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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오십에 읽는 장자 - 김범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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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장자

김범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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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필요하다면 이제 무쓸모에 대해, 따분함에 대해 적극적으로 긍정해 주십시오. 먹고사는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때로는 비생산적인 시간도 필요합니다. 무쓸모를 무작정 인정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쓸모와 책임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 ‘쓸모와 책임을 내려놓을 용기’에서

장자의 말에 의하면 성인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대신 하늘의 이치에 비추어 모든 것을 보고 따른다고 합니다. 하늘의 이치란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시비비를 함부로 가리지 않고, 나와 다른 누군가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포용의 자세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잔인함과 이별해야 할 이유입니다.
- ‘평범한 하루를 지옥으로 만드는 시시비비의 덫’에서

나를 비운 뒤에야, 나를 잃은 후에야 비로소 세상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쌓아 왔던 갑갑하고 답답하며 지극히 세속적인 권위와 명예, 그리고 돈에 대한 거친 생각을 비워 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나와 다른 누군가를 만날 준비가 된 것이며 그런 만남을 통해 만들어지는 소리야말로 아름다운 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오십부터는 과거의 나를 버려야 한다’에서

장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삶의 자유와 해방이었습니다. 옳고 그름을 초월하여 내 존재를 있는 그대로 깨달을 때 얻어지는 것이 자유이고 해방이라는 것이 장자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오로지 개인의 자유만을 강조한 건 아닙니다. 장자는 우리가 자유로워야 하는 이유를 세상과 관계 맺기 위해서라고 말했으니까요. 관계의 핵심은 타인에게 덕을 베푸는 데에 있습니다. 《장자》의 〈덕충부〉에서 말하려는 내용도 주로 이에 대한 것입니다.
- ‘볼 필요가 없는 것은 보지 않는다’에서

좌망은 유지(有知)의 추구가 아니라 무지(無知)에 대한 존중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좌망이 수동적인 숙명론은 절대 아닙니다. 숙명론이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긴다는 명목 아래 스스로 변화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수동적인 의미의 수용이라면, 장자가 말한 좌망은 오히려 삶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수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을 가지고 누구의 탓을 하기보다는 이를 하늘의 뜻으로 알고 그 안에서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배울 것은 배우라는 의미를 포괄하지요.
- ‘후배, 약자, 자식에게서 배울 점을 찾는다’에서

장자는 끝없는 지식을 추구하는 것보다 열린 마음으로 배워 나가는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삶의 유한성에 있을 겁니다. 끝이 없는 세상의 지식을 무작정 추구하는 건 순간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버거운 싸움입니다. 정말 알아야 할 것은 무시하고, 이미 알고 있다는 편협한 마음으로 산다면 삶은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 ‘나이 오십이 되면 자신의 지혜에 책임을 져야 한다’에서

오십 이전의 삶이라면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가도 됩니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십에는 바람을 탈 줄 알아야 합니다. 기회가 와서 바람이 불어오면 그 바람에 슬쩍 몸을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바람이 차갑고 뜨겁다고 불평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바람을 인정해 주는 것이지요.
-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에서

세상에는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고 단지 생각의 차이만 있습니다. 나와 다른 상대방과 화해하십시오. 차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오십 이후의 삶을 제대로 누리게 해 주는, 그래서 지금 당장 장착해야 할 인생의 도구입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제로 베이스입니다. 장자의 말로는 ‘비움’이라고 합니다.
- ‘존경받는 어른이 되고 싶다면 그저 존재하기만 할 것’에서

행복은 결국 나에 관한 것입니다. 정확히는 내 주변을 둘러싼 것들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관한 문제이지요. 거기에는 나태한 시간을 다루는 것도 포함됩니다. 우리는 철이 들고 나서부터 나태한 시간을 제대로 가진 적이 없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오십이 되어 시간이 주어져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지요. 나태해질 것인지 적절하게 분주해질 것인지를 결정하는 건 개인의 선택에 따를 뿐입니다. 다만 이때 무엇을 할 것인가는 중요합니다. 여전히 자기 이야기 없이 오직 남의 이야기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셈이니까요.
- ‘오십이 되면 가장 먼저 할 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밥 짓기’에서

장자는 ‘길상지지(吉祥止止)’라고 말합니다. 좋은 일은 멈춘 곳에 머문다는 뜻입니다. 행복은 비워진 곳에 머문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만족할 줄 모르면 부끄러운 일이 생기고, 그칠 줄 모르면 위험한 일이 생깁니다. 만족하고 그칠 줄 알 때 비로소 좋은 일이 쌓인다는 뜻이지요. 멈춰야 할 때를 아는 ‘지지(知止)’만큼 멈춤을 실행에 옮기는 ‘지지(止止)’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 ‘더 좋은 것으로 채우기 위해 비운다’에서

기억에 남는 문구

내가 옳다고 생각해도 그것을 함부로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건 지나침이며
불필요함이라는 것이 장자의 생각입니다.
더 나아가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라고까지 합니다.
그래서 장자는 좋은 일은 이루어지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만
한번 저지른 잘못된 일은 고치기 어려우니 
삼가고 또 삼갈 것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