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관계의 법칙
로버트 그린(Robert Greene)
『권력의 법칙』, 『전쟁의 기술』로 ‘권력술의 대가’로 등극한 세계적 밀리언셀러 저자 로버트 그린의 책 『유혹의 기술』의 에센셜 에디션.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과 그에 대한 욕망을 꾸준히 파헤쳐왔던 저자는, 더 가볍고 작아진 이 인간 관계 전략서에서 힘과는 가장 거리가 먼 약자들이 권력을 얻어내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수 세기 전만 해도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폭력과 무자비한 힘이었다. 그런 체제에서는 선택된 소수만이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무력도 재력도 없는 사회적 약자들, 특히 여성들은 그저 현실에 순응하며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지와 지략을 발휘해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효과적으로 권력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아무 힘도 없는 사회적 약자가 인간 관계에서의 권력을 쟁취하는 수단을 저자는 ‘유혹’으로 정의하고, 어떠한 상대라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24가지 심리 전략을 소개한다. 이 책은 고전과 역사 속 방대한 레퍼런스들을 통해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을 주는 인문서인 동시에, 비즈니스 및 대인관계에서의 난관을 돌파하는 실질적인 기술을 제공하는 완벽한 자기계발서다.
책속에서
레이크는 사회가 금기로 여기는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 그 때문에 그는 종종 위험하고 잔인한 존재로 인식된다. 바이런은 인습에 얽매이기를 싫어했다. 그는 이복동생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고, 그 사실을 온 잉글랜드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는 자기 아내를 비롯해 누구에게나 잔인했지만, 그럴수록 여성들은 그를 사모했다. 교양 있고 얌전한 여성상을 요구하는 문화 속에 살던 여성들은 사회적인 금기를 깨고 위험한 행동을 일삼던 그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마음에 억압되어 있던 욕망을 풀어놓았다.
워홀은 어렸을 때부터 모순된 감정들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는 명성을 원했지만, 소극적이고 수줍은 성격을 타고났다. 처음에 워홀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 10년 동안의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자 그는 본래의 소극적인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워홀은 그와 같은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1960년대 초부터 자신의 작품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수프 깡통이나 속도위반 딱지처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품들을 그렸다. 그의 그림에는 이렇다 할 의미가 담겨 있지 않았으므로 감상자들은 전혀 강요받는 느낌 없이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그림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면서 호기심을 가졌다. 즉각적인 표현, 시각적인 효과, 차분하고 냉담한 분위기 등은 그의 그림이 가진 특징이었다. 워홀은 그림뿐만 아니라 그런 식으로 자기 자신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주장하려 하지 않았다.
정치 지도자들은 대개 코케트의 전술을 사용해 대중을 사로잡는다. 이들은 대중을 잔뜩 흥분시킨 다음, 갑자기 대중과 거리를 유지한다. 독일의 정치학자인 로베르트 미헬스(Robert Michels)는 그런 정치가들을 가리켜 차가운 코케트라고 불렀다.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상대로 ‘코케트 전술’을 구사했다. 이탈리아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그는 일약 국가적 영웅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그는 곧 프랑스를 떠나 이집트 원정길에 나섰다. 자기가 없으면 정부가 사분오열될 테고, 그렇게 되면 국민들이 자신이 되돌아오기를 애타게 갈망할 것이라는 속셈에서였다. 그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권력을 키워나갔다. 마오쩌둥도 선동적인 연설로 대중의 감정을 자극한 뒤 며칠 동안 갑자기 모습을 감춤으로써 자신을 우상화시켰다. 이런 정치인들은 모두 확실한 나르시시스트였다. 질투와 애정과 격렬한 감정을 자극하는 ‘코케트 전술’은 특히 집단을 상대로 할 때 효과적이다.
맬컴 엑스는 일종의 모세 같은 카리스마였다. 그는 해방자였다. 해방자는 다른 사람들의 억눌린 분노, 즉 강요된 예절의 껍질 속에 갇혀 있는 적개심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한다. 해방자는 고통받는 민중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고난의 생애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맬컴 엑스는 1965년 연설 도중에 암살되었다). 카리스마가 되려면 몸짓과 목소리에 솟구치는 감정을 실어 전달하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욱 깊은 감수성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남들이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카리스마에게서 사람들은 강한 인상을 받는다. 카리스마는 사람들이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말을 대신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억압받는 이들의 편에 서서 해방을 부르짖는 순간 카리스마가 탄생한다.
몇 달 뒤 케네디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텔레비전 공개 토론에서 공화당 후보 리처드 닉슨과 한판 승부를 벌였다. 닉슨은 예리했다. 그는 질문에 정확하게 답변했으며, 자신이 한때 부통령으로 참여했던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이룩한 업적들에 대해 정확한 통계를 인용하며 침착하게 토론에 임했다. 하지만 흑백 텔레비전에 비친 닉슨의 모습은 마치 송장 같아 보였다. 불안하게 움직이며 자주 깜박거리는 눈, 경직된 자세, 피로에 지친 듯한 얼굴, 눈썹과 볼 위로 흘러내리는 땀은 좋지 못한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케네디는 이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닉슨은 경쟁자인 케네디만을 주시했던 데 반해, 그는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국민들에게 시선을 맞추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닉슨은 자료를 들이대며 자질구레한 논점에만 관심을 기울였지만, 케네디는 자유와 새로운 사회 건설을 언급하면서 미국인의 개척 정신에 호소했다. 그의 말은 구체적이지는 않았지만,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청중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사람들은 자라면서 자의든 타의든 어린 시절의 꿈과 타협해야 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뭔가 아쉬움을 안고 살아간다. 유혹자는 사람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이런 아쉬움을 수면 위로 끌어내 자신들이 과거의 꿈에서 얼마나 멀리 벗어나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상대가 잃어버린 꿈과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면, 상대는 자연히 끌려오게 되어 있다. 기업가나 정치가들은 자신들이 팔고자 하는 물건을 사람들이 사게 하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일을 하도록 만들려면 먼저 대중의 욕구와 불만을 일깨워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상대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 다음, 도움의 손길을 내밀라.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이나 전 국민에게도 통용되는 이야기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유혹적인 생각을 심으려면 그들의 상상력과 환상, 깊은 동경을 자극해야 한다. 성공의 열쇠는 쾌락과 부, 건강, 모험과 같이 사람들이 열망하는 것들을 은근히 암시하는 능력이다. (…) 무심결에 나온 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언뜻 내뱉는 듯한 말, 상대의 마음을 끄는 말은 엄청난 암시의 효과를 발휘한다. 이런 말들은 마치 독처럼 사람들의 피부 밑으로 스며들어 스스로 생명력을 발휘한다. 이런 식의 암시는 상대가 긴장을 풀고 있거나 주의가 분산되어 있을 때 시도하는 것이 좋다. 대개 대화를 하다 보면 사람들은 다음번에 할 말을 생각하거나 자기만의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 틈을 노려 뭔가 암시적인 말을 던지면 상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상대에게 최면을 거는 것이 유혹의 언어가 지향하는 목적이다. 최면술사는 반복과 확언이라는 기교를 통해 상대를 가수면 상태에 빠뜨린다. 특히 감정을 자극하는 말을 선택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하고 단정적인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 청중은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한 겨를도 없이 감정적으로 자극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나는 저 사람들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는 말보다는 “우리는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또는 “저 사람들은 모든 일을 망쳐놓은 장본인들입니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좋다. 확언의 언어는 명령어처럼 짧고 적극적인 언어여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마”라는 따위의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고립된 사람은 나약하다. 천천히 상대를 고립시키면 다루기가 훨씬 쉬워진다. 우선 심리적인 고립이 필요하다. 상대를 유쾌하게 해주면서 관심을 끈 다음, 다른 생각은 모두 몰아내야 한다. 한마디로 오직 유혹자만을 바라보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둘째, 육체적인 고립이 필요하다. 자질구레한 일상과 친구, 가족, 가정에서 벗어나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단 이와 같은 고립 작전이 성공을 거두게 되면, 상대는 외부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유혹의 늪에 더욱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유혹자는 상대를 자신의 세계로 깊숙이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낯선 세상에 들어선 상대는 혼란 속에서 더욱더 유혹자에게 의존하게 된다.
상대를 지루하게 하는 것보다 자극하는 것이 더 낫다. 친절보다 상처를 주면 상대를 감정적으로 더욱 종속시킬 수 있다. 상대의 약점을 파악한 다음 그것을 이용해 갈등을 조장하라. 그런 다음 결정적인 순간에 그 갈등을 해소시켜주어라.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효과는 더욱 증폭된다. 스탕달은 『연애론』이라는 책에서 두려움이 욕망에 미치는 영향을 묘사했다. 스탕달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이 곧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수록 점점 더 정신이 아득해지고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된다. 이와 같은 통찰력을 역이용해 유혹의 대상에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의 마음을 안심시켜서는 절대 안 된다. 오히려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차갑고 냉정한 모습을 보여주어라. 언제라도 헤어질 수 있다는 암시적인 행동을 종종 해서, 헤어짐에 대한 불안감을 늘 갖게 만들어라. 그러다가 적당한 시간이 흘렀다고 판단되거든 다시 평안한 마음을 갖게 해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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