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정의
표창원
프로파일링을 하듯 뜯어본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
보수, 진보의 기세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엎치락뒤치락 해온 지난 5년
어지러웠던 그 시간을 지나오며, ‘올바른 직설’ 표창원 전 의원이 써내려간
한국 보수 · 진보의 ’불의와 부끄러움의 기록’
- 한국 정치의 ‘범죄적 요소’를 찾기 위해 ‘잠입수사’ 하듯 들어선 길
- 그리고 다시, ‘게으르지 않은 정의’를 말하기까지… 표창원의 자기 고백
- 보수, 진보의 갈림길에서 읽어야 할 정치 교양서
[게으른 정의]는 범죄심리학자로 잘 알려진 표창원 전 의원의 정치비평서이다. 범죄현장에서 진실과 정의를 찾듯, 한국 정치에서의 진실과 정의를 찾기 위해 들어선 국회의원의 길, ‘상설 전투장’ 같았던 국회에서의 시간들과 그 안에서 목격한 보수, 진보의 불의에 대한 기록이다. 프로파일링을 하듯, 그간에 전념해온 범죄 분석의 경험과 이론, 잣대를 활용해 정치계를 수사, 분석한다. 보수의 품격을 잃어버린 보수, 촛불 명령을 무력하게 만든 진보를 어느 누구의 눈치 보는 것 없이 대차게 폭로하고 비판한다. 본업 아닌 ‘다른 일’로 바쁜 국회의원들이 알면서도 저지르는 불법들, ‘전쟁 국회’를 부추기는 ‘실세’들을 낱낱이 열거하고, 한국의 청년 정치가 나아갈 바를 세계 각국의 청년 정치와 비교하면서 실현 가능한 전략과 방법으로 제시한다. 저자 스스로 “정치와 무관했던 한 시민이 본의 아니게 정치인이 되어 시민을 대표하기 위해 애쓰면서 겪고 느낀 솔직한 심정의 기록”이라고 밝힌 이 책은, 중요한 선거들을 앞두고 우리에게 필요한 정의가 무엇인지 비교하며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아울러 표창원의 소신 있는 발언을 신뢰해온 독자들에게 오래간만에 속 시원하게 해줄 비평서가 될 것이다.
책속에서
조국 전 장관이나 가족은 억울하다고 느낄 수 있고 검찰의 표적 수사와 먼지털기식 과잉수사에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우리가 야당이라면 과연 그런 주장에 동의하고 공세를 멈췄을까? 조국 전 장관보다 훨씬 더 억울한 입장에 처했을 수 있는 수많은 힘없는 시민, 서민 피의자들을 위해, 정치적 사건이나 정치적 이해가 크게 개입된 사건 외에, 정부와 여당이 온 힘을 다해 검찰과 맞서 싸운 적이 있었나? 공수처와 검경수사권 조정에 저항하는 검찰의 부당한 수사라고 해도, 힘없는 개인이 아닌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의 법무부장관으로 대응하는 방법이 옳은가? 한마디로 ‘공정하고 정의로운가?’에 대한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진보가 망가지고 실수하고, 잘못하고 욕을 먹는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보수가 살아나고 회복되지는 않는다. 2017년에 이를 악물고 결행했던 바른 정당의 보수 혁신 시도, 기득권에 안주하고 낡은 수구 냉전 논리에 기생하길 거부하는 보수의 혁신, 재탄생 시도는 다시 일어나야 한다. 만약 혁신을 하지 않는다면 현 진보 정권과 집권 여당이 정신을 차리고 내부의 곪은 부분을 과감히 도려내고 중도와 합리적 보수층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그 순간, 지금의 보수 정당은 과거 0.5% 지지율의 나락으로 떨어진 새누리당의 처지가 되어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보수 정치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냉정하고 엄격한 성찰, 이를 통한 용기 있는 헌신을 결의하는 보수 정치인들의 진지한 노력을 시대가 기다리고 있다.
이렇듯 없는 죄도 만들어 뒤집어씌우는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면 ‘죄수의 딜레마’로 인한 범죄 혐의의 입증과 그에 따른 처벌 강화는, 해당 범죄자들이 아닌 사회 전체를 위해서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범죄의 추가 발견과 처벌 강화가 걸린 ‘죄수의 딜레마’가 아닌, 사회 공익이 걸린 ‘정치인의 딜레마’ 상황에서는 어떤 선택이 이루어졌을까? 죄수, 피의자들과 달리 소통과 협력을 통해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를 줄 수 있는 선택이 가능한 정치인들은 과연, 범죄 피의자들과 다른 선택을 했을까?
5년 전,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총선 지역구 후보로 나서게 된 뒤 나의 선거캠프로 찾아온 사람들 중에는 참 위험한 사람들이 많았다. 선거 장비 물품을 계약하면 이중장부를 마련해 선거 비자금을 만들어주겠다는 사람, 이동용 저장장치(USB)를 들고 와 그 안에 ‘지역 유권자 수만 명의 연락처가 있다’며 거래를 요구하는 사람, 회원이 수천 혹은 수만 명인 동호회나 연합회, 교회 혹은 향우회 지지를 확보해주겠다며 접근하는 사람, 상대 후보의 약점이나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퍼트려주겠다는 사람, 자신에게 현금을 맡겨주면 자원 봉사자 식사 대접 등의 불법을 대신 해주겠다는 사람…. 나의 단호한 거절에 수긍하고 돌아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일부는 지금까지도 나를 비방하고 다닌다. 이들 혹은 이들을 소개하고 연결해준 사람들의 논리는 같았다. “상대방도 하는 일이고, 선거 때마다 해오던 일인데 당신 혼자만 안 하면 질 수밖에 없다”, “걸릴 우려도 없거니와 걸린다고 해도 후보에게 책임이 가지 않게 할 것이다”.
국회의원의 배우자들은 ‘의원이 휴일도 없이 매일 새벽에 나가 밤에 들어오는 바람에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힘들고 자녀 교육에도 어려움이 많다’고 한숨을 쉰다. 그런데 왜 국회의원들은 ‘일 안 하고 비싼 혈세만 축낸다’는 비난을 들을까?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정신없이 바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중 상당 부분이 상임위나 본회의 참석, 법안 심의 처리 혹은 이를 위한 준비 등의 정규 ‘의정활동’이 아닌 ‘다른 일’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일들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마도 ‘지역구 활동’일 것이다. 지역 행사에 참석하고, 유력 단체나 인사들을 만나고 이들과 식사하며 ‘긴밀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등의 활동 말이다. 정쟁이 잠시 멈추고 오랜만의 ‘국회 정상화’로 법안심사 소위나 상임위원회를 열게 되었는데, 다수의 의원들이 ‘지역 활동’을 하고 있어서 의결정족수나 개의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고 그 때문에 회의 일정을 못 잡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한민국 국회의 ‘일상사’가 되었다. 심지어 위원장이나 간사 의원에게 연락이 닿지 않거나 지역 일정 때문에 바빠서 회의 일정을 잡지 못하는 촌극도 종종 벌어진다.
결국 잘못한 것도 없는 공무원은 해당 국회의원을 찾아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높으신 의원님의 심기를 달래지 않으면 그 불똥이 자신의 상관의 상관, 심지어 장관에게 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에 출석한 장관 등 국무위원이나 국정감사 증인 등에 대한 고함과 막말, 협박과 야단은 방송을 통해 숱하게 중계되었다. 맘에 안 드는 장관이나 기관장에게는 대놓고 ‘당신 때문에 그 부처(기관) 예산이 최대한 깎일 것’이라고 공언하는 일도 흔히 보인다. 의원실로 장 차관이나 국장, 혹은 실무 공무원들을 호출하거나 전화를 걸어 호통치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일 등, 국민이 볼 수 없는 곳에서의 ‘갑질’은 더욱 잦고 심하다.
정치적 견해나 입장 차이를 이유로 폭력을 가하는 ‘정치적 테러’ 범죄의 발생은 대부분 유사한 메커니즘을 보인다. 우선 널리 알려진 정치인, 정당, 학자, 종교인 등 소위 ‘공인’의 ‘계산된’ ‘혐오 발언(hate speech)’이 먼저 나온다. 두 번째 단계로 신문, 방송 등 대중매체가 이를 보도하거나, SNS 등 온라인 공간에서 많은 구독자를 가진 소위 ‘인플루언서’가 동일한 취지, 맥락의 내용에 자극적이고 과장된 표현이나 허위 사실 등을 교묘히 섞어서 전파한다. 세 번째 단계는 이에 자극받은 소위 ‘악플러(keyboard warrior)’들이 우후죽순 관련 기사나 영상, 맨션, 게시물 등을 퍼 나르고, 고조된 분노 감정과 공격성을 드러내 공유하며 이를 증폭시킨다. 그렇게 되면 공격의 대상자로 좌표가 찍힌 사람은 무차별 온라인 공격에 노출된다. 마지막으로 평소 신뢰하거나 자신과 성향이 일치한다고 생각하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유사한 분노와 공격성을 표출하는 분위기에 고무된다. 그리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왜곡된 정의감에 사로잡혀, ‘나도 뭔가 기여를 하고 싶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전쟁 국회’를 부추기는 이들 중 첫 번째로 꼽아야 할 대상은 ‘언론’이다. 각 당 대변인이나 원내 대변인들은 수시로 기자들에게 ‘상대 당 누가 이런 말을 했는데 뭐라 대응하시겠어요?’라고 묻는 전화를 받는다. 무대응하면 일방적으로 상대방 얘기만 보도될 테니 여론전에서 불리할 것이란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인다. 당연히 ‘강력 대응’이 나오게 되고 한동안 후속 기사거리가 될 ‘싸움판’ 하나가 만들어진다. 각 방송의 정치 대담 프로그램도 아예 대놓고 논쟁적 주제로 양 진영 정치인이나 논객을 불러 싸움을 붙이고 구경꾼을 모은다. 국회 각 상임위원회 회의장에서는 전날 혹은 당일 오전에 보도된 제목이나 기사의 내용을 거론하며 상대를 공격하는 발언이 난무하고, 그에 대응하는 날선 반박 및 역공이 오간다. 그날의 안건인 법안 심사 등은 제대로 다루지도 못한 채 정회나 파행으로 가는 일이 다반사다.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는 다시 언론에 보도되고 험악한 표정과 전투적인 표현들은 그날의 뉴스 화면을 장식한다.
문제가 너무 크고 심각해 선거에서 참패하거나 지지율이 폭락하면 정당들은 소위 ‘물갈이’와 ‘인재 영입’을 반복한다. 인위적이며 상명하달식의 ‘외부 수혈’ 혹은 ‘돌려막기’를 하다 보니 지역에선 ‘낙하산 공천 반발’이 반복된다. 기존 정치 문화와 관행에 익숙하지 않은 외부 영입 인사들 역시 상처와 오점을 남기고 떠나거나, 빠르게 기존 정치인의 모습을 닮아가는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받는다. 청년 정치인의 경우에는 본격적인 정치 무대인 ‘지역’이 아닌 ‘전국구’ 비례 대표나 당의 직책으로 영입되는 경우가 많다. 정당과 기득권 정치인들이 자기반성과 희생을 통한 과감하고 근본적인 변혁을 시도하기보다 그 순간만을 모면하려는 의도로 ‘물갈이’와 ‘인재 영입’이라는 수단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몇몇 개인 청년들이 소비되어온 형태가 우리의 청년 정치이다.
기억에 남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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