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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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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어느 겨울, 한 현장실습생 아이가 죽었다. ‘겸손한 목격자’ 은유가 기록한 여기,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어떤 사람들은 왜 죽음을 통해야만 겨우 보이게 되는 것일까? 장시간 노동과 사내 폭력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현장실습생 김동준 군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해, 김동준의 어머니, 사건 담당 노무사부터, 사고로 목숨을 잃은 현장실습생 아들을 둔 아버지, 교육·노동 담론에서 배제되는 직업계고(특성화고·마이스터고 등) 재학생·졸업생들의 인터뷰를 엮었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죽음을 규명하고 애도하는 작업에서 나아가, 그와 직간접적으로 얽힌 사람들의 삶과 일, 그들이 붙들려 있는 슬픔과 분노, 기억과 희망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일상의 폭력에 무감각한 사회, 청(소)년 노동자에게 위험노동과 죽음이 집중되는 사회를 ‘겸손한 목격자’ 은유가 섬세하게 증언하며, 이 격렬하고 깊은 감정의 풍경들을 포착한 임진실의 사진이 울림을 증폭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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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특성화고 학생에 대한 편견은 대개의 편견이 그러하듯 ‘잘 모름’에서 생겨나고, 편견은 ‘접촉 없음’으로 강화된다. 어느 삼십대 남성은 나와 이야기를 하던 중 자신은 살면서 특성화고 졸업생을 한 명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와 마주보고 있던 나는 여상을 졸업했다. 그가 말하는 특성화고 졸업생이 바로 나였다. (…) 특성화고 학생은 ‘현장실습생의 죽음’ 같은 기사를 통해서만 불우한 존재로 납작하게 재현된다. 매스컴에 의해 반복적으로 호명되면서 그들이 처한 부당한 상황은 그들 삶의 기본값처럼 인식된다. 원래 불우했으니 계속 불우해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저지르는 무지와 무관심은 이렇게 폭력의 구조를 공고히 한다. ‘특성화고 학생’이나 ‘현장실습생’이라는 분류 코드의 구성원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우리 공동체에서 진지하게 시도되지 못했다. 이 아이들의 정체성이 현장실습생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죽는 순간 비운의 현장실습생으로 박제되고 만다. 그뿐인가. 죽어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 군, ○○ 양으로 불려나오기 바쁘다. 현장실습생 김군 혹은 이군이 아니라 오롯한 존재, 저마다 고유한 관계 속에서 경험과 기억을 쌓아갔던 복잡하고 다채로운 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낀 이유다. 이 아이들은 왜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 이 물음은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싶었는가를 묻는 과정에서만 조금씩 드러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라면서 언제 어떻게 배우는 걸까. 부당한 상황에서는 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위험하면, 불안하면, 힘들면 작업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회사는 그만두어도 된다는 것을.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없다는 것을.

그런데 너나없이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삶이 과연 누구에게 이득이었을까. 지금에야 그는 질문을 던진다. 아들을 잃고 묻는다. 묻고 또 물으면서 알게 됐다.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자기를 돌보고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 힘들면 회사는 가지 않아도 된다. 나를 지키는 게 먼저다. _「들어가며」

이 작지만 큰 사람들의 목소리가 우리 삶을 숙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기를, 이미 노동자이거나 언젠가 노동자가 될 아이들에게 존엄을 지키는 노동의 가치관을 심어주기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조금씩 지워주기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도 괜찮다는 가능성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예전에 아버지가 해준 얘기가 생각나요. 감나무에서 감꽃이 떨어지고 열매가 나는데 못 크는 감은 우수수 떨어진대요. 아버지가 떨어지는 건 둬야 한다고, 붙어 있어도 못 자란대요. 사람도 그렇게 떨어지는 건가, 그런 건가. 그러면 어떻게 자식을 낳아서 키워야 되는 건가….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좋아지려면 여린 사람들을 존중하고 여린 것들을 섬세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 문화가 없으니까 고인의 죽음을 두고 ‘여린 친구가 몇 대 맞더니 심약하게 죽었다. 누군 입술 터지면서 그냥 다니고 인생이 그런 거지. 다 그렇게 알고 다니는데’ 이런 해석이 나와요. (…)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일상적인 폭력 안에 놓여 있어요. 일상적인 폭력이 수많은 종류로 뻗어 있어서 온갖 죽음으로 발현되고 외로움으로 발현돼요. 우리가 얼마나 무뎌져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거예요. 이게 이 사건의 본질 중 하나예요.

제가 느낀 게 뭐냐면요. 대한민국에 살면서 말 잘 들으면 죽는다는 거예요. 말 잘 들으면 회사에서 이용해먹고 최악의 업무만 시키니까 말 잘 들을 이유가 없어요. 대한민국에서는 돈 없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어요.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을 위한 정책은 안 나와요. 왜? 정책을 만드는 사람은 다 힘 있는 사람이에요. 나올 수가 없어요. 평소 민호한테는 착하게 살고 남 해코지하지 말고 맡은 일 열심히 하고 살아라, 그렇게 말했어요. 민호는 그렇게 커줬고요. 결론은 말 잘 들으니까 세상을 등지게 되는 거예요.

취업 담당할 때 업체에 방문했는데 점심시간이 됐어요. 밥 먹고 가라고 하면 먹겠다고 해요. 단, 회사 밥을 먹겠다. 회사 밥을 먹어보면 대충 견적이 나와요. 밥에 신경 쓰는 회사는 좀 낫더라고요. 어떤 경우가 있었냐면, 동료 선생님이 실습 나간 애들을 보러 갔다가 밥 먹자고 해서 구내식당에 갔는데 지하더래요. 식당 앞에서 아이들한테 “내가 나가서 사줄게” 그랬대요. 자기는 정말 못 먹겠더래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못 버티는 것도 있어요. 최저임금의 두 배를 줘도 못 버틸 것 같아요. 근무환경도 중요하거든요. 이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열악한 부분을 최전선에서 만나는 거예요.

또 그런 일이 발생하면 샘한테 말하라 했는데 저희도 못 할 것 같다고 얘기해요.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리고 저희는 알지 못하잖아요. 이게 부당한지 아닌지 모르니까 이런 일을 당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게 그 회사에서 원래 하던 일이면 위험해도 이거밖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나한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면 위험해도 할 것 같아요. 그걸 못 하면 제가 일을 못하는 게 되니까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선생님한테 말하면 부모님도 알게 되고 그게 좀 그러니까…. 부모님이 알면 걱정이 심해지니까 말 못 하죠.

제주도 이민호 군 사건을 들었을 때는 제가 고3이어서 취업 준비로 바빴고 먼 일로 느꼈거든요. 아마 특성화고 학생들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할 거예요. 이 사고와 나랑은 멀다고요. 그렇게 세뇌되는 분위기 속에서 다니거든요. 또 사회적으로 워낙 고졸이면 모자란 것처럼 나오니까 ‘고등학교 졸업하면 어쩔 수 없나’ 그런 체념이 깔려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고등학교 졸업하면 위험한 일을 하게 되고 사고당하고 그럴 수 있지. 어쩔 수 없어. 억울한 마음은 들지만 자기는 안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세뇌가 되고…. 반항하는 것도 사회적 지위나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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