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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위기를 경영하라 - 양사오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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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경영하라

양사오룽

양사오룽의 책, 이 책은 저자가 5년에 걸쳐 화웨이 발전사에 담긴 위기극복 철학을 연구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화웨이에 대한 자료와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27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화웨이의 위기극복과 성장의 동력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파산 위기에서 모든 인력과 자금을 기술개발에 집중하고, IT 버블 붕괴의 시련 속에 5년에 걸친 시스템 혁신을 추진하는 등, 화웨이는 위기가 심각할수록 꼼수를 부리지 않고 혁신을 통해 위기에 정면으로 맞서왔다. 그럼으로써 ‘세계의 하청공장’, ‘짝퉁의 나라’라는 오명에서 스스로 벗어나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제특허를 보유한 하이테크 기업으로 거듭났다.

또한 가장 선진적인 경영 시스템을 도입해 뼛속까지 환골탈태한 혁신기업이자 최고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서비스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B2B 시장을 넘어 세계 3대 스마트폰 제조업체로서 한국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기업들이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는 오늘, 한국기업의 현실은 어떠한가? 매일같이 ‘위기’를 말하는 이때, ‘어떻게든 살린다’는 리더의 책임감과 ‘반드시 성공시킨다’는 구성원의 근성은 과연 위기를 돌파할 만큼 강한가? 잃어버린 혁신정신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발 빠른 추격자에게 배울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혹은 잃어버렸던 혁신에 대한 헌신, 반드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투지를 다시 상기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어떻게 헌신과 투지를 성과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영감 또한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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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980년대 미국은 창업환경과 혁신 시스템이 완비돼 누구든 창의성만 있다면 얼마든지 벤처투자를 받아 창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달랐다. 1987년에 런정페이는 충분한 자금도, 든든한 배경도 없이 화웨이를 창업했다. 창업 초기의 화웨이는 아무리 봐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요소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창업과 동시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화웨이가 뛰어든 전기전자업계는 자고 일어나면 신기술이 출현하는 분야다. 중국은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사업이 돌아가는 나라여서 민영기업인 화웨이는 대형 프로젝트에 명함을 내밀기 어려웠다. 게다가 이미 중국에는 쟁쟁한 글로벌 다국적 기업이 진출해 있었다. 화웨이로서는 창업하자마자 세계시장에 뛰어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술로도, 경영전략으로도, 내부 시스템으로도 ‘첨단’을 걷는 글로벌 기업들을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또 겨우 안정될 만하다 싶으면 IT 버블 붕괴 같은 초대형 이슈가 터져 업계를 뒤흔들었다. 이 때문에 화웨이는 창업하던 그 순간부터 걸핏하면 무너질 위기에 처하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27년 만에 해외시장을 석권하고 세계 최대 통신장비 제조업체가 되었다. 이것은 중국의 척박한 기업 환경에서는 물론 혁신과 인력 시스템이 완벽한 미국에서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한때 미국 정부로부터 화웨이가 중국 정부의 ‘스파이’라는 근거 없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화웨이인들의 강인한 의지, 고생을 참고 견디는 정신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또 위기를 딛고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 이들의 청춘, 피와 눈물, 건강을 제물로 바치고 얻은 결과였다.
―프롤로그

1992년에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강화해 경제 활성화를 이루겠다고 발표한 후, 경기가 크게 과열되었다. 그러자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은 1993년부터 시중 은행의 무분별한 대출을 엄격히 관리, 감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바람에 선전의 은행들도 활짝 열어두었던 문을 급히 닫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의 소형 교환기 시장은 1993년에 포화상태에 이르러 더 이상 큰 수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 핑계를 대며 차세대 제품 개발에 제동을 걸 수는 없는 노릇. 화웨이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전자교환기 기술개발에 어마어마한 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결국 얼마 못 가 현금유동성에 문제가 발생했고 화웨이는 파산할 지경에 이르렀다. 반대를 무릅쓰고 사업을 추진한 런정페이는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렸다.
어떻게든 난관을 돌파해야 했던 그는 초강수를 두었다. 과감하게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한 것이다. 직원들과 책임을 나누고 이익도 함께 누림으로써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의도였다. 당시 열린 회의에서 런정페이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10년 후에 우리 화웨이는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요?”
별다른 대답이 나오지 않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아마 벌어들인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쩔쩔매게 될 겁니다. 여러분은 머지않아 넓은 발코니가 딸린 집을 사야 할 거예요. 그래야 날씨 좋을 때 가진 돈을 햇빛에 널어 말리죠. 게으름피우다가는 돈에 금세 곰팡이가 생길걸요?”
회의가 끝난 후, 직원들은 “회장님은 허풍도 잘 친다니까!”라며 웃어넘겼다. 그날의 ‘허풍’이 정말로 실현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993년 4월 19일, 선이빌딩 5층에서 R&D 부서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런정페이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나면 저는 건물에서 뛰어내릴 작정입니다. 여러분도 살아 돌아올 생각 말고 결사의 각오로 연구하세요. 우리는 반드시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당시 화웨이 사람들은 곧 이어질 배수진 상황에서 최대한 빨리 핵심기술을 선점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개인적인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내놓고 최선을 다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직원들은 일하다 지치면 사무실 한쪽에 야전침대를 펴고 쪽잠을 자며 버텼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화웨이 야전침대 문화’의 유래다.
―1장 하고자 하는 자에게 미래가 있다

런정페이는 연구원들에게 “작은 못이 강한 물체를 뚫는다”는 말을 자주 한다. 못질을 할 때 생기는 충격파는 못 끝부분에 모여서 큰 압력을 만든다.
앞서 말했듯이 1993년에 화웨이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금 사정이 크게 악화되었다. 곧 파산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런정페이는 모든 역량을 전자교환기 개발에 그야말로 ‘올인’했다. 그 결과, 화웨이는 고유의 핵심기술을 담은 ‘C&C08’ 전자교환기를 출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것이 바로 화웨이만의 R&D 전략인 ‘압박전술’이다. 1996년, 중국인민대학의 교수 6명이 화웨이기본법의 초안을 작성하면서 화웨이의 R&D 정책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화웨이는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경쟁기업보다 훨씬 많은 자원을 집중 투입했다. 그들은 안 하면 안 했지, 일단 하기로 했으면 언제나 모든 인력과 자금을 집중해서 반드시 돌파구를 찾아냈다.”
다시 말해 제한된 자원을 집중 배치해서 핵심기술을 개발한다는 의미다.
‘압박전술’은 런정페이의 머릿속에서 나온 전략이라기보다는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저절로 나온 지혜였다. 그는 C&C08을 개발할 때 “실패하면 건물에서 뛰어내릴 작정”이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죽기 살기로 R&D에 매달린 것이다. 용기야 가상하지만, 사실 이처럼 승부수를 던지고 올인하는 것은 일종의 도박과 같아서 우연성이 크다. 하지만 ‘압박전술’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연성 속에서도 어떤 필연성을 찾을 수 있다.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을 때 다른 중국기업이라면 되도록 비용이 적게 들고, 시장 진입이 쉬운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런정페이는 C&C08의 개발을 추진하면서 이와 정반대로 했다. 그는 대담하게도 세계 최고 수준인 AT&T의 기술을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당시에는 무모해 보였지만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이렇게 높은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에 나중에 치열한 기술전쟁에서 도태되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어려울 때에도 기술개발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국내 경쟁업체들과 수준 차이를 벌리고, 외국 경쟁업체들과는 격차를 좁힐 수 있었다. 그 결과 화웨이는 ‘7국8제’, ‘거대중화’라는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시대를 헤치고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핵심기술을 확보해 성공을 거둔 후에도 런정페이는 매년 총매출의 10% 이상을 R&D에 투입한다는 엄격한 규정을 만들고 그대로 실행했다. 그래서 세계 통신업계가 위축된 2000년에도 R&D 투자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5%p 높여 30억 위안을 투입했다. 2008년 하반기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에도 경쟁업체들과 달리 화웨이는 100억 위안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세계 통신업계의 발전이 정체된 2011년에도 역시 200억 위안 이상을 투입했다.
―3장 10년 동안 검 하나를 간다

세상에 화웨이는 특유의 ‘늑대군단’ 문화로 잘 알려져 있다. 무리를 이루어 공동의 적에 적개심을 드러내며 승리가 아니면 죽음도 불사하는 화웨이의 ‘늑대군단’은 경쟁기업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이들에게는 “승리하면 함께 축배를 들고, 패하면 목숨을 걸고 서로를 구한다”, “힘들지만 용기를 내 마침내 승리를 거둔다”는 식의 구호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밖에서 보기에 살벌할 수도 있는 이런 분위기가 화웨이 내부에서만큼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들은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규모가 몇 배나 큰 경쟁자들에게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졌다.
늑대군단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전진할지 함께 고민하고, 길을 막고 있는 거대 글로벌 기업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분석해 반드시 약점을 찾아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적을 시장에서 내쫓아 최종 승리를 거두었다.
1997년, 런정페이는 화웨이의 기업문화를 늑대의 3가지 특징, 즉 ‘예민한 후각’, ‘불굴의 투쟁심’, ‘팀플레이 정신’으로 설명했다. 이 ‘늑대문화’ 덕분에 화웨이는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텨가며 어려움을 이겨내고 기적을 일구었다. 사람들은 화웨이의 성공을 보며 “가진 것이 없다고 걱정하지 말고 노력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4장 늑대처럼 뭉치고 늑대처럼 싸운다

1990년대에 중국 통신업계에는 매년 수억 위안에 달하는 투자 기회가 쏟아졌다. 이런 추세를 타고 화웨이도 나날이 발전해 총매출이 15억 위안을 넘어섰다. 그런데 이때 성공에 도취된 나머지 몇몇 임원의 행동거지가 거만해지기 시작했다. 화웨이 내부에 순식간에 도를 넘은 자신감과 앞으로 모든 일이 잘될 거라는 맹목적인 낙관주의가 팽배해졌다. 중국 경제는 아직도 발전 중이고 화웨이가 갈 길은 먼데 마음가짐이 흐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런정페이는 ‘사내 캠페인’을 시작했다. 런정페이는 캠페인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선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같은 가치관과 리더십을 갖춘 관리자들이 생기고, 전사적으로 회사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첫 번째 조치로 그는 1996년 벽두에 마케팅 부서의 관리직 전원에게 사표를 받았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내부 공개경쟁 방식으로 엄격한 평가를 거쳐 재임용 여부를 심사했다. 이때 창업멤버 30%가 회사를 떠났다. 대신 쉬즈쥔, 후허우쿤, 왕청, 덩타오 등 기획과 마케팅 분야의 엘리트를 발굴해냈다.
런정페이는 왜 하고많은 방법 중 ‘단체사표’라는 초강수를 두었을까? 그는 이를 통해 ‘모든 직원은 승진할 수도 있지만 좌천될 수도 있다. 임금 역시 오를 수도 있지만 깎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다. 그래서 성공에 도취된 채 진취성을 잃고, 앉은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창업멤버들에게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한 달이 마케팅 부서 직원들에게는 지옥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외부의 예상과 달리, 직원들이 불안해하거나 사기가 떨어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괜히 직원들을 못살게 굴거나 다그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이해진 마음을 다잡고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하기 위함임을 그들도 이해했다. 오히려 그들은 “봉황은 불에 타도 죽지 않는다!”라고 외치며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서로를 격려했다. 경영진도 위기감을 일깨우고 힘을 북돋는 글을 연이어 썼다. 화웨이 구성원들은 사내 캠페인을 통해 기존의 영업방식과 사상을 스스로 되돌아보았다.
―4장 늑대처럼 뭉치고 늑대처럼 싸운다

5년 동안 일하면서 IBM 자문단은 화웨이의 강점과 문제점에 대해 훤히 알게 되었다. 그들이 지적한 화웨이의 문제점 중 하나는 최고경영기구(leading organization)가 없다는 것이었다. 세계적인 기업들의 내부에는 모두 견고한 최고경영기구가 있는데, 화웨이는 그런 조직이 없다 보니 임원들조차 중대한 정책결정에 참여하지 못한 채 극소수의 판단만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생각을 거듭한 런정페이는 IBM 자문단의 조언을 받아들여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그는 즉시 조직을 ‘판매 및 서비스, 전략 및 마케팅, 제품 및 솔루션, 운영 및 지불, 전략 및 합작, 재무, HR’의 7개 부문으로 재편했다. 또 오랫동안 유지해온 상무부회장 직위를 없애고, 대신 7개 사업부문의 총괄책임자들로 구성된 EMT(Executive Management Team)를 만들었다. 어찌 보면 자신의 권한이 줄어들 수도 있는 조치였지만 런정페이는 이 조직개편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매우 흡족해했다. 혼자 정책을 결정했을 때 불러올 수 있는 위험을 최대한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EMT를 6개월가량 운영하자 새로운 문제가 드러났다. EMT의 구성원들이 그동안 런정페이의 뜻을 따라 집행하는 데 익숙해져 좀처럼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형식적으로는 집단결정 과정을 거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런정페이의 의견을 추종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런정페이는 끊임없이 EMT의 의미와 가치를 설명하고 구성원들이 글로벌한 시야와 마인드를 갖추도록 자극했다. 가장 획기적이고 직접적인 조치가 바로 2004년부터 도입된 ‘순환 CEO’ 제도다. 한마디로 EMT 구성원들이 6개월씩 돌아가면서 CEO를 맡는 제도다. 조직 전체의 균형적인 발전과 공동의 책임의식을 끌어내기 위해 회장의 경영권마저 내놓은 상징적인 조치였다.
어디에도 보기 힘든 이 제도가 실시된 후, 화웨이 내부에 감독과 경쟁이 강화되고 각 사업부문이 균형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순환 CEO들은 자신의 임기 동안 이사회의 감독 하에 회사운영과 위기관리를 책임지게 된다. 자기 분야 본연의 업무뿐 아니라 EMT 회의 주재, 문건 발표 등 CEO로서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하고, 이 모든 것이 회사의 발전방향 및 구체적인 계획과 관련된 일들이어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이런 실전훈련 덕분에 그들의 경영관리 수준과 정책결정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또한 순환 CEO로서 정책결정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다른 구성원들이 총괄하는 부문에 대한 지지와 배려, 합작, 타협 등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부서 간의 고질적인 장벽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8장 영웅이 아니라 역량을 키운다

해외진출 초기, 후발주자인 화웨이는 기술우위도 없고 브랜드 파워도 약했기 때문에 가격우위를 내세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서방의 통신업계 거물들은 ‘특허’라는 지뢰를 곳곳에 묻어 화웨이의 진입을 원천 봉쇄했다.
화웨이가 진입장벽을 뚫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적과 친구’의 장벽을 없애는 것이었다. 단기 이익을 장기적으로 바꾸고, 더욱 양호한 경쟁과 합작의 환경을 만들어야 건강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2003년 2월, 런정페이는 연간 매출 보고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화웨이는 매우 약합니다. 외국의 경쟁자들과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죠. 그러므로 일부 시장이나 이윤을 포기하더라도 은인자중(隱忍自重)하며 때를 기다립시다. 영토와 평화를 교환한 이스라엘 총리 이차하크 라빈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또한 경쟁자들과 합작하고, 사업 파트너가 되어 함께 살아갈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공급망의 이익을 누려야 합니다.”
“해외시장을 확장하려면 저가공세보다는 파트너십을 통해 다른 기업과 함께 승리해야 합니다. 괜히 시장을 뒤흔들었다가 그들의 합동공격을 받아서는 안 되니까요. 우리는 이미 정해진 해외시장의 규칙을 따르고 그 안에서 고객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규칙 파괴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하여 나온 전술이 ‘배를 빌려 바다로 나아가는 것’, 즉 합자기업 설립이었다.
―10장 영원한 적은 없다, 이익이 있을 뿐

인간의 운명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탐욕 때문에 바뀐다. 역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그러했다. 명확한 방향이 있고 노력한다면 어떠한 위기가 와도 버틸 수 있으며 다시 따뜻하고 아름다운 나날을 맞게 될 것이다. 금융위기가 더 심각해지고, 화폐가치가 하락하며, 외부 사회에 끊임없이 혼란이 계속되어도 우리는 꿋꿋이 잘살아갈 수 있을까?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있을까? 한국인들처럼 옷장 안에 있던 금을 팔아 나라를 구할 수 있을까? 번영이 계속될 수 있을까?
나는 자신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믿지는 않는다. 역사 속의 재난과 화는 현대인이 반드시 새겨야 한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미래에 생길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없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 방향을 찾는다면 합리적이고 우수하며 진취적인 마음가짐과 태도를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모든 것은 끝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 바로 화웨이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의 흥망성쇠를 뒤로 하고, 봄날의 강물이 동쪽으로 흐른다. 태평양을 향해, 인도양을 향해…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봄날의 강물이 동쪽으로 흐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