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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아무튼, 스릴러 - 이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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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스릴러

이다혜

아무튼 시리즈 10권. 어린이용 셜록 홈즈와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부터 가해자 가족들이 쓴 처절한 논픽션까지, 관악산 자락 방공호에 가득했던 음습한 기억들부터 강남역 살인사건 등으로 이어지는 현실의 이야기까지, 저자는 소설과 영화, 픽션과 논픽션, 과거와 현재, 실제와 허구를 넘나들며 스릴러라는 매력의 세계로 독자를 전도한다.

두 여성이 실종돼 며칠 후 사망한 채로 발견된, ‘홍대 여성 부녀자 연쇄 납치살인 사건’이 몇 년 전 발생했다. 이 사건은 어느 네티즌이 포털사이트에 사건의 정황과 범인을 추정하는 댓글을 달았고 범인 검거 후 그의 추리가 완벽에 가깝게 들어맞았다는 이유로 더욱 ‘유명’해졌다. 사람들은 ‘명탐정’의 등장에 열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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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살다 보면 수시로 찾아오는 환란의 날에 마음 둘 취미가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꼴찌 팀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보기라 할지라도. 나는 프로야구, 음악, 영화, 소설, 여행이라는 취미를 가졌고, 요즘은 야구를 거의 못 보지만(내가 봐서 지는 줄 알았더니 안 봐도 지더라) 다른 네 가지는 우선순위 없이 전부 나의 시간과 돈을 도둑질하는 취미들이다. 문제는 취미 따라가느라 늘 돈도 시간도 부족해져버렸다는 사실.
나의 취미는 나를 구했는가 망하게 만들었는가. 그런, 나를 구원했는지 파괴했는지 모를 취미 중 하나가 소설, 그중에서도 스릴러 소설 읽기다. 그리고 원래 망한 인생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경꾼’으로서 타인의 불행을 소비하는 심리가 여기 없는가 묻게 된다. 범죄물의 팬은 범죄를 소비하는가, 범죄의 해결을 소비하는가? 일상 미스터리 같은, 잔인함과 거리를 둔 듯 보이는 서브장르에서조차 ‘못된’ 심리를 전시하는 일을 종종 본다. 사건에 휘말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판단하는 일, 타인을 의심하고 자신의 명석함을 확인하고 즐거워하는 일의 속성이 그렇다. 타인을 이리저리 재 판단하고 싶어 하는 마음 역시, 이 장르의 독자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로 의심받는 사람들에 대한 온갖 정보가 작품 속에 나열되기 때문이다. 의심할 만한 그 사람의 말과 행동, 생각 들이.

이야미스는 수동공격성이 강하다. 그녀들은 이해하는 척하고, 돕는 척하고, 좋아하는 척하고, 괜찮은 척한다. 그러나 마음속은 아수라장이다. 그녀들이 드는 칼은 많은 경우 마음속의 자기 자신을 향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성이 처한 어려움을 장르적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노력이 사회가 달라지면서 어떻게 다르게 발현되는지가 흥미롭다.
이야미스는 ‘싫음’을 꼭꼭 싸매고 살아가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 친숙할 수밖에 없는, 자기혐오의 장르다.

이 장르의 소설에서 가장 수상한 사람이 남편이며, 가장 많이 죽는 사람 역시 남편이라는 것 역시 놀랄 일은 아니겠다. 이전 스릴러 소설에서는 사망자 비율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높았으니, 이야기 전개 자체가 변했다. 단순히 ‘범인을 잡는다’보다는 ‘오랜 시간 고통받던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임에도 구제받는다’는 쪽에 좀 더 무게중심이 기울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뛰어난 두뇌와 집요한 수사력을 갖춘 주인공이 사건의 마무리를 책임지는 작품 속 세계와 현실은 다르다. 그런데 그 구분이 희미해지는 것이다. 진짜를 두고도 소설 같거나 영화 같다는 감탄을 하게 되고, 누가 더 잘 맞히는가를 경주할수록.

나는 여전히 스릴러를 좋아한다. 그 사실은 종종 나를 괴롭게 한다. 내가 ‘파는’ 장르의 구성 성분이 무엇인지, 쾌락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를 생각하는 일이 그렇다. 스릴러가 현실의 피난처로 근사하게 기능해온 시간에 빚진 만큼, 현실이 스릴러 뒤로 숨지 않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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