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 - 그리스도 이야기
루 월리스(Lew Wallace)
영화 [벤허]의 원작 소설 [벤허-그리스도 이야기]의 국내 최초 완역본. 무려 50여 년 동안 최다 판매 소설의 자리를 지킨 미국 최고의 대중소설이자 기독교 신앙의 뿌리를 파헤치는 종교소설, 로마제국을 배경으로 장대한 서사가 펼쳐지는 역사소설인 [벤허-그리스도 이야기]를 내용을 빠뜨리거나 축약하지 않고 온전하게 옮겼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번역가인 안진환이 난해한 원서를 암호를 해독하듯 충실하게 번역하여 원서에 담긴 주제와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한다.
책속에서
유다는 어깨를 짚는 부드러운 손길에 의해 반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그 손길의 주인을 확인하기 위해 위를 올려다본 그의 두 눈에 앞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얼굴 하나가 가득 들어왔다. 자신과 같은 또래일 것 같은 소년의 얼굴이었다. 밝은 밤색 머리칼에 의해 그늘이 진 얼굴, 그 그늘 속에서 짙푸른 두 눈동자가 불이 밝혀진 듯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극히 그윽한 눈길, 진심을 담아 호소하는 눈빛, 무궁한 사랑과 성스럽도록 순결한 의도만을 한가득 담고 있기에 오히려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힘이 느껴지는 그 낯선 이의 두 눈. 밤낮 없는 고통에 시달리며 어떤 대가를 치를지라도 반드시 복수하고 말겠다는 냉혹해진 마음이 그 눈길에 의해 녹아내렸다. 그의 영혼은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맑아졌다. 그가 그릇에 담긴 물을 한참동안 들이켰다. 낯선 이는 그에게 단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그 역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중략)
유다와 마리아의 아들은 그렇게 처음으로 만났다가 헤어졌다.
그 3년 동안. 오, 호민관님, 제겐 한 시간, 한 시간이 평생처럼 길었습니다. 바닥 없는 구덩이 속에서 죽음만이 곁을 지키고 있는 시간들이 그렇게 흘렀습니다. 고된 노동은 오히려 안식이었습니다. 그 고독의 세월 동안 누구도 제게 가족들의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습니다. 흘러가는 말 한 토막도 없었습니다. 아, 우리 모두 결국엔 잊힐 존재인데 우린 왜 잊지 못하는 걸까요? 그 장면만 제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있다면 아무것도 바랄 게 없습니다. 제 여동생이 제 곁에서 찢어져 나가듯 끌려가는 장면, 제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 그날 이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역병이 사람들을 무수히 쓰러뜨리는 것도 보았고 제가 탄 배가 적과의 교전이나 태풍 때문에 침몰 직전까지 갔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제 기도의 내용은 그들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죽음만이 유일한 구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벤허의 눈에는 오직 전차 위에 우뚝 서 있는 기수만이 들어왔다. 말들과 연결된 가죽끈을 온몸에 여러 번 휘어감은 사내, 잘생긴 얼굴, 연홍색 천 소재의 튜닉 차림에 오른손에는 채찍을 들고 약간 들어 올려 뻗은 왼손에는 네 개의 고삐를 쥐고 있는 사내. 극도로 우아하고 활기에 넘치는 자세, 군중들의 환호성과 박수갈채를 당연하다는 듯, 무심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벤허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렸다. 그의 직감이 맞았다. 그의 기억이 옳았다.
메살라!
말들을 고르고 치장한 솜씨, 전차의 호사스러움, 분위기, 태도, 무엇보다도 유대인들을 비롯해 타민족들을 수세대 동안 굴종시킨 로마인 특유의 독수리 같은 표정. 벤허는 메살라가 예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오만, 지나친 자신감, 대담무쌍함, 끝을 모르는 야욕, 모든 약한 존재들에 대한 경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리고 있는 태연한 표정.
벤허의 모습은 남자답게 늠름했다. 사막의 햇볕과 바람에 노출되었던 그의 뺨과 이마는 거무스름했고 옅은 콧수염 아래의 입술은 붉었고 치아는 희게 빛났고 부드러운 턱수염도 턱 선과 목을 완전히 가릴 정도는 아니었다. 어머니의 눈에는 그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의 행복했던 유년 시절에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팔을 뻗쳐 그를 품에 안고 입 맞추고 싶은 마음은 또 얼마나 간절했을까! 그 충동을 억누르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다른 어떤 사랑과도 다르다. 너무나도 애정 어린 그 사랑은 경우에 따라 무한한 힘을 발휘하는데 자기희생의 힘도 그런 것이다. 그 아무리 건강과 재산을 되찾고 삶 그 자체나 삶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문둥병자인 어머니는 아들의 뺨에 입을 맞추지 않을 것이다! 아들을 찾은 바로 그 순간에 그녀가 그 아들을 영원히 포기해야 하다니 이 얼마나 가혹한 일이란 말인가! 그녀는 무릎을 꿇고 아들의 발치로 기어가 거리의 흙먼지로 누레진 그 신발 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영혼을 담아 몇 번이고 거듭거듭 입을 맞추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나사렛인에게 쏠려 있었다. 그때 벤허의 가슴에 일어난 동요는 동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벤허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이 꿈틀거리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이 세계의 가장 좋은 것들보다 더 고귀하고 높은 무언가에 대한 생각이, 훨씬 더 고귀해서 육체와 영혼의 극심한 고통을 견뎌낼 힘을 가진 나약한 인간에게 어울릴 무언가, 죽음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무언가, 어쩌면 이 생보다 더 고결한 생일지도 모르는 그것, 또는 발타사르가 굳건하게 믿었던 영적 삶에 대한 생각이 벤허의 마음속에 명료하고 또 명료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나사렛 사람의 임무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경계선을 넘도록, 경계선을 넘어서 왕국이 세워져 있고 그를 기다리는 곳으로 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기억에 남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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