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최선의 롱런
문보영
제36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작가 문보영의 대충과 최선 사이에서 어슬렁거리며 간 보는 일상. 이 책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느라 넉 다운된 사람들에게 ‘존버’로 일군 소확행 대신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일상을 사는 법을 알려준다. 대충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서 묵묵하게 롱런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멀리 봤을 때, 최선보다 ‘준최선’이 더 가성비가 좋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준최선이 몸에 배면 어떤 일을 해도 디폴트값으로 준최선하게 되기 때문이다.
똑같지는 않지만 특별할 것도 없는 그저 그런 하루들. 오늘 하루 별 일 없이 잘 넘겼다 싶으면 나름대로 선방한 존버들의 인생. 어쩌면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생각이, 우리의 불행을 시작을 알리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럴 땐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삶은 ‘무의미의 축제’라 생각하고 최선과 준최선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좋다. ‘과거의 나’도 ‘미래의 나’도 아닌 오직 ‘오늘의 나’를 위해 숨 고르고 ‘롱런할 준비’를 하는 사람이 더 끈질기고 오래갈 수 있을 것이다.
책속에서
소중한 기억이 삶을 끈질기게 만들 때
불행은 접착성이 강해서 가만히 두어도 삶에 딱 달라붙어 있는데, 소중한 기억은 금방 닳기 때문에 관리를 해줘야 한다. 그래서 추억은 가지고 돌아다니는 것이 좋다. 체감할 수 있도록 등에 메고 다니거나, 가방에서 책을 꺼낼 때 이따금 눈이 마주치도록 하거나, 손이 긁힐 수 있게 새로 출력해서 종이의 사면을 날카롭게 한다거나. 좋은 기억에 관한 트리거를 덫이나 지뢰처럼 심어 두는 것이다. 소중한 기억이 지뢰처럼 계속 폭발할 수 있도록. 그러면 소중한 비밀은 일회성에서 벗어나 간헐적으로 나를 미움에서 구출할 수 있다.
둔함 존버 vs 예민 존버
“둔함 존버 vs 예민 존버의 교전이군.” 나는 케첩이 없는 밍밍한 감자튀김을 집어먹었다. “왜 우리는 어딜 가나 대치 중이냐….” 정강이가 더블 치즈버거를 한입 베어 물며 말했다. 우리는 예민함으로 존버했고, 나머지 인간들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둔함으로 의도치 않게 존버하는 듯했다. 맥도날드 2층의 사람들은 다 같이 어떤 종류의 존버를 행하고 있었고, 나는 1층에 내려가서 케첩을 받아 오지 않는 케첩 존버까지 해내고 있었으며, 내 친구는 케첩이 아닌 일에 대비하지 않는 비(非)케첩 무대비 존버를 하고 있었다.
별거 없어서 계속 보게 되는 타인의 일상
중심 사건에서 풀려난 이야기들은 조각으로 떨어져 나가며 여러 공간에 심어진 채 자라나기 시작한다. 브이로그는 우리 삶에, 흥미진진한 서사가 없다는 지독한 사실을 유쾌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큰일이나 서사는 눈길을 끌지만 휘발성이 커서 금방 우리를 떠나기 때문이다. 별게 있어서 보기 시작한 것들은 별게 없는 순간을 견디지 못하게 하지만 일기적인 일화들을 사소하고 감각적으로 쌓아 올린 브이로그는 아무것도 아님을 지속하는 힘과 별거 없음에 내성을 쌓도록 도와준다.
나에 관한 항의
사랑받으면 장땡이지, 하는 생각으로. 시나 일기, 내면의 것을 토해 낸 것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여전히 어색하다. 나는 누군가 그런 식으로 나를 사랑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 뒤틀리고 왜곡된 사랑법은, ‘나를 알면 상대가 떠날 것’이라는 불안에 기반한 중증의 방어 기제인 동시에 ‘네가 나를 알아볼 리 없다’는, 타인의 이해력을 신뢰하지 않는 오만함에 기반한다. “넌 겁쟁이지? 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표현할 줄 모르고, 진지한 관계를 두려워하지? 넌 왜 왜 뭔가를 바라도록 너 자신을 내버려 두지 않는 거야?” 누군가 나에게 항의했다.
픽션 일기) 은행 일기 1
그런데 꿈에서 무도수는 나와의 대화를 거부하려는 듯 앞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나는 그 애의 뒷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자신이 나를 보지 않는 모습을 내게 보여 주려고 애쓰는 것 같았고, 나는 그 노력에 상처받았다. 꿈에서 무도수는 모자를 거꾸로 쓰고 있었고, 안경은 안 쓰고 있었다. 나는 그 애가 안경을 안 쓰고 있을 때를 더 좋아했다. 안경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나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경을 쓴다는 건 나보다 더 자세히 볼 게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 친구에게 그건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모습마저 좋아했다. 나는 걔가 나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게 좋았다.
우리가 원하는 불행은 절대 안 줘
이따금 나는 거래 기도를 한다. 내 정신이 허락하는 예산 범위 안에서 불행을 교환을 해보자는 외교 전략이다. 건드리면 죽을 단 하나의 급소, ‘절대 견디지 못할 불행 하나만 빼고 나머지는 괜찮으니 다른 걸 건드리십쇼’라고 말하는 불행 장사다. 이 불행을 내놓을 테니 다른 불행을 달라고, 내가 팔 수 있는 불행들을 장사판에 부려 놓고 골라 보라는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우리의 거래가 성사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이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게 뭔지 알아냈으니 정확히 그것을 건드리는 것이다.
타존감
나는 확신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리는 사람은 관계도 사랑도 얼버무릴 것만 같다. ‘널 사랑하는지 잘 모르겠어.’ ‘널 안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 ‘앞으로 내가 부자가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 ‘저 나무가 노란색인지 파란색인지 잘 모르겠어.’ 어차피 확실한 건 세상에 없으니까 뭐든 잘 안다고 말이라도 해 주는 사람이 좋다. “나을 겁니다. 3개월만 지나면 흉터도, 그때 입은 상처도, 기억도, 말도, 눈빛도 다 잊을 겁니다. 그럴 겁니다.” 나는 의사가 내가 믿지 못하는 걸 대신 믿어 주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최고의 휴식
사랑은 은행 어플 같다. 은행 어플은 사용할 때마다 “○초 후 로그아웃됩니다. 연장하시겠습니까?”라는 알람이 뜬다. 그때마다 마음이 급해진다. “연장 버튼이 어딨지?” 다급하게 찾아 몇 분을 더 연장한다. 아침에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도 저녁이 되면 사랑은 몇 초 후 로그아웃되기 때문에 어서 연장 버튼을 찾아 눌러 대야 한다. 그래서 사랑은 때로 연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말씹러와 거인
“제가! 돼지를 잃어버렸습니다!” 내가 외쳤다. 그는 놀라지 않았다. “무슨 색이죠?” 나는 안심했다. 그 사람의 말투에서 미루어 보아 그가 이미 어떤 돼지인지 아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나쁜 사람(다섯 살 꼬마가 잃어버린 돼지를 훔치려는 못된 어른)일 수도 있으므로 자신들이 보호 감찰 중인 새끼 돼지를 위해, 먼저 나의 신상을 확인하려는 듯했다. “복숭아색 피부.” 나는 대답했다. “무엇과 같이 있었죠?” 그가 물었다. “걘… 혼자인데… 늘 그랬는데….” “그물과 함께 있었죠.” 그가 나무라듯 말했다. “아…! 맞아요. 베이지색 그물.”
질문에 관하여
나는 이따금 설명하기 어려운 예감에 사로잡힌다. 예감의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사건일 수도 있는데 대체로 사람인 경우가 많다. 누가 다가올 거란 예감. 그 사람으로 인해 내 인생의 시즌2가 시작될 것 같다는 느낌. 드라마의 시즌1이 마무리되고 시즌2가 시작될 때, 주인공만 유지되고 나머지 주연들이 교체될 때가 있다. 주인공은 시즌1의 주역들을 잊은 것처럼 살아가고 새로운 인물들과 새로운 모험을 떠난다. 그럴 땐 주인공이 괘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를 찾아오는 어떤 예감은 바로 이런 느낌이다. 익숙한 세계의 한 장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모험이 펼쳐질 거라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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