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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빅 컨버세이션 - 황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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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컨버세이션

황창규

삼성전자, 국가CTO, KT를 이끌며 오늘의 성장 동력을 마련한
뛰어난 기술인이자 리더인 황창규!
이건희, 스티브 잡스, 팀 쿡, 클라우스 슈밥, 헤르만 지몬, 마크 베니오프 등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온 리더들과의 만남과 배움을 기록하다.


이 책《빅 컨버세이션》은 삼성전자, 국가CTO, KT를 이끌며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을 마련한 황창규 전 KT회장이 그동안 교류해 온 세계적인 리더들과의 만남과 그를 통한 배움을 담은 책이다. 30여 년을 기술 혁신의 현장에서 도전자로, 주인공으로, 그리고 든든한 지원자로 노력해왔던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가 들어있다.

저자는 반도체 산업의 후발주자였던 삼성전자를 시장점유 세계 1위로 이끌고, 국가CTO 직을 맡아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세계를 누비고, 침체되어있던 내수 중심의 통신회사에서 벗어나 KT를 글로벌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겪었던 위기와 기회의 순간들, 수많은 리더들과의 만남과 소통의 생생한 현장 모습들을 이야기한다. 그 현장에는 이건희, 스티브 잡스, 팀 쿡, 헤르만 지몬, 클라우스 슈밥, 마크 베니오프, 에릭 슈미트 등 세계적 리더들이 함께한다.

이 책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도전하고, 실현해 온 수많은 리더들과 함께 노력했던 만남과 배움의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 기록을 통해 누군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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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삼성그룹의 최고경영진이 배석한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은 “해볼 만한가?”라고 물었다. 우리가 단독 개발로 플래시 메모리 사업을 치고 나갈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플래시 메모리는 미래 반도체 산업의 핵심입니다. 일부 기술만 보완하면 승산이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D램이 미래에는 없어진다는데?”
또 주저없이 대답을 이어갔다.
“PC시대에서 D램은 CPU의 보조 부품 정도의 역할을 했지만 미래에는 달라집니다.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에서는 꼭 필요한 메인 부품이 될 것입니다. 모바일 기기에 맞는 저전력 D램을 이미 계획 중에 있고 이름도 ‘모바일D램’으로 정하고 개발 진행 중입니다. 수요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건희 회장은 자신이 있는지를 물었고 나는 새로운 모바일시장을 만들어 나가겠다며 당차게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이건희 회장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것을 봤다.

“황 사장, 황 사장은 이때까지 큰 목표를 향해 달려서 1등도 해보고 지금 자리에 왔지만, 황 사장이 지금 투자를 안 하면 후배들은 언제 1등을 해보고 글로벌 1등을 지킬 수 있겠나?”
이건희 회장은 본사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12인치 양산 투자를 시작하라고 독려했다. 이 덕분에 현재까지도 상용화되고 있는 12인치 웨이퍼 양산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아직도 당시의 투자 결정을 두고 언론은 ‘위험을 품은 과감한 투자’로 묘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12인치 웨이퍼로 시장에서 치고 나갔고 ‘결단과 성공의 수레바퀴’를 만들어 나갔다.
20년 동안 12인치 생산 라인은 화성사업장(9개)을 시작으로 기흥, 평택, 미국오스틴, 중국 시안까지 총 17개로 늘었다.세계 최고 기술과 제조 생산 능력을 갖춘 압도적인 모습으로 한국 경제를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나는 꿈을 꾸는 엔지니어였다. 이건희 회장은 누구보다 나의 꿈을 믿어줬다. 반도체 시장이 아무리 안 좋고 시장이 수시로 변해도 이건희 회장은 결정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것이 삼성전자 반도체를 만들었다. 낸드 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도시바를 역전하고 격차를 넓히는 데는 불과 2년도 걸리지 않았다. 플래시 전체 시장에서 인텔의 독주와 낸드 플래시 시장에서 도시바의 독주는 이전에 십수 년간 유지됐고 이후로도 바뀔 것 같지 않았다. 세계 산업계는 삼성전자의 추격과 역전이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을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애플이 순순히 수용하기 어려운 수준의 가격을 제시했다. 스티브 잡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주문 수량을 말하며 적극적으로 가격 협상에 나섰다. 3시간 넘게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이재용 상무는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사장님, 오늘 저는 옵서버(Observer, 참관인)입니다” 라는 말로 내게 힘을 실어준 상황이었다.
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스티브 잡스가 펼쳐놓은 ‘애플이 열어 갈 스마트왕국’에 대한 플랜(Plan)이었다. 터틀넥에 청바지 차림으로 그 플랜을 화이트보드에 적기 시작했다. 직선적인 말과 제스처, 강렬하게 상대를 압도하는 어조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꿈꾸는 제품과 출시 로드맵을 설명했다. 금세 화이트보드가 도표와 글씨로 꽉찼다. 스티브 잡스의 손으로 직접 쓰인 아이폰(iPhone), 아이패드(iPad), 아이티브이(iTV), 맥북에어(MacBook Air)등의 글씨는 아직도 머리에 선명히 남아있다. 스티브 잡스가 뿜어내는 열기 속에서 나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나 출시와 동시에 세상을 바꿔놓을 애플 제품들의 위력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시장의 흐름과 기술의 발전 속도를 확인하고 먼저 준비한 덕분에 나는 반도체로 나름 글로벌 성공 신화를 만들 수 있었다. 애플에 플래시 메모리를 적극적으로 소개한 것처럼 고객이 알지 못하는 숨은 니즈를 일깨워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장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전략 중 하나였다. 결과적으로 애플과 삼성전자의 만남은 글로벌 스마트 혁명의 시작을 가져왔고, 이후 삼성전자의 플래시 메모리 개발로 혁명은 점차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지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애플과 삼성전자,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글로벌 최강자로 서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금은 1등을 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계속 1등을 한다는 보장은 없지 않나요?”
데이비드 피셔 회장은 어떻게 추격자들을 따돌릴 것이냐고 물었다. 1등을 하고 있다는 자만심에 휩쓸려 얼굴 인사만 하고 갈 생각이었다면 큰일 날 상황이었다.
“전에 이야기했듯이 우리에게는 노마드 정신이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D램 회사였으나 플래시로 바꾸고, 퓨전 메모리로 바꾸고, 이제는 SSD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 결과, 애플과 노키아 등 굴지의 기업이 우리의 고객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설명을 하니 데이비드 피셔 회장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러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조직입니다. 매출이 커지니 이익이 커지고 조직이 커집니다. 어쩔 수 없는 섭리입니다. 그래도 저는 불통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리 엔지니어들은 언제든 저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의사 결정도 굉장히 단순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격자보다 앞서갈 수 있습니다.”

협상이 마무리되자 팀 쿡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나는 그런 팀쿡을 보면서 오랜 친구에게나 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팀 쿡, 그게 다인가요?” 팀 쿡은 의아스럽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우리 반도체로 애플은 곧 대박을 칠 텐데 우리한테 좋은 선물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웃으며 얘기했다. 팀 쿡은 웃으면서 ‘화이트 체크(White Check,백지수표)’를 말했다. 그리고 일이 잘되면 당연히 보답하겠다는 말과 함께 떠났다.
부탁받은 스티브 잡스에 대한 회고 글을 마무리할 즈음 나는 스티브 잡스에게 자주 들었던 질문을 떠올렸다.“닥터 황, 황의 법칙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CTO가 할 법한 걱정을 하는 그에게 나는 “당신이 상상하는 그 시간 이상으로 계속될 것”이라는 답을 주곤 했다.

‘황의 법칙’이 선언되던 2002년 IT 업계는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삼성전자도 D램 가격의 폭락으로 긴축을 검토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며 PC 중심의 성장이 모바일 중심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메모리 신성장론’을 제시했다. 이후 현실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반신반의하던 사람들도 PC 중심에서 모바일 중심인 시대로 패러다임이 전환됐음을 인정했다.

나는 기술에 대한 갈증이 깊어진 연구원들과 함께 일본으로 날아갔다.1990년부터 히타치 중앙연구소와 기술교류가 시작됐다. 온종일 여러 분야로 진행되는 회의에 우리 연구원들은 혀를 내둘렀다. 일본의 기술력은 상당했다. 회의를 마치면 양국 연구원들이 모여 늦게까지 저녁을 먹었는데,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잠자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그날 들은 이야기를 밤새며 정리했다. 그렇게 만든 한 권의 공책이 반도체 개발에 처음 뛰어든 삼성전자 연구원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됐다. 그들의 앞선 기술을 벤치마킹하는 부단한 노력으로 일본의 앞선 기술을 빠르게 추격할 수 있었다.

누구나 이야기하듯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못하는 것을 남들만큼 하는 것도 어렵지만, 잘한다고 하는 것을 더 잘하는 것도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런데 신기하기도 결승점에 도달해보면 나도 모르게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라고 말하게 된다. 내가 만나본 많은 사람이 그랬다.
크고 작은 성공을 맛본 사람들, 심지어 세계 최초로 홀로 걸어서 남극에 도착한 노르웨이의 탐험가(엘링카게)도 같은 말을 했다.
현대의 젊은 친구들은 하루하루가 도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앞서 걸어간 이들이 남긴 말을 한번 믿어보면 어떨까? 잘하는 분야를 선택해 한 번 더 스퍼트를 내보는 것이다. 도전의 끝에서는 반드시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라고 내뱉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후발 주자로서 시장에 앞서가고 있는 선발 주자인 기업들을 만날 때 나는 모든 여정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그들을 설득하고 시장의 공정한 참여자로 인정받기 위해 선발 주자보다 배로 열심히 뛰어야 했다. 만일 그 길을 홀로 가야 한다고 했다면 나는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힘든 시기를 함께 해준 동료들의 얼굴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는 고난과 위기의 순간에 내가 깨달은 것은 단순했다. 사업이란 전략과 기술, 그리고 고객만 있다고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직원 전체가 전략을 공유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결연한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되는 것이었다. 나는 기업 경영을 종종 오케스트라의 지휘와 비교한다. 기업 경영의 본질을 단 한마디로 표현해야 한다면 ‘하모니’다. 사업전략, 인재활용, 고객 관리, 기술 개발, 미래 투자, 재무 관리 등 기업 활동의 다양한 요소들이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야 비로소 성공적 경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힘들고 어려울수록 신기술 개발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됐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패를 무릅쓰고 다시 도전해 정면 돌파를 꿈꾸는 열정이 필요했다. 조직원들의 가슴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의 숙제였다.

“오늘의 주제로 돌아가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를 위해 어떤 것을 할 것이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어떻게 경제적 혜택을 다양한 사람들, 특히 소외 계층들에게까지 나누어 주느냐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5G의 이점은 단순히 용량과 속도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5G의 연결성(Connectivity)에 주목해야 합니다. 대용량의 데이터를 이른 시간에 전달하며 각각을 연결하는 5G는 온 인류의 삶을 바꿀 것입니다. 그것도 낮은 가격으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쓸 수 있는 플랫폼으로 제공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5G는 세계의 불평등 해소를 실현하는 핵심 기술이 될 것입니다. 아직도 인터넷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수십억 명에 달합니다. 인류에게는 디지털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과제가 있는 것입니다. 5G의 초연결성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혜택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밑바탕이 될 것이고, 초저지연성은 자율주행, 원격진료 등을 실현해 좀 더 안전하고 편리한 생활을 만들어줄 것입니다. 5G는 4차 산업혁명에서도 경제적 혜택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중요한도구입니다. 이렇게 세계의 불평등을 해결한 핵심 기술이 될 것입니다.”

뉴욕 메리어트마르퀴스호텔에서 열린 리더스 서밋은 예상외로 큰 호응을 얻었다. 나는 20분의 기조연설을 통해 GEPP의 중요성을 알렸다. SDGs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 통신사업자들이 새로운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빅데이터 공동과제(Big Data Initiative on disease Diffusion Mapping)’를 발표했다. 그리고 통신사들은 위치 정보, 트래픽 패턴, 로밍 데이터 등 전 세계 73억 명의 이용자들이 생산하는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 정보를 충분히 모으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감염병 확산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으므로 전 세계 통신사업자와 각국 정부에 GEPP를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 관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놀라운 아이디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유엔 사무총장은 UNGC 글로벌 사무총장과 함께한 오찬 자리에서 “디지털 기술이 인류 전체에 혜택을 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며 KT의 제안을 멋진 아이디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희망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게이츠재단과 손잡고 감염병 대응을 위한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프로젝트의 공식명칭은 ‘감염병 대비를 위한 차세대 방역 연구’이다. 구체적으로는 IT 기술과 바이오기술을 결합해 독감의 확산 경로를 예측하고, 예방을 위한 실천적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KT는 ‘인공지능 기반 감염병 조기 진단 알고리즘’과 통신 데이터를 활용한 ‘감염병 확산 경로 예측 모델’을 개발하기로 했고, 게이츠재단과 KT는 3년간 120억 원 규모의 자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글로벌 협력뿐이다. GEPP가 꿈꾸는 미래가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저는 엔지니어입니다. 엔지니어로서의 삶을 시작한 후 더 많은 사람을 돕고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항상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찾은 답은 바로 기술 혁신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문구

꿈꾸던 미래를 현실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은
미래를 내다보는 눈으로
과감한 선택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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