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인문학으로의 초대
노에 게이치
역사, 철학, 사회학의 관점을 통해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입체적으로 대답하는 책이다. ‘과학’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부터 시작해 최근 이슈까지, 과학의 변천사를 한눈에 조망하는 교양과학 입문서이다. 과학혁명의 진행 과정을 역사적으로 되짚어 보는 ‘과학사’, 과학이라는 지적활동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과학철학, 20세기 이후 큰 의미를 지니게 된 과학과 사회의 관계, 혹은 과학자의 연구개발에 관한 윤리 규범을 논하는 과학사회학이라는 세 가지 관점으로 다채로운 과학의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들여다보도록 도와준다.
역사와 철학, 사회학이라는 세 가지 기둥으로 이루어진 책을 읽다보면 과학의 중요사건과 인물이 시간 순에 따라 한눈에 파악되면서 과학철학과 과학사회학이 발전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과학사의 중요사건을 디딤돌 삼아 풍성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가운데, 그 사건이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자세하게 짚어줌으로서 과학과 세상이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책속에서
과학자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갈릴레이나 뉴턴, 아인슈타인 등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갈릴레이와 뉴턴은 과학자가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살았던 17세기 유럽에는 ‘과학자’에 해당하는 말이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그들은 자연철학자였다. 실제로 갈릴레이는 자신의 연구 분야를 ‘철학’이라 불렀으며, 뉴턴의 주요 저서는 프린키피아라고도 불리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다. 그들이 활약한 시대에는 아직 과학의 전문화·분화가 시작되지 않았으며, 당시의 과학 연구는 넓은 의미로 보면 철학의 일부였다. 따라서 다소 기묘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17세기 과학혁명은 과학자가 아닌 철학자가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
12세기 르네상스에서는 그리스 과학뿐만 아니라 당시 절정에 달했던 아랍의 과학 지식도 유럽에 전해졌다. 아랍의 과학이라고 하면 우리와는 무관한 것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지금도 그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우리가 늘 사용하는 아라비아숫자(1, 2, 3…)가 대표적이고, 인도에서 아랍을 거쳐 서구로 전해진 위치 기수법도 있다. 로마 숫자(I, II, III…)로 사칙연산을 한다면 얼마나 번거롭겠는가. 시계 문자판이나 각도 단위에 쓰이는 60진법도 아랍(바빌로니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대수학과 알고리즘 등의 수학 용어뿐만 아니라 알코올, 알칼리, 알데하이드 등의 화학 용어에도 아랍어의 정관사 ‘al’이 붙어있다. 이를 통해 아랍에서 유래한 말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아랍과학의 유산은 현대과학 지식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근대과학은 3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12세기 르네상스를 통해 그리스 과학의 논증 정신과 아랍 과학의 실험 정신이 합쳐져서 형성됐다. 이는 연역법에 바탕을 둔 논증과학과 귀납법에 바탕을 둔 실험과학의 결합, 또는 합리적 방법과 경험적 방법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과학의 방법론은 그 두 가지가 통합된 ‘가설연역법’이다. 가설연역법이란 먼저 미지의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가설을 세우고, 가설에 따라 관찰할 수 있는 결론을 끌어내며, 그 결론을 실험적으로 검증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루진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제기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과학은 합리적으로 발전한다’라는 널리 받아들여진 통념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 결과 쿤은 “과학을 독특한 방법으로 속박된 단일 조직체의 활동으로 보는 관점을 폐기한다”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것은 비합리주의도 상대주의도 아니며, 과학의 다원주의라고 볼 수 있는 생각이다. 동시에 이는 과학을 비인격적인 알고리즘이 아니라 역사적·사회적 문맥 속에 놓인 과학자 공동체가 이루어내는 사회적 실천으로 바라보는 일이었다. 패러다임론의 영향을 받은 젊은 연구자들이 그 후 과학사회학과 과학기술사회론으로 향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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