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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오늘도 인생을 찍습니다 - MJ KIM(김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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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인생을 찍습니다

MJ KIM(김명중)

사진가라는 직업에는 환상적인 이미지가 녹아 있다. 특히 유명인을 촬영하는 사진가라 하면 화려한 조명, 전문가 포스가 뿜어져 나오는 스튜디오, 유명인사와의 교류 등이 연상된다. 별세계 사람 같다. 그렇게 본다면 폴 매카트니 전속 사진가 MJ KIM은 별세계 중에서도 별세계 사람이다.

하지만 《오늘도 인생을 찍습니다》는 별세계 사람이 아닌 실수투성이 평범한 사람이었던 MJ KIM이 어떻게 사진가가 될 수 있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는 처음부터 사진가를 꿈꾸지도 않았을뿐더러 정식 사진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영국 유학 도중 IMF 외환위기가 터져 급하게 일자리를 찾다가 첫 번째로 합격한 회사에 수습 사진기자로 첫발을 뗐다.

평범한 하루하루도 무탈하게 넘기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마치 시트콤을 보는 듯하다. 세계적인 스타들과 함께하는 전문 사진작가이지만 결혼 전 예비장모님 앞에서 주눅 들고, 시원하게 프리랜서 선언을 했다가 백수생활에 피가 마르는 모습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고 찾아 나서는 모습까지도.

‘출발선부터 달라야 한다’며 고스펙을 강요하는 시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한발 한발 꾸준히 나아가 마침내 꿈을 찾은 MJ KIM의 이야기는 인생 여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지도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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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하지만 그 와중에도 변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처음 촬영할 때의 그 떨림입니다.
매번 새로운 촬영을 준비할 때마다 첫 촬영의 떨림과 긴장을 느낍니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은 만 가지 고민들로 가득 찹니다.
이번 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느 부분이 가장 어려울까? 모델은 내 지시를 잘 따라줄까? 성격이 까다롭지는 않을까?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와 협업이 잘 이루어질까? 어떤 조명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까? 그 조명이 모델과 잘 어울릴까? 촬영 컨셉에 잘 부합할까? 주차공간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화장실은 깨끗한가? 컴퓨터는 잘 돌아갈까? 카메라에 이상이 생기지는 않을까? 음악은 무엇을 틀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내가 찍은 사진을 좋아해줄까?
- ‘처음’의 떨림에서 얻은 것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교수님의 추천서를 받으러 갔다가 작은 뉴스통신사에서 견습 사진기자를 찾는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전혀 기대 없이 문을 두드려 봤는데, 그 문이 기적처럼 열렸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제 새로운 인생의 서막에 해당하는 작지만 아주 거대한 사건이었지요.
그때 제가 맡은 주 업무는 다른 기자가 찍은 사진을 현상기계에서 현상한 후 네거티브를 보고 좋아 보이는 프레임을 골라서 컴퓨터에 스캔해 저장하는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언어가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고 사진에 대한 전문지식이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쁘지 않은 날에는 취재에 따라 나가 사진을 찍으며 차근히 사진과 함께 내가 살고 있는 런던이라는 도시를 배워나갔습니다.
모든 일이 재미있고 신기했던 저는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열의를 보였고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남들이 꺼리는 궂은일과 힘든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함께 펍에 맥주를 마시러 가는 날에는 맥주를 제일 많이 마시면서,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모든 이에게 함박웃음을 날려주는 웃음의 마스코트가 되었습니다.
그때 터득한 가장 중요한 삶의 지혜가 이것입니다. ‘웃자 웃어! 미소와 친절은 부족한 나를 채워주는 최고의 기술이다.’
- 사진가가 될 수 있었던 뜻밖의 비결

우리도 언젠가 학력이나 스펙이 아니라 개개인의 실력과 경력으로 진검승부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물론 학력과 스펙이 필요한 분야도 있습니다. 학력은 없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으로 뇌수술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다만 적어도 제가 아는 사진 분야에서는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유명한 대학 사진과를 나오지 않았어도 또는 대학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어도,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카메라 장비가 없어도 유명 학원에서 준비시켜준 값비싼 포트폴리오가 없어도, 사진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있으면 누구나 사진가가 될 수 있습니다.
어중이떠중이 그리고 명중이가 하는 것이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 사진과를 나와야 사진가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비현실적인 시간이 지났습니다. 저는 사람들의 함성과 마이클의 카리스마 속에서 마법에 홀린 것처럼 미친 듯 사진을 찍어댔고,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공연 발표회는 끝나고 무대 뒤에서 가쁘게 숨을 내쉬고 있는 마이클을 발견했습니다. 잠시의 고요함 속에 찰칵찰칵 제 셔터 소리만 청명하게 울렸고, 어느 순간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그!
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조용히 카메라를 내려 눈인사를 나누며 마이클이 내미는 손을 잡았습니다. 전 왜 그의 손이 작고 차가울 거라고 상상했을까요, 크고 긴 따듯한 손이었습니다.
내민 손과 함께 들려오는 귀에 너무 익숙한 그의 목소리.
“Hello, I am Michael. God bless you, god bless you, god bless you.”
- 마이클 잭슨의 마지막 인사, “God bless you!”

한동안 커다란 카메라에 꽂힌 적이 있습니다. 남들이 다 들고 다니는 35mm 카메라는 평범해 보여서 일단 보기에 멋진 카메라를 찾아다녔습니다.
열심히 발품을 판 끝에 마미야 RZ Pro II라는 중형 포맷의 멋들어진 카메라를 발견했습니다.
그 카메라의 포스는 아주 강렬했습니다. 그리고 무게는 더더욱 강렬했습니다. 전 그 무거운 카메라에 큼지막한 뷰파인더와 오토 와인더(필름자동넘김장치)를 장착해서 더 크고 더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아령보다는 조금 무겁고 역기보다는 조금 가벼운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얼굴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절로 흘러나왔습니다. ‘너네가 이런 카메라를 알아? 쪼끄만 카메라를 감히 어디다 들이밀어!’ 하는 교만함과 재수 없는 거드름을 온몸에 덕지덕지 붙이고 거리를 활보했습니다.
- 더 큰 카메라, 더 비싼 카메라

사진도 그렇습니다. 사진은 나를 보여주는 또 다른 매개체입니다. 이 매개체로 나를 바라볼 때 내가 멋진 모습이길 바라는 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 아닐까요?
다른 사람에게 “네 사진 잘 나왔네” 하고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멋지다고, 이 정도면 부끄럽지 않다고 느끼기를 바라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리처드 아베던의 아버지는 편지를 읽으면서 아들의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했을까요? 읽고 나자 자신의 사진이 새롭게 보였을까요?
얼마 전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말의 옳고 그름보다는 사람을 살리는 말인가 아니면 죽이는 말인가가 더욱 중요하다.’
- 상대방이 좋아하는 사진

광고사진 촬영장의 사진가는 사진가보다는 감독에 조금 더 가까운 역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셔터를 누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역할은 모든 스태프가 자신의 기량을 110% 발휘할 수 있도록 잘 이끌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모델이라 해도 아침 일찍 일어나 평상시보다 몇 배나 많은 양의 메이크업과 헤어 제품을 얼굴과 머리에 얹고서 카메라 앞에 서자마자 최상의 표정과 포즈를 선보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30~40% 상태로 시작하는 모델의 컨디션을 10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모델과 사진가가 좋은 에너지를 서로 교환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 에너지를 잘 이끌어내는 능력이야말로 좋은 사진가가 갖춰야 할 중요한 요건이라 생각합니다.
- 모두를 기분 좋게 하는 능력

리허설 시간에 오랜만에 만난 링고 스타와 폴 매카트니는 어린아이들처럼 농담을 주고받기에 바빴습니다.
짓궂은 장난을 치면서 서로 한마디도 지지 않는 모습이 영락없는 10대 아이들입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재미있고 멋진 사진들을 책으로 만들어 폴과 링고에게 선물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링고의 비서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MJ, 집 주소가 어떻게 돼요? 링고가 당신이 준 사진집을 보내려고 하는데요.”
헉… 이게 무슨 소리지? 책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심장이 툭 내려앉으려고 하는 순간,
“당신이 찍은 사진이 너무 좋아서 책에 당신 사인을 받았으면 좋겠대요.”
헐… 저 비틀즈에게 사인해준 사람입니다.
- 비틀즈에게 사인을!

우연히 알게 된 허스트 사의 전 대표 테리 맨스필드의 도움으로 갈망해 마지않던 영국의 〈엘르〉, 〈코스모폴리탄〉, 〈하퍼스바자〉, 〈에스콰이어〉의 편집장들을 한꺼번에 만나 미팅하는 심장 떨리는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그들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유명인들과 관계가 좋고 오랫동안 함께 작업했어도 새로운 프로젝트 앞에서는 다른 사진가들과 다를 바 없이 새롭게 선택받아야 하는 평범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이쯤 되면 제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도 모자라 저 깊은 지하의 어둠 속에서 은둔해야 할 지경에 처했을 수도 있었지만, 거절당한 이유는 내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멋진 재능과 지금 이 회사에서 찾고 있는 재능이 맞지 않아서… 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당신의 손해입니다. 언젠가는 내 능력을 알고 나를 찾아올 날이 있을 겁니다’라는 최면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쓰디쓴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 인생의 소중한 쉼표, 거절

흰머리, 주름, 잡티, 여드름을 짜고 난 흔적, 나이와 함께 더욱 출렁거리는 뱃살… 디지털 세계에서는 쉽게 감출 수 있는 것들이 필름으로 찍어놓으면 그대로 드러납니다.
뜻하지 않은 말실수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냅니다. 사소한 거짓말 때문에 친구와 사이가 멀어집니다. 지키지 못한 작은 약속으로 아이가 삐칩니다.
이런 실수들을 ‘Delete’ 버튼으로 간단히 지우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 다시 하자”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실수들이 우리를 가르칩니다. 큰 상처는 크게, 작은 상처는 작게… 내가 하지 말아야 할 말, 행동, 생각, 태도 등을 알게 해줍니다.
그 실수들이 모여서 나를 이룹니다.
- 내 삶도 어쩌면 필름사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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