은 느낌이라니요. 혼자 망망대해에 떠 있는데 항구가 어딘지, 과연 항구에 닿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그런 기분이랄까…….”

흔히 청년기는 자연스러운 흥분감과 엄청난 기대감이 막대한 불확실성과 공존하는 시기다. 이런 정서가 한데 어우러져서 인생 만족도가 높아지긴 하지만 심하게 널을 뛴다. 그다음에 정착과 성취의 성인기가 오는데 그와 함께 실망감이 증가하고 낙관론이 약해진다. 하락세가 완만해도 누적되기 때문에 급기야는 골짜기로 굴러떨어진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만족감을 느낄 이유가 가장 많은데 그간의 성취를 음미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을 불신하고 거부하면서 성취감이 최저점을 찍는 중년의 슬럼프가 찾아온다. 보통은 이런 슬럼프가 몇 년간 이어진다.
하지만 한 꺼풀 들춰 보면 이 골짜기는 사실 감정의 방향이 바뀌는 ‘전환점’이다.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와중에 가치관이 재설정되고, 기대치가 재조정되고, 뇌가 재조직되면서 중년 후반에 반등이 일어나며, 그런 다음 성인기 후반에 뜻밖의 행복이 찾아온다.

1장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 인생 만족도의 놀라운 결과
“어떤 한 사람의 소득만 증가하면 그 사람의 행복도가 높아지지만 모든 사람의 소득이 증가하면 행복도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더 부유한 국가가 반드시 더 행복한 국가이진 않을 것이다.” 하긴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이역만리에 사는 사람과 자신을 애써 비교하지 않는다. 친구, 동료, 같은 국민과 비교할 뿐이다. 이스털린은 이것을 키에 비유했다. 내가 얼마나 크다고 느끼는지는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큰가에 달렸다. 내 키가 자랐어도 비교군의 키가 똑같은 수치로 자랐다면 더 커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남들은 컸는데 나는 안 컸다면 실제로는 키가 단 1밀리미터도 줄어들지 않았는데 더 작아진 느낌이 든다. 그래서 만일 모든 사람이 더 부유해지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한다면 만인이 만인과 경쟁하는 형국이 되어 그 사회는 행복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에 갇힐 수 있다.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나중에 붙은 명칭이다)은 경제학계에 일대 혁명을 불러일으킬 잠재력을 품고 있었다. 이 역설은 학계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현시 선호와 물질적 측정법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경제학자들이 사람들을 단순히 물질적으로 더 잘 살게 돕는 데 그치지 않고 더 깊은 차원에서 인생을 더 잘 향유하도록 돕고자 한다면 현시 선호가 그리는 그림은 불완전하거나 심지어는 왜곡된 것일지 모른다. 그 괴리를 좁히려면 경제학자들은 주관적인 측정법에 의지해야 할지 모른다.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왜 느끼는지를 탐색해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경제학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의 주관적 안녕을 결정하는 것은 물질적 안녕의 절대적 수준이 아니고, 타인과 비교되는 자신의 상대적 위치조차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생각하는’ 자신의 위치다.

그런데 이 목록에서 6가지 요인 중 4가지가 사회관계와 연관되어 있다. 6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사회적 지원이다. 이것을 포함해 전문 용어로 ‘관계재relational goods’(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재화-옮긴이)라고 할 사회적 요인이 총 4가지나 되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인 대부분을 차지한다. 《세계 행복 보고서》 2015년 판을 인용하자면, 인생 만족도와 사회적 유대의 강력한 연관성은 “지리와 시간의 차이를 떠나 인생 만족도 데이터에 대한 실증적 분석에서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심리학 실험 역시 동일한 결론이 나온다. 사람들은 건강과 관계 중에서 굳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몸은 좀 덜 건강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더 많은 관계를 맺었을 때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소득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미 살펴본 대로 무조건 중요하게 작용하진 않는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자신과 같은 수준이거나 더 높은 수준일 때 소득의 힘은 감소한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스테파노 바르톨리니Stefano Bartolini와 프란체스코 사라치노Francesco Sarracino가 27개국(주로 선진국)의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실제로 국민 소득 증가와 함께 인생 만족도가 증가하는 현상은 단기간(2년 정도)에만 나타나고 이후에는 사람들이 소득 증가분에 익숙해졌다.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경제 성장이 행복에 끼치는 영향은 완전히 소멸된다. 이와 반대로 어떤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강해지거나 그 밖에 여러 형태로 사회적 유대감이 강화되면 단기적으로는 만족감이 조금 증가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크게 증가한다. 이처럼 사회적 유대의 효과는 누적되고 지속된다. 소득으로 만족감을 유지하려면 계속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신뢰를 쌓고 관계를 형성하는 등 여러 형태로 사회적 지원을 확보하는 것은 행복을 차곡차곡 저축한다. (…)
진정한 부는 ‘물질적 부’가 아니라 ‘사회적 부’다.

2장 경이로운 발견: 행복 곡선을 찾아 나선 모험
2004년 《공공경제학저널Journal of Public Economics》에 발표한 〈영국과 미국의 안녕 추이Well-Being over Time in Britain and the USA〉에서 블랜치플라워와 오즈월드는 충분한 데이터를 근거로 나이가 그 자체로 행복의 결정 요인이 된다고 자신 있게 선언할 수 있었다. 이 논문에서 그들은 결혼은 행복에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실업은 매우 부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영국에서는 인생 만족도가 정체되어 있고 미국에서는 감소 추세라고(단 미국 흑인의 경우는 증가 추세), 상대 소득이 중요하다고 썼다. 그리고 나이가 인생 만족도에 독립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나이가 응답자들이 말하는 행복도에 미치는 선명한 영향이 흥미롭다. 이것은 U자 곡선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영미 양국에서 결혼, 교육, 취업 같은 주요 변수를 보정해도 여전히 나이의 영향이 나타난다고 했다. 남녀 모두 마찬가지였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회적 또는 경제적 상황이 달라진 결과로 보기도 어려웠는데 동일한 패턴이 전 세대에 걸쳐 발견됐기 때문이다. “모종의 구조적 요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심리학 문헌에서조차 명쾌한 해설을 찾을 수 없다.”
이 2004년 논문은 나이가 뭔가 심상치 않은 변수임을 세상에 알리는 선언문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우리가 얻은 결과는 인간의 안녕에서 나타나는 곡선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며, 설령 이 곡선이 인간의 삶과 사회라는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와 가까운 친족인 대형 유인원과 공유하는 생물학적 특성에서 일부 기인했을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다.”
이 논문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원숭이에게 중년의 위기라니! (…)
나는 이 유인원 연구 결과를 보고 마침내 행복 곡선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모든 것이 내가 40대에 느낀 만성적 불만은 나를 둘러싼 상황에서 기인한 게 아니며, 더 나아가 그 원인은 ‘나’, 즉 의식적이고 합리적인 내 자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거기에 유인원들이 쐐기를 박아 버린 것이다. 그러니 내가 꼭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며 살았다고 생각하거나, 인간으로서 스스로에게 실망하거나 끔찍해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불만을 느끼는 이유를 유인원들이 모르는 것처럼 나라고 꼭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만약에 어떤 이유로든 진화 과정에서 중년에 불만을 느끼는 경향이 우리 안에 깔렸다면 우리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할’ 수 있다. 대자연이 우리 안에 어떤 생리적·심리적 프로세스를 내장 장치로 설치할 때 그 원리를 꿰뚫어 보는 안목까지 함께 설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3장 나이 든다는 것의 의미: 시간, 행복, U자 곡선
처음에 이 결과를 봤을 때 나는 ‘그래서 뭐 어떻단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각 개인은 수많은 변수의 결합체다. 우리가 알고 싶은 건 그런 변수들이 연합해 만드는 결과, 즉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행복감이다. 인생에서 어떤 한 가지 요인만 중요하다고 간주했을 때 느껴질 것으로 예측되는 행복감의 수준이 아니다. 만약 스무 살의 내가 장차 마흔 살이 됐을 때 얼마나 행복하거나 불행할지 알고 싶다면 마흔 살에 결혼 생활을 잘 하고 있을지, 먹을 것은 충분할지, 건강 상태는 어떨지 등을 알아야 한다. 나이가 행복에 끼치는 독자적인 영향을 안다고 해 봤자 실제 인생에 대한 예측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이는 야구에서 투수라는 독립 변수의 영향력을 안다고 해서 어느 팀이 승리할지 예측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행복 곡선의 의의를 알려면 이 곡선이 진짜로 시사하는 바를 알아야 한다. 시사점은 바로 이것이다.
“중년에도 인생에 큰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긴 하지만 다른 나이에 비해 ‘어렵다’.”

그렇다면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단순한 운명론(“행복은 애초에 성격에 각인된 것이니까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어.”)이나 극기론(“다른 것은 우리가 어쩔 수 없으니 감정과 태도를 잘 다스려야지.”)이 아니다. 그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년에 감정적 위기나 붕괴를 피할 수 없다는 속설 역시 아니다.
행복 공식에 담긴 메시지는 내가 볼 때 근본적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지만 학계와 사회에서 그에 걸맞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견해며, 이제부터 이 책의 남은 부분에서 논해 보려고 하는 관점이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돌이키거나 나이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개인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사회 차원에서도 시간의 영향을 이해하고 거기에 적응함으로써 더 행복해질 수는 있다.

내가 ‘시간이 중요하다’고 할 때나 행복 공식의 T 항목을 언급할 때는 사실 서로 다른 이 두 개념을 뭉뚱그려 말하는 것이다. U자 곡선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 개념인 ‘나이 듦’인가? 아니면 절대적 개념인 ‘시간’인가? 답은 “둘 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4장 기대라는 덫: 중년을 괴롭히는 것들의 비밀
젊은 사람들은 항상 미래의 인생 만족도를 과대평가한다. 상당한 수준의 예측 오차가 절대 우연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일관성 있게 나타난다. 마치 시애틀 거주자들이 매일 화창한 날씨를 기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사람들에게 요청한 것이 미래의 ‘상황’에 대한 기대치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자. “5년 후의 소득, 건강, 직업이 얼마나 좋을 것으로 기대하십니까?” 같은 객관적 상황을 묻는 질문이 아니었다. 대신에 사람들은 주관적 측면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5년 후 얼마나 만족감을 ‘느낄지’ 예측해 달라는 질문과 이후에 실제로 어떻게 느끼는지 말해 달라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느낌은 자가 증식이 가능하다. 즉 실망과 후회가 불만을 키울 수 있고 역으로 불만이 실망과 후회를 키울 수 있다. (…)
슈반트는 이것을 “되먹임 효과feedback effect”라 부른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왜 불만을 가질 이유가 별로 없는데 큰 불만을 느끼고 그러다가 자신이 불만을 느낀다는 것 자체에 더 불만을 느끼는지가 어느 정도 설명된다.

“인생 만족도는 ‘현재 상황’ 빼기 ‘과거에 놓친 기회의 합’에 대한 후회입니다.” 쉽게 말해 그의 후회 함수는 실망감이 ‘누적’됨을 보여 준다. (…)
“한편으로는 과거에 대한 실망감을 강하게 느끼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증발하죠. 그래서 중년에는 과거와 미래가 모두 비참하게 느껴집니다.”

이스라엘 출신의 인지신경과학자 탈리 샤롯Tali Sharot은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에서 감정이 인지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뇌감정연구소Affective Brain Lab 소장이다. 그녀는 자신이 “낙관 편향Optimism Bias”이라 부르는 현상에 관한 연구로 특히 유명한데, 이 제목으로 저서도 출간했다.
그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긍정적 예측 오차는 생물학적 실수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각인된 현상으로 보인다. 우리를 속이고 때로는 비참하게까지 만들지만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샤롯은 “아침에 일어나서 ‘자, 오늘은 좋은 하루가 될 거야, 내가 하고 있는 걸 잘하게 될 거야’라고 말할 수 없다면 침대 밖으로 나오기가 어렵겠죠”라고 말했다.

“왜 우울한 현실주의가 중년에 더 잘 나타날 수 있죠?” 샤롯에게 물었다.
“이유는 확실치 않아요.”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뇌가 변하기 때문일 수 있다. 아니면 중년에 대체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스트레스와 불안이 낙관 편향을 감소시키기 때문일지 모른다. 또는 뻔한 말이지만 그냥 경험에서 배우는 것일 수 있다. 물론 이 모두가 이유거나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청춘에는 낙관론으로 무장하고 세상으로 뛰쳐나가 위험을 감수하며 한계에 도전하고, 중년에는 정신의 눈금을 재조정하는 것이 인간이란 종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런 연구 결과는 중년이 우울하다는 뜻이 아니다. 중년에도 낙관 편향은 존재한다. 다만 현격히 약해질 뿐이다. 우울한 현실주의가 주입됐기 때문이다.

혹시 현실주의로 가는 전환기가 황량하고 음울하게 들린다고 기죽지 말았으면 좋겠다. 비현실적 낙관론이 빠져나가는 과정은 비록 고단하지만, 그로 인해 인생을 보는 눈이 전혀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5장 나이 듦의 역설: 나이 들면 더 행복해지는 이유
중년에는 비현실적 낙관론이 쭉쭉 빠져나가면서 당장은 집요하게 느껴지는 불만감이 생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후 인생에서 의외의 기쁨을 누릴 채비가 갖춰진다. 이런 반전이 생기는 이유로는 위에서 내가 감정 절제력에 대한 증거로 제시한 현상을 들 수 있다. 경험 축적과 신경학적 발달이 맞물려 뜻밖에 우리의 정신적 회복력이 강해진 결과 스트레스를 받고 후회할 만한 상황에서 스트레스와 후회에 덜 민감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인지적’ 요인에 대한 증거 또한 많다. 노화와 행복 분야 권위자인 로라 카스텐슨 등의 연구자들이 쓰는 용어로 말하자면 “긍정성 효과”가 존재한다. 노년에는 부정적인 정보보다 긍정적인 정보를 더 많이 인식하고, 이것이 되먹임 고리를 만들어 긍정적인 감정이 더 강해진다.

나이 들면서 우리가 잃는 건 정서적 예리함이 아니라 바로 짜증과 차질에 휘둘려 하루를 망치는 경향성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기. 하루하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긍정적인 것을 음미하기. 부정적인 것에 덜 매달리기. 수용하기. 과민 반응하지 않기. 현실적인 목표 설정하기. 소중한 관계 우선시하기.
모두 현대 심리학과 고대 지혜에서 인생에 만족하기 위한 방법으로 누누이 말하는 비결이다. 그렇다고 청년기나 중년기에 꼭 철저한 현재 지향적 인간이 돼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젊을 때는 야심이 있어야 하고 사회에는 야심 찬 모험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정서적 선택성 이론을 알면 노년에 만족도가 상승하는 의외의 현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카스텐슨의 이론은 시사한다. “나이가 들면 가치관이 변한다”고.

하지만 직장, 퇴직 연금, 물리적 환경은 여전히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날이 60대 초반에 끝나는 것처럼 만들어져 있다. 요즘은 웬만한 사람은 60대 이후로도 장기간 생산적인 세월을 기대할 수 있는데, 60대가 정년이다. 노화로 일을 못 하게 됐을 때 지급되도록 만들어진 공적 연금은 실제로 그런 날이 오기 10여 년 전부터 지급된다. 그런 와중에 대중문화에서는 청춘은 기운 넘치고 행복한 시기로 인생의 절정이고, 중년에는 “위기”가 발발하고, 노년에는 심신 기능이 저하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청춘은 마음이 양극단의 감정을 오가며 고생하는 시기고, 중년은 고단하지만 건설적인 적응의 시기며, 노년은 대체로 가장 행복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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