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스티븐 호킹은 유명한 저서 《시간의 역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출판사에서 지적하기를 공식 하나 나올 때마다 판매량은 반으로 줄어든다고 했다.’ 그러나 나 자신은 호킹의 책을 보면서 무언가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공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갈릴레오의 말대로 우주는 수학의 언어로 쓰여 있는데, 수학을 피하면서 자연을 묘사하는 것이 가능한가?
-‘서문’에서
가끔 제가 강의에서 만나는 많은 이는 수학의 모든 증명이나 기초, 근본을 이해해야만 한다는 갈증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수학의 근본을 이해하고 싶다. 아주 좋은 포부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근본을 이해해야만 수학을 이해한다.’ 그것은 제 생각으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기초를 잘 모르더라도, 정리나 공식을 계속 사용하고 여러 상황에 어떻게 개입되는지 과정을 살펴보면서 점차 이해가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근본이라는 것이 아예 없을 수도 있거든요.
-‘세미나를 시작하며’ 중에서
체계적인 이론을 개발하는 사람도 결국은 필요하지만, 그런 것 없이도 수학은 항상 진전해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르네상스 즈음에 보통의 수학자들은 √2를 크게 문제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걸 다루는 데 필요한 대수는 꽤 추상적이지만 말이죠. 그런데 흥미롭게도 학자이든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든, 지금 우리 현대문명 속에서는 보통 수를 기하학보다 훨씬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 사고가 컴퓨터식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제1강 ‘수 체계에 찾아온 위기’ 중에서
수학적 사고는 일상적으로 궁금해할 만한 모든 의문을 정확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사물에 대한 이해를 점점 섬세하게 체계화하면 저절로 수학이 된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학에 대해 느끼는 어려움의 핵심이 아닐까요? (중략) 수학을 포함하여 사고와 말을 명료하게 만드는 모든 과정은 꽤 어렵습니다. 그런데 수학에서는 학문의 특성상 그런 것들이 겹겹이 들어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전통이 오랫동안 쌓여온 것이 바로 수학이니까요.
-제2강 ‘본질을 향한 길고 긴 생각’ 중에서
대화를 하다 보니‘ 수학을 한다’라는 것이 늘 무엇인가를 계산하는 것이라는 선입관이 꽤 널리 퍼져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기계적인 계산’도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군요. 기계적 계산은 철학적 관점에서 수학을 완전한 논리 체계로 기술하려는 노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어떤 철학자들은 정리를 증명할 때 공리로부터 출발해서 논리의 룰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만 하면 되도록 수학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어 했습니다. 여기에는 완벽한 공리 체계 속에서 단순한 계산만으로 명제의 참?거짓을 판명할 수 있다는 기대가 암시적으로 있었죠.
-제3강 ‘답을 찾는 기계 만들기’ 중에서
산수와 수학을 구분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어 계산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도 수학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능력입니다. (중략) 저는 수학교육에 관하여 ‘이렇게 해야 한다’는 특별한 해결책을 내놓는 방법론을 거의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수학교육에 대한 자아비판을 너무 좋아합니다. 수포자라는 인식 역시 그런데서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3강 ‘답을 찾는 기계 만들기’ 중에서
문제는 뉴턴의 법칙 같은 근본 원리들은 직접 관찰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아무 힘도 작용하지 않는, 심지어 중력조차도 작용하지 않는 물체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나요? 사실 물리학의 기본 법칙들이 다 그렇습니다. 입자 물리학에서 미세입자들의 운동을 기술하는 운동법칙을 직접 관찰할 수가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R를 믿든 믿지 않든 R → Q 같은 추론은 중요합니다. 특히 Q가 직접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을 다루는 명제이면 좋겠지요. 그래서 참인 Q를 검증함으로써 R의 옳고 그름에 대한 증거를 얻게 됩니다.
-제4강 ‘논리적 사고와 수학적 사고’ 중에서
함수가 무엇에 정의되어 있는가를 규명하는 것이 정의역이죠. 예를 들어 사람의 집합에 정의된 함수들을 찾아볼까요? 일상적으로 관심 있는 함수들 가운데, 사람을 하나 집어넣으면 수가 나오는 함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주민등록번호라는 함수에서 ‘정의역’은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국민’입니다. 또 찾아볼까요? 쉽게 생각하면 체중도 사람의 함수입니다. 사람의 나이도 함수이고, 키도 마찬가지죠. 1분에 심장이 몇 번 뛰나 재는 맥박수도 함수입니다. 우리가 늘 관심 가지는 종류의 함수들이죠. 그리고 이런 함수들 사이의 ‘관계’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가령 키와 체중의 상관관계는 어떤가요?
-제5강 ‘세상을 이루는 함수들’ 중에서
소리의 주파수 분석은 과학의 패러다임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보통 우리가 듣는 소리가 직접 나타나지 않는 더 근본적인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수학적인 방법론으로 그 성분들을 계산해낼 수 있다는 착안은 20세기 입자물리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제7강 ‘차원이 다른 정보들’ 중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은 과학의 조류를 바꿨을 뿐 아니라 20세기 초 많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일반 상대론에서 ‘시간이 상대적이다’, ‘시공간이 휘어져 있다’는 종류의 문장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도 어딘가 심금을 울리는 신선함이 있지요.
-제8강 ‘우주의 모양을 찾는 방정식’ 중에서
모양을 파악한다는 것 자체가 이런 상호작용, 저항을 느끼는 일입니다. 빛이든 초음파이든 손이든 진행하는 곳과 진행하지 못하는 곳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 관점에서 보면 아인슈타인 이론의 구체적인 수학을 이해 못하더라도 우주가 모양이 있다는 게 무슨 뜻인지 파악이 됩니다. “공간에 모양이 있다.”(중략) 그러니까 수학을 통해 세상의 실체를 파악해나갈 때 생각하던 그림이 하나도 나타자지 않더라도 그렇게 놀랍지 않다는 말입니다.
-제9강 수학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
저는 학문을 할 때에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에도 달성할 수 없는 목표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리를 하나 더할 때마다 불확실성이 생기고, 대수 뒤에 기하 뒤에 대수가 계속 숨어 있어서 진리를 찾으려는 사람들이야말로 학문의 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정신병이 생길 정도로 창의적인 예술가가 가장 숭고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 아닐까요. 따라서 수학여행을 즐기되 스스로를 괴롭힐 목표를 한두 개 정도는 가지고 떠나는 것을 권장하겠습니다.
-‘세미나를 마치며’ 중에서
수학적 사고는 일상적으로 궁금해할 만한 모든 의문을 정확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사물에 대한 이해를 점점 섬세하게 체계화하면 저절로 수학이 된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학에 대해 느끼는 어려움의 핵심이 아닐까요? (중략) 수학을 포함하여 사고와 말을 명료하게 만드는 모든 과정은 꽤 어렵습니다. 그런데 수학에서는 학문의 특성상 그런 것들이 겹겹이 들어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전통이 오랫동안 쌓여온 것이 바로 수학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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