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2020년 초봄, 코로나19가 한국사회를 덮쳤다. 암울한 바이러스의 침공에 처음엔 모두 당황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죽으란 법은 없지.’ 곧 누군가 과거의 경험을 소환했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주가가 급반등했던 그 경험을. 종합주가지수 1400~1500대에 사람들이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용기 있는 베팅에 ‘동학개미’란 말이 등장했다. 누구보다 주식에 열광한 것은 밀레니얼 세대들이었다. 직전 해인 2019년엔 비트코인에 열광했던 그들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주식얘기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현상이었다. 골목에 모여있는 젊은이들이 담배를 피우며 하는 얘기의 주제는 더 이상 아이돌이 아니었다. 주식얘기를 하고 있었다. 블라인드에서도 주식이 주요주제가 됐다. “곱버스 탔냐” “삼전 46층 주인이 됐다” “원유 ETN 샀다” 등등의 얘기가 쏟아졌다. 그들의 모험적 투자가 시작됐다.
증권사들은 전통적으로 많은 돈을 맡기는 고객을 좋아하지만 밀레니얼들의 특성은 이들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주식을 사고팔기를 반복하면 수수료가 늘어나고, 증권사는 돈을 빌려주며 10% 가까운 높은 수수료를 받는다. 또한 장기적으로도 밀레니얼 고객들이 더 중요하다. 밀레니얼들은 앞으로 자산이 점점 더 늘어날 세대이기 때문이다. 아, 여기서 하나 더.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은 증권시장의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모험적인 투자성향을 갖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가 그 힘을 보여준 것은 새로운 주도주의 등장이라는 해석도 많다. 이들이 많이 선택한 카카오, 네이버, 엔씨소프트 등은 새로운 ‘성장주’ ‘주도주’로 떠올랐다.
저비용항공사(LCC) 승무원인 박지선 씨(29)에게도 주식투자의 의미는 남다르다. 코로나19로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2020년 3월부터 원치 않는 휴직상태다. 지인이 추천한 진단키트 테마주로 주식에 발을 들였다. 6개월이 지나 투자금은 4,000만 원으로 늘어났다. 매월 300만 원 넘게 벌고 있다. 하루 12시간 투자 모드다. 장이 끝나면 장외거래를, 밤에는 유튜브 주식 관련 영상을 보며 내일의 투자를 준비한다. 처음에는 주식투자를 말리던 부모님도 이제는 그에게 투자금을 맡겼다. 박씨는 말했다. “돈을 버는 것만큼이나 좋은 건 우울한 일상에 활력소를 얻었다는 것이다.”
2030은 항상 빚과 함께 살았다. 학자금 대출은 일상이었다. 부모세대들도 은행에서 돈을 빌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한국의 저축률 때문이다. 중산층이 급격히 늘어난 1987년부터 1993년까지 한국의 저축률은 20%대를 기록했다. 저축이 미덕이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2030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2001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의 가계저축률이 5%를 초과했던 해는 없었다. 이후에도 10%를 넘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빚은 생활의 일부였고, 빚을 내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한 큰 저항도 없었던 게 2030이다. 그 이면에는 사회의 양극화, 가계보다 기업이 저축하는 뒤집힌 경제구조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좀 유식하게 이런 밀레니얼들의 투자를 분석해보면 “주식에 자신의 ‘오늘과 내일’을 투영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자신의 삶과 투자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투자와 관련된 이슈 중 4차 산업혁명(1순위 선택 비율 31%)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인공지능(AI)과 로봇, 가상현실(VR)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에 다른 어느 세대보다 친숙하기 때문에 향후 투자의 성패를 가를 가장 큰 이슈로 본 것이다. 밀레니얼은 자신의 현재 삶 및 다가올 미래의 삶과 관련된 종목에 적극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밀레니얼이 허황된 꿈에 근거해 제멋대로 투자하는 건 결코 아니란 얘기다.
모험을 한다고 해서 밀레니얼들이 아무런 근거 없이 투자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정보의 바다에 살았기 때문이다. 뉴스에 나기 전에 여러 가지 소스를 통해 정보를 모으고 투자에 활용한다. 특히 스마트폰 ‘알림’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받아 발 빠르게 대응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이들은 투자기업의 공시를 나오자마자 확인한다. 몇 시간이 지나 뉴스로 읽거나, 다음날 보고서로 보면 대응이 늦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을 스마트폰 앱으로 다운받고, 관심종목을 알림으로 설정해둔다. 3년 전부터 DART앱을 이용하고 있다는 34세 김모씨는 “알림이 바로 울리기 때문에 호재성 공시나 악재성 공시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며 “뉴스로 소식을 들으면 이미 주가가 많이 움직인 뒤”라고 설명했다.
청년고수들은 한목소리로 ‘끊임없는 공부’를 강조했다. 뱅키스 대학생 모의투자대회에서 2등을 한 임민수 씨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난다. 미국 주식시장 결과와 뉴스, 리포트 등 각종 투자 정보를 확인하고 그날의 매매 전략을 짠다. 임씨는 “주로 당일에 사서 당일에 파는 단타 스타일로 투자하고 있다”며 “장 초반에 사서 매도 목표가를 정하고 주문을 내놓는다”고 했다. 그는 “매일 매일 어떤 종목을 매수할지 결정하기 위해선 아침 일찍 일어나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서준 씨는 주식을 배우기 위해 ‘슈퍼개미’라 불리는 재야고수들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여수고래’ 박현상, 이용호 아이지개발 대표 등을 만났다. 부전공으로 경영학을 공부하며 재무관리와 투자론 등의 수업을 듣고, 교내 투자동아리 블래쉬에도 가입해 활동했다. 그는 “주식투자는 노력이 조금만 느슨해지거나 요행을 바라면 곧 손실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젊을수록 위험을 즐기는 성향은 주식시장에서도 종종 드러난다. 투자위험이 높은 레버리지·인버스 상품을 매수하는 ‘불개미’ 가운데 2030세대가 유독 많았다. 빚을 내 투자하는 ‘빚투 개미’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이들에게 “주식은 시간을 사는 게임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스스로 만기를 만드는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빚을 내 투자하면 장기투자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주식농부’로 알려진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는 “빚을 내면 상환에 따른 조급함 때문에 잘못된 투자판단을 내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란 말이 있다. 주식시장만큼 이 말이 잘 어울리는 곳도 없다. 한때 잘나갔던 투자자도 한순간에 벌어놓은 수익을 다 날리곤 한다. 그런 점에서 시장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았던 투자대가들의 조언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워런 버핏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은 책 『현명한 투자자』에서 “강세장에서 최대의 도박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은 사람들은 거의 항상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약세장에서 가장 큰 손실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피터 린치 역시 “인기주식은 빠르게 상승한다. 그러나 희망과 허공만이 높은 주가를 지탱해주기 때문에 상승할 때처럼 빠르게 떨어진다. 기민하게 처분하지 못하면 이익은 손실로 둔갑한다”고 말했다.지금처럼 가파르게 반등하던 주식시장 상승세가 둔화될 때 새겨들을 만한 조언이다.
우리 인류는 합리적인 사람들이며, 우리가 가진 집단지성이 몇 만 년 동안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판단이 쉬워집니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분석’은 분명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세상 자체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투자를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주식시장 격언이 ‘비관론자는 명성을 얻고, 낙관론자는 부를 얻는다’는 겁니다. 주식시장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은 유명해지지 않습니다. 대신 이들은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기업의 언어는 회계입니다. 기본적으로 재무제표를 읽을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리포트를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직접 증권사 계좌를 개설해서 장기적으로 투자한다면, 투자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과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셈입니다. 회계나 증권사 리포트와 같은 무기도 없이 경쟁하면 이길 확률이 굉장히 낮겠죠. 또한 개인투자자들 중에는 냉소주의를 가진 투자자들이 있습니다. 제가 이런 공부를 해야 한다고 조언하면 “그래서 너는 주식으로 돈 많이 벌었느냐?”라고 묻는 거죠. 안다고 무조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모른다면 ‘100% 지는 게임’입니다. 또한 한두 번 돈을 벌고 못 벌고는 운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장기간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려면 결국 알아야 하죠.
초보자들이라고 해서 성공하지 말라는 법은 없거든요. 위험한 대신, 성공했을 경우엔 짜릿하죠. 대신 시간과 싸워야 합니다. 내가 예상한 지수방향과 다르게 가서 엄청난 손실을 보고 손절매도 못하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어요. 시장에 투자한다고 하면, 하락기가 있더라도 장기투자하면 어쨌든 고점을 회복하고 버틸 수가 있는데 레버리지·인버스는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곱버스요. 그래서 열심히, 매일매일 시장을 보면서 고민하고 쳐다볼 수 있는 사람들은 레버리지·인버스 ETF에 투자해도 좋지만 그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 듣고 일시적으로 투자하는 사람들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주식투자의 기본은 정보 습득이다. 신문, 주식 동호회, 카페 등을 통해 A라는 기업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치자. 가장 먼저 할 일은 공시를 보는 것이다. 기업들은 공시를 통해 실적, 경영상황, 투자 유치 등의 소식을 알린다. 공시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올라온다. 웹사이트와 앱이 있다. 앱에서는 ‘관심기업’을 추가하면 실시간으로 공시를 받아볼 수 있다. 상세한 분석을 보려면 증권사 리포트를 참고하면 된다. 네이버와 한경컨센서스에서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인터넷 종목 게시판에서 다른 주주들과 소통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공시에는 규칙이 있다. 자본시장법과 그 하위 규정에선 상장기업의 실적이나 재무 상태, 경영 활동 등 중요 정보를 정기 또는 수시로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공시는 크게 발행시장 공시와 유통시장 공시로 나뉜다. 발행시장 공시는 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때 제출하는 증권신고서 등을 말한다. 기업공개(IPO)를 하거나 다수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주식을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할 때 회사 상황을 명확하게 알리기 위해서다. 회사는 당면한 문제와 리스크 요인을 적나라하게 고백해야 한다. 이 회사에 투자하려는 다수의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나머지는 유통시장 공시라고 보면 된다. 유통시장 공시는 ‘정기공시(사업보고서, 반기보고서, 분기보고서), 수시공시(단일판매·공급계약, 증자 및 감자 결정, 최대주주 변경 등 주요 경영사항), 공정공시(장래 사업계획, 실적 전망 등), 주요사항보고서(자산 양수도, 부도 발생 등)’ 등으로 나뉜다.
초보 투자자들이 처음 공시를 접하면 상당히 낯설고 어렵기만 하다. 수많은 유형의 공시제목만 봐도 지레 주눅이 들기도 한다. 누구나 처음에는 다 그렇다. 증권부 기자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익숙해지면 공시가 왜 중요한지 쉽게 알 수 있다. 증권부 기자에게도 공시는 기사의 중요한 ‘소스’가 된다. 전업투자자들은 실시간으로 공시를 모니터링한다. 하루에 쏟아지는 수백 개 공시를 보면서 시장 트렌드를 읽고, 때때로 악재가 터지면 남들보다 빠르게 정리하고, 호재가 나오면 빠르게 사들여 수익을 올린다. 버릴 건 빠르게 버리고, 중요한 공시만 골라 습득한다. 투자자를 요리사라고 빗대자면, 공시는 식재료인 셈이다. 주식투자자라면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시공시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증자와 감자, 자사주 매입, 최대주주 변경, 단일판매·공급계약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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