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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 이안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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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이안 무어

영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패션에 목숨 건 모드족 무어 씨는 매일 반복되는 교통체증과 주차난, 무미건조하게 획일화된 영국 신도시의 주택과 팍팍한 삶에 지쳐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 시골마을로 이주를 결심한다. 하지만 평온하기만 할 줄 알았던 루아르 계곡에서의 삶은 꿈꾸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일상이 펼쳐지는데….

모던한 수트를 쫙 빼 입고, 프랑스 시골 농장에서 발정난 말의 똥을 치우며 허우적대는 영국 신사라니! 프랑스의 낭만적인 시골 생활에 대한 영국 남자의 바람은 저 만치 멀어져 가고, 무어 씨의 일상은 극악무도한 고양이 삼형제, 변태 성향의 개, 호시탐탐 도망칠 기회를 엿보는 조랑말과 갖은 동물들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프랑스 할머니들은 또 어떤가! 길거리든, 장터든, 슈퍼마켓이든 만나면 언제고 끝도 없는 잔소리가 시작된다. 도시와 시골,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좌충우돌하는 무어 씨의 일상은 영국식 유머와 냉소로 가득하고, 그 안에 따뜻한 가족애와 신선한 문화충격이 곳곳에 폭죽처럼 터져 나온다. 언어도 문화도 전혀 다른 프랑스에서 영국 남자 무어 씨와 그의 가족들이 펼치는 배꼽 잡는 시골 정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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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내 계획은 이런 게 아니었다. 우리가 프랑스 시골로 이사 오려고 했던 이유를 나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이유는 레닌이 1917년에 러시아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세 가지와 똑같았다: '평화! 빵! 토지!' 계약서에 서명을 한 후 5년이면 나는 그간의 노력의 열매를 누리고 있어야 했다. 내 계획에 따르면 지금쯤 밀짚을 질겅질겅 씹으며 나무 밑에 느긋하게 앉아서, 가끔씩 영국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불쌍한 녀석들…'이라고 중얼거리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러시아 국민도 나도 모두 속았다.
내 가족 , 내 동물

주니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획이 틀어질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말이 내 팔을 문 것이다.
'말이 내 팔을 깨물었어!' 내가 소리를 질렀다.
'그냥 친한 척하는 거야.' 아내가 말했다.
'하지만 팔을 물었는데?'
'당신이 뭘 잘못했나 보네.'
'내 잘못? 팔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잘못이야?'
그 순간 나는 앞으로 이 말이 무슨 사고를 치고, 무슨 난리를 떨어도 아내는 말을 쫓아내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아내의 눈에 주니어가 하는 행동은 전부 옳았다.
내 가족 , 내 동물

세 아이 중 유일하게 영국에서 태어난 새뮤얼은 셋 중에서 가장 '영국적인' 아이다. 물론 여기에서 '영국적'이라 함은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새끼bugger'라는 욕을 많이 한다는 뜻이다. 새뮤얼의 동생인 모리스와 테렌스는 둘 다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특히 제일 어린 테렌스는 (적어도 내 생각에는) 가장 프랑스인에 가깝다. 항상 자기 주장이 강하고 자신의 의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파업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반면에 모리스는 감성이 넘치고 예술가 기질을 타고나서 창의적이고, 자기 감정을 쉽게 표현한다. 하지만 그런 모리스도 프랑스 친구들 사이에서 앵글로-색슨의 본색을 드러낼 때가 가끔 있다. 가령 축구 연습 때 잉글랜드 유니폼을 입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게 그렇다.
자유, 평등, 현실

'그럼 이제 와인에 대해서는 잘 알겠네?' 프랑스에 산다고 하면 사람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다. 뒤이어 나오는 질문은, '이제 프랑스어는 잘 하겠네?', '왜?' 그리고 '주위에 사는 프랑스인들은 괜찮아? 프랑스 사람들은 원래 영국인을 싫어하잖아'이다.
우선 그 세 질문에 대한 답을 순서대로 적어보면, '웃기지 마', '왜는 왜야' 그리고 '웃기지 마'이다. 와인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다. 나는 좋은 와인을 구분할 줄 모른다. 물론 와인을 좋아하고 특히 투렌S 지역에 온 후로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에 맛을 들이게 된 건 사실이다. 그 전까지는 무조건 '진한 보르도' 하나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포도 종류도 모르고, 빈티지 와인도 모른다. 향도 잘 모르겠고, 와인을 어떻게 섞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다 좋은 와인을 만나면 행복한 무식한 아마추어일 뿐, 찾아내는 방법은 모른다. (그럼 좋은 와인인지는 어떻게 아냐고? 그냥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까.)
이방인

영국의 전통 하이 스트리트가 죽어가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도살장도 몇 남지 않았고, 대장간도 마찬가지다. 그렉스는 빵집은커녕, 식료품점이라고 부르기도 힘들고, 마지막 남은 서점인 워터스톤즈는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우울한 현실이다. 남은 건 부동산 중개소와 웨더스푼, 하나같이 똑같은 디자인만 파는 옷가게들, 그리고 맥도날드뿐이다. 인터넷 쇼핑몰과 대도시에서 온 대형 상점들, 그리고 말도 안 되게 비싼 주차비로 인해 길거리가 가진 개성도, 소규모 독립상점들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하지만 그런 현상이 프랑스, 특히 프랑스 농촌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대형 슈퍼마켓은 여기에도 존재하지만 프랑스 농촌 사람들은 아직 인터넷 쇼핑몰을 신뢰하지 않고, 작은 마을들에서는 여전히 주차가 무료다. 우리 마을에만 두 개의 정육점과 네 개의 빵집이 있고, 양초 가게는 없다. 대장간 하나와 꽃집 두 군데, 그리고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약국이 세 군데 있다. 이 모든 가게들이 약 4천 명의 인구를 상대로 물건을 파는 것이다.
장터로!

내 생각에 프랑스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파리지앵, 즉 파리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다른 프랑스인들을 수준이 낮다고 내려다본다. 두 번째 그룹은 파리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프랑스인들이다. 이 사람들은 파리 사람들은 진정한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 번째 그룹이 있으니, 레퐁시오네르les Fonctionnaires, 즉 공무원들이다. 파리 사람들과 '진정한' 프랑스인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집단이다. 그렇다고 해도 프랑스 공무원들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은 없다. 프랑스의 공무원들은 구 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STASI 같아서 아무도 성질을 건드리지 않으려 하고, 심지어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피한다. 여차했다가는 자신이 제출한 서류가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은 공무원들이 파업하면 나라가 멈춘다는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다. 프랑스 공무원들은 이미 프랑스의 모든 것을 꽉 잡고 있다. 먹지를 이용해 양식을 복사하게 만들고, 민원인이 이 부서 저 부서를 돌아다니게 (그래서 돌아버리게) 만들고, 미로처럼 복잡한 절차를 만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민원인을 혼란에 빠지게 하기 때문에, 이미 프랑스라는 나라는 작동을 멈춘 상태라는 사실이다.
자유, 평등,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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