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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찬란하게 47년 -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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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하게 47년

홍석천

홍석천 에세이. 이 책은 2000년, 어느 날로 시작된다. 방송에서 한창 주가를 올릴 무렵 선언한 커밍아웃은 홍석천 자신과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언론과 대중은 커다란 범죄가 일어난 듯, 거칠게 그를 몰아붙였다. 마치, 세상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 어릴 적부터 꿈꾼 방송인으로서의 삶도 끝난 듯 보였다.

그로부터 17년. 홍석천은 일어섰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게이가 되었고, 살기위해 뛰어든 사업에서도 당당히 성공한 CEO가 되었다. 조카를 입양해 두 아이의 아빠가 됐고 가족을 돌보는 가장으로 살고 있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어떻게 이 모든 힘든 과정을 견딜 수 있었을까? 한 사람, 아니 한 무리의 수모조차 견디기 어려운 인간사회에서, 그것도 셀 수 없이 많은 군중의 공격 앞에서 말이다.

이 책은 '좌절하지만 견뎌낸다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어려운 시기에 '가족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에 대해 물음을 남기는 책이다. 세상에는 '사랑'의 여러 단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며, 가장의 책임과 성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가에 대해 자문하게 한다. 그렇다. 이 책은 그의 이 한마디로 모두 설명되는 책이다.

"좌절하지만 견뎌낸다는 게 뭔지 찾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나로 인해 당신이 위로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무엇이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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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그것은 선택할 할 수있는 게 아니라 운명처럼 주어진 것이었고,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나’를 인정하기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으니까요. 하지만 언제까지 밀로 할 수 없어 서른이 되던 해 커밍아웃했습니다.

엄마는 한평생 살아온 고향에서 더는 못 산다고 하셨습니다. ‘차라리 농약을 먹고 죽는 게 낫다’ 라며 협박도 하셨지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오죽할까요. 그렇게 실망하면서도 부모님은 저에 대한 사랑을 한시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제 얼굴을 보자 일단 밥상부터 차려주셨죠. 어릴 적 제가 익숙하게 먹어왔던 그 맛 그대로.

인생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말도 안 되는 힘겨운 상황에서 기회를 주는 천사 같은 사람. 모두 손가락질할 때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사람. 모두 외면할 때 “도울 일 없어요?”라고 말해주는 사람.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든 언덕길을 올라갈 때 조용히 달려와 그 짐을 같이 들어주는 사람...그분들 덕분에 아직도 세상은 ‘살 만합니다.’ 여러분도 그런가요?

그리고 저는 지금이 전성기입니다. 커밍아웃으로 잃어버린 시간으로 한창때가 조금 늦었나 봅니다. 이제야 비로소 인생의 꽃이 막 피려고 꿈틀대는 것 같습니다. 간혹 20대 중후반에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조급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조급한 마음이야 마흔을 넘긴 제게도 있습니다. 하지만 뭐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뭐든 말이죠.

요식업은 여러 방면으로 공부가 필요해요. 직접 보고, 느끼고, 피부로 경험하는 게 큰 도움이 될 때가 많아요. 저는 연예인이니 장점도, 단점도 많았습니다. 창업 때는 들어오다 저를 보고 게이 식당이라며 나가버리는 사람도 종종 있었습니다. 건물주와 말썽이 생기면 발언 수위도 조절해야 하고 그러다 피해 입는 경우가 정말 많았습니다.

사랑했던 첫 번째 남자친구와 뉴욕에 그냥 함께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혼자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계속 뉴욕에서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그곳에서 뭔가를 하고 있겠지? 그와 얼마나 만났을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입니다. 지나간 순간에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진심으로 기쁩니다. ‘성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피력해야겠다.’ 다짐하는 계기도 됩니다. 아직도 부족하긴 하지만 제가 커밍아웃 하기 전과 17년이 지난 지금은 정말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를 통해 게이에 대해 선입견이 바뀌고, 짐을 나눌 수 있다면 저는 조금 힘들어도 괜찮습니다. 각자가 겪는 어려움에 공감하고 서로 위로해주며 그렇게 선한 마음을 갖고 살고 싶습니다. 게이의 뜻처럼 명랑하고 쾌활하며 즐겁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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