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의 마법 같은 기적
노신임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치매 아빠를 7년간 돌본 딸의 이야기다. 치매 아빠를 다뤘다 하니 괜히 눈물이나 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오히려 저자는 치매 아빠와 함께 보낸 유쾌하고 행복한 경험을 전해주고 있다.
치매 환자들은 대부분 상상 속 세계에 살고 있다. 그 세계는 대개 어둡고 고통스럽다. 저자는 그런 아빠를 지켜내기 위해서 아빠의 상상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상상의 동굴에서 아빠를 위해 싸웠고, 상상의 바다에서 아빠와 함께 헤엄쳤다. 그러자 아빠의 세계는 밝고 희망차며 즐겁고 행복한 곳으로 변화되었다.
책속에서
드디어 싸움이 재개됐다. 아빠의 손가락이 1초에 한 번씩 허공을 찔렀다. 조금 있으면 치열해질 것이다. 바로 지금이 내가 등장할 타이밍이다.
- 「도사와의 한판 승부」 중에서 -
“이보쇼, 도사. 이제 그만 오쇼! 당신 여기 계속 오면 다쳐요! 알았나요?”
나는 아빠보다 빠르게, ‘다다다다다’ 1초에 다섯 번이나 삿대질을 하며 도사에게 소리쳤다. 아빠 옆에 서서, 아빠가 쳐다보는 그 방향을 똑같이 쳐다봤다.
하지만 도사는 답이 없었고, 아빠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내가 있으나 마나, 싸움은 여전히 치열했다. 아빠는 울부짖었다. 여기서 질 내가 아니다. 나는 더 힘차게 싸웠다.
“도사! 울 아빠 건드리면 부셔버리겠소! 좋은 말 할 때 꺼지시오!”
나는 아빠보다 몇 배나 강한 양손을 번갈아 가며 삿대질 폭격을 퍼부었다.
“도사! 당신 지금 매우 위험하오. 어서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게 좋을걸!”
그날부터 우리 집은 전쟁터가 되었다. 부녀가 한 방에서 길길이 날뛰며 소리소리 지르는 꼴이란……. 아마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어느 신종 사이비 종교가 입점해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간호사가 말했다.
- 「소변을 마시다」 중에서 -
“할아버지가 자꾸 소변을 드시잖아요.”
나는 곧바로 받아쳤다.
“자, 호칭부터 정리하죠. 할아버지라고 하지 말아 주세요. 저희 아빠는 회장님이십니다.”
그때 슬쩍 아빠를 보자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를 보니 힘이 솟구쳤다. 그래! 저 미소를 지켜줘야 한다. 그게 내가 할 일이다!
그때 간호사가 나를 향해 다시 한 번 말했다.
“따님, 환자분 소변 좀 그만 드시라고 하세요. 제가 벌써 여러 번 얘기했거든요.”
아빠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는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많이 창피해 하는 표정이었다.
자, 여기서 보통 환자 가족들의 반응은 이럴 것이다.
“네, 죄송해요. 주의시키겠습니다.”
라든가,
“정말요? 어머나, 어째요. 사실 저희 아빠가 치매가 있으시거든요. 이해 좀 해주세요.”
아니면,
“간호사님, 아빠가 무안해하시겠어요. 나가서 얘기하시죠.”
뭐, 이 정도일 것이다. 나는 달랐다. 지금 이 순간 아빠가 보고 있다. 나는 90도로 꺾여버린 아빠의 자존심을 반드시 빳빳하게 펴드려야 했다. 만일 그러지 않는다면 아빠가 퇴원하는 그 순간까지 아빠를 소변이나 먹는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노인으로 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아빠가 얼마나 창피하고 가슴이 아플까?
나는 헐리웃 스타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어깨를 귀까지 쭉 올렸다가 내리는 일명 헐리웃 어깻짓을 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소변 드시는 게 왜요? 저도 자주 먹는데요.”
그 순간 알았다. 나 자신조차도 내 입이 통제가 안 될 때가 있다는 걸. 내가 소변을 먹다니! 그러나 어쩌랴? 아빠가 소변을 먹은 건 팩트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일단 아빠부터 구해드리고 수습하기로 했다.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엄마에 대한 불신은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급기야 엄마가 만든 음식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 「엄마는 위험 인물」 중에서 -
“왜 엄마가 차려준 음식을 안 먹는 건데?”
아빠는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며 대답했다.
“독! 음식에 독을 탔어! 저거 먹으면 죽을 텐데 어떻게 먹냐? 너라면 먹겠냐!!”
이럴 수가! 가히 천재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도대체 아빠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뻗칠 것인가? 만일 아빠의 얘기대로 영화를 제작한다면 적어도 500명(!)의 관객은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아빠는 이런 극적인 시나리오를 저리도 잘 지어내지?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한번은 아빠가 나를 붙잡고, 놀라운 정보를 주겠다며 엄마도 까맣게 모르는 ‘엄마의 무서운 계략’을 털어놓았다.
“니 엄마가 왜 음식에 독을 넣는지 알려 주랴?”
아빠의 심각한 표정이 너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장난기가 발동했다.
“응. 알고 싶어. 빨리 얘기해봐.”
아빠는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나를 버리려고 했었다가 그게 마음대로 안 되니까, 이제는 음식에 독을 넣는다고 하더구나.”
나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낚아챈 탐정처럼 되물었다.
“‘하더구나?’ 아빠 생각이 아니라 누가 얘기해준 거야?”
“그래.”
“누구? 도사?”
“넌 알 거 없다.”
정말 놀랍다. 이쯤 되면 이 시나리오의 관객은 적어도 1,000명(!)은 넘어설 것이다.
아빠는 상 위에 놓여있는 로또용지를 내려 보며 대답했다.
- 「아빠, 로또 1등에 당첨되다!」 중에서 -
“그래 불러봐라.”
“지금부터 로또 1등 당첨번호를 부르겠습니다. 잘 들으세요.”
(중략)
아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임아. 번호 8, 16, 25, 다음에 뭐라고?”
“37, 43, 41”
아빠는 내가 부르는 번호를 조그맣게 따라 부르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냈다.
“아빠, 왜? 뭐야? 왜 우는데?”
아빠가 한참 후에 입을 떼었다.
“어, 어, 이거.”
“아빠, 왜? 왜 그래?”
“이거 로또 맞았다. 신임아.”
“뭐라고! 뭐가 맞아?”
“이거 로또 1등 된 것 같다. 숫자 다 맞아. 너가 확인해볼래?”
“뭐, 다 맞았다고? 몇 개가?”
“모두!”
즉시 아빠 손에 들려 있던 로또 용지를 낚아채 열심히 맞춰봤다.
“진짜 6개가 다 맞은 거야?”
“응. 6개 다 맞았다.”
“그럼 1등이야! 아, 이럴 수가!”
누구나 한 번쯤은 영화 같은 삶을 꿈꾼다. 현실에서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삶, 일어나는 순간 ‘내 인생에도 이런 일이!’ 하면서 눈물을 흘리게 되고, 너무나 황홀해서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그런 삶 말이다. 아빠에게도 그런 삶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 「007가방을 사수하라!」 중에서 -
그렇게 수일을 고민했고, 드디어 찾아냈다.
아무래도 영화 같은 삶이란 돈을 손에 쥐는 것이고, 이왕이면 영화에서처럼 007가방에 돈을 가득 채우면 좋을 것이다. 그러려면 가장 필요한 게 뭘까? 바로 007가방이다!
작전은 곧바로 개시되었다. 나는 주저 없이 007가방을 주문했다. 며칠 후 도착한 가방은 생각보다 컸다. 이 가방에 얼마를 넣어야 꽉 찰까? 가만, 어떤 돈으로 넣지? 동전? 에이, 너무 없어 보인다. 그럼 만 원짜리? 흠, 그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5만 원짜리를 넣어야 뽀대가 나지. 영화에서 보면 검은 옷을 입고 검은 선글라스 낀 사람들이 007가방을 탁 열었을 때 5만 원짜리가 가득하지 않던가? 색깔도 흡사 황금빛 찬란한 누런 지폐 다발. 푸하하, 생각만 해도 흥분된다!
일주일 뒤, 007가방을 들고 은행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띵동~ 7번 고객님.” 드디어 내 순서다.
테이블에 007가방을 철퍼덕 내려놓은 뒤, 가방을 열어젖히며 말했다.
“여기에 천 원짜리로만 가득 채워주세요. 만 원짜리는 넣으시면 안 됩니다. 그 금액 전액 대출받을게요.”
(중략)
007가방을 안방 침대로 가지고 가 조용히 눕혀놓았다.
아빠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뭔데 그렇게 무겁냐?”
“이거 아빠 거야.”
“내 거라고?”
“응. 어서 열어봐.”
아빠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이얼을 하나씩 돌리기 시작했다. 손이 떨리는 탓인지 몇 차례 돌려도 실패했다.
“다시 해보자. 될 거야.”
여러 차례 시도한 후 마지막 다이얼을 돌리는 순간 ‘띡!’ 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양쪽에 있던 버튼을 세게 누르자 가방이 ‘딱!’ 하고 살짝 들렸다.
“지금 열면 돼. 어서 열어봐.”
아빠는 천천히 가방 뚜껑을 들어 올렸다. 가지런하게 세워져 있는 돈들이 아빠 눈에 들어왔다. 내가 봐도 놀라웠다. 안방에서 오픈한 007가방 속 현금은 은행에서와 달리 눈이 부시도록 찬란했다. 가지런히 줄을 딱 맞춰 세워져 있는 모양새가 만 원짜리인지, 5만 원짜리인지, 10만 원짜리 수표인지 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기품도 좔좔 흘렀다. 내 심장도 이리 뛰는데, 아빠는 오죽할까?
아빠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 이게, 이게 다 뭐냐? 신임아, 이거 뭐야? 웬 돈이 이렇게 많아?”
“아휴~ 힘들다. 들고 오느라 혼났네. 아빠 재벌인 건 알지? 계좌에 있는 돈 아주 쪼끔 빼 온 거야. 은행에서 아빠 돈이 너무 많아서 이자로 나갈 돈이 점점 불어난다고, 제발 이자 중 일부라도 현금으로 찾아가라고 해서…….”
“이자? 내 돈이 은행에 많아?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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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노부모와 그 딸의 감동 실화!!!! | 7년간의 마법 같은 기적 - 노신임 | 꼬꼬독 e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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