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미래
유현준
우리가 사는 공간은 그 안에 사는 인간의 변화에 맞춰 함께 변화해 왔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우리의 일상이 바뀌면서 공간의 변화 속도가 빨라졌고, 나아가던 방향도 조금 틀어졌다. 이 책은 집, 회사, 학교, 상업 시설, 공원, 지방 도시, 물류 터널 등 우리가 생활하고 있거나 우리 생활과 밀접한 공간의 가까운 미래를 살펴본다.
인간은 늘 세상의 변화를 예측하고 미래를 준비하려 한다. 지금처럼 큰 변화를 맞이했을 때에는 그런 요구가 더 클 수밖에 없고, 그에 발맞춰 다양한 전공의 전문가들이 예측을 내놓고 있다. 저자는 건축가로서 앞으로의 공간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려 시도했고, 이 책은 그 추측의 산물이다. 당연히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이 책의 이야기가 더해진다면 더 올바른 예측을 하고, 나아갈 방향을 잡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책속에서
향후 온라인 쇼핑,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원격진료의 비중이 늘면서 산업 구조와 도시 공간 구조의 재구성이 촉진될 것이다. 혹자는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대면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전염병의 위험을 피해서 대도시가 해체될 거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대도시가 해체될 것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백화점은 온라인 쇼핑과 편의점으로 대체되고, 학교 교실 수도 줄어들 것이다.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원격진료가 확대되면 한적한 교외로 이사 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되면 교외로의 인구 이동은 더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정보를 습득하고 SNS나 화상 통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추가로 오프라인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 도시에 새롭게 도입될 필수적인 지하 인프라 시설은 일반 자동차는 다니지 않고 자율 주행 로봇만 다니는 ‘자율 주행 로봇 전용 지하 물류 터널’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도요타자동차가 후지산 근처에 개발 중인 스마트시티 ‘우븐시티WovenCity’의 주요 아이디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븐시티에서는 도시의 한 층 전체를 물류 터널로 이용한다면 내가 제시하는 것은 기존 대도시의 지하에 직경이 작은 터널을 뚫는 것을 제안한다는 점이다. 이같이 천장고가 낮은 지하 도로망으로 자율 주행 운송 로봇이 다니면 에너지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우선 로봇만 다니는 낮은 천장고의 터널은 트럭이 다니는 터널보다 단면이 10분의 1 이상 작기 때문에 건설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요즘은 지하 터널을 기계가 뚫기 때문에 공사 기간과 비용이 과거만큼 많이 들지 않는다. 둘째, 작은 크기의 운송 로봇은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지금 우리는 1킬로그램짜리 피자를 배달할 때에도 60킬로그램 이상의 사람이 100킬로그램이 넘는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한다. 결국 161킬로그램을 이동시키는 에너지가 소비된다. 택배 트럭은 배달 내내 다른 물건들도 싣고 다녀야 한다. 운송 로봇은 그런 낭비를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다. 10킬로그램밖에 되지 않는 자율 주행 로봇으로 피자를 배달한다면 사람까지 운반을 안 해도 되기 때문에 가볍게 11킬로그램만 이동하면 된다. 에너지 효율이 16배 좋아지는 효과가 생긴다. 게다가 5G 기술을 이용한 자율 주행 로봇은 헤드라이트도 켤 필요가 없고, 사거리에 신호등도 없이 교차로를 지나다닐 수 있다. 이동 속도와 흐름이 인간이 운전하는 교통수단과 비교가 안 되게 효율적이다. 지하 자율 주행 로봇 전용 도로망은 지하 하수도, 지하철, 지하 광케이블망처럼 경쟁력 있는 미래 도시의 필수 인프라 구조가 될 것이다.
SF영화 <엘리시움>을 보면 부자들은 환경이 파괴된 지구를 탈출해서 우주 정거장 같은 인공 환경의 도시를 만들고 분리되어 생활한다. 그곳에는 완벽하게 쾌적한 자연환경이 있고 어떤 병에 걸려도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문제는 이곳엔 선택된 갑부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공 천국 개념의 공간은 영화 <메이즈 러너>에서도 나타난다.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전 지구를 덮을 때 인류가 생각해 낸 방식은 철저하게 출입이 통제된 도시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병에 걸리지 않은 선택받은 자들만이 들어가서 생활하게 된다. 이러한 미래 사회의 공간이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으로 그려진 것은 이러한 진화의 방향이 이기적인 인간에게 나타날 자연스러운 결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는 우주 정거장처럼 떠 있는 우주 도시 ‘스페이스 콜로니’를 기획하고 있다. 이 아이디어는 프린스턴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제라드 오닐Gerard O’Neil이 1975년에 생각해 낸 아이디어다. 지구와 달의 중력이 균형을 이루어서 힘이 제로가 되는 지점에 영화 <엘리시움>에서 나온 것과 같은 거대한 원형의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중 도시 개념은 일본 만화 『총몽』에도 나오는 것으로, 거의 대부분의 SF 미래 상상 도시에 빠지지 않고 나온다.
주거 공간이건 상업 공간이건 이런 인공의 환경에서 선택된 사람들만 지낸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구분된 공간은 계층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그러한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여러 혁명의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공간 구조가 바뀌면 권력의 구조가 바뀐다. 우리는 향후 몇 년간 급속도로 바뀌는 권력 구조의 재편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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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미래 / 유현준 저] 도시와 부동산에 관한 인사이트-자율주행 지하 물류터널, 재능기부는 사라져야 한다.
건축가 유현준씨의 칼럼을 모은 책입니다. 건축, 도시, 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깊이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통찰이 돋보입니다. 그 중 여러분들도 꼭 알았으면 하는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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