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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통찰지능 - 최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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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지능

최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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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InQ를 높이는 것은 뇌의 훈련으로 가능하다. 대뇌 피질의 많은 영역이 사용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인간의 능력이 무한하여 차차 그 부분들을 활용하고자 남겨둔 신의 한 수가 아닐까?

환자의 증상이 여러 개일 때 하나의 진단으로 모든 증상을 설명하지 못하면 의사가 틀린 것이다. 의사는 알게 모르게 다양한 증상들로부터 간결한 집단성을 찾아내도록 훈련받는다. 「닥터 하우스」나 우리 소아소화기 팀이나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환자를 살펴봤고, 증상 간에 잘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를 찾아내서 올바른 진단에 이르는 것이다. (…) 우리는 마음과 머리로 맥락을 본다.

통찰은 경험이다.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이것은 미래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을 위해 준비하는 내 마음의 판단과 결정은 나의 과거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fMRI를 이용한 뇌과학 연구에서도 미래를 시뮬레이션할 때 당연히 활성화되는 판단과 결정의 뇌 전전두엽 외에 활활 타오르는 부위가 더 있는데 그곳이 바로 기억의 뇌 해마다. 그동안 쌓아온 나의 경험은 기억으로 남고 이 기억을 기반으로 미래 계획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올바르지 못하고 나쁜 기억이 가득한 사람은 밝은 미래를 만들어내기가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내 앞에 보이는 것이 다 옳은 것은 아닌데 그것을 구분할 만한 지식이 부족하고 타인의 진심 어린 충고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아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므로 남들로부터 배척당할 수밖에 없다. 소수가 아닌 다수의 사람이 나와 가까이하기를 꺼린다고 느낀다면 자신을 성찰해봐야 하는데, 이때 내 경험들에서 문제를 찾아보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그러니 아직 늦지 않은 지금 경험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어려서부터 좋은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담낭염과 복통을 바로 인과관계로 이어버린 의사의 시야 사고, 지식 사고, 만족 사고가 문제였다. 손해는 환자의 몫이 돼버렸다. 이렇듯 전문가라 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란 매우 어렵다.

수술도 안 하고 게다가 특별히 치료할 필요도 없다고 하니 가족들은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아이와 가족을 바라보면서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만일 이 아이가 첫 번째 바륨 관장 조영술 검사만으로 선천성 거대결장증 진단을 받고 수술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의료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실제로 진단 검사 한 가지만으로 어려서 수술을 했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었다. 나와 우리 팀은 이 의문점에서 시작해 내가 근무하고 있던 병원의 과거 기록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 의료 시스템에서 진단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그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간다. 물론 잘못된 진단을 피하기 위해 과잉 검사를 하는 의료 시스템도 바람직하지 않다.

4세 남자아이가 9개월간의 간 기능 이상 소견으로 내 외래에 왔다. 처음에는 상기도 감염으로 혈액검사를 했다가 우연히 간 수치가 높은 것이 발견되었고 한 대학병원에서 수개월 동안 여러 간 질환 검사를 했지만 원인을 모르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선천성 질환, 근육 질환, 특이 바이러스 질환 검사가 모두 음성으로 나왔고 초음파 검사도 간이 조금 커져 있는 것 말고는 정상이었다. 그 대학병원에서는 간 수치만 높고 특별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 간염이라고 진단한 상태였다. 하지만 우리 팀은 간 수치가 높고 간이 약간 커져 있는 것에 더하여 다른 화학적 혈액검사가 정상인 것에 주목했다. 정상 소견을 정상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교활한 누군가가 올바른 말을 내뱉고 있어도 우리는 믿지 않는다. 교활하다고 알려진 그의 무의식을 이미 봤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본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흘린 것이다. 그는 이득에 예민하다. 손해 보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이득을 보려고만 하니 타인에게 피해를 끼칠 일이 종종 생길 수밖에 없다. 남들이 그것을 눈치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감 넘치는 확신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통찰이었다. 당시 상황에서 피터의 마음을 한번 읽어보자. ‘머리를 관통당한 사람이 의사의 손을 잡다니 처음인데…… 지금까지 머리 관통상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적은 없었어.’ 피터는 그동안의 임상 경험을 빠르게 되살려 후견지명을 정리했다. ‘어서 빨리 수술을 해보는 게 낫겠어.’ 머리의 어디로 어떻게 접근해서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 뇌 손상을 최소화할 것인지에 대해 피터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이 같은 최적의 치료에 대한 판단은 그의 선견지명이다. ‘분명히 기퍼즈는 살아날 거야.’ 그의 통찰이 확신에 찬 예측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나 자신의 능력을 고양시키고 싶다면 나쁜 경험도 나에게는 스승이 된다. 이 경험으로 우리의 통찰은 발전한다.

대부분의 의사는 1단계 치료를 먼저 시도하고 잘 안 들으면 2단계 치료로 넘어간다. 2단계 치료로 해결되지 않을 때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것이 생물학적 항체의 투여다. 나는 이 전통적인 이 치료 방법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다. 순서대로 계단을 올라가는 스텝-업 치료는 의사 입장에서는 매우 편리한 방법이다. 치료하다가 안 되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하등 문제 될 것이 없다. 예를 들어 스테로이드라는 약제는 매우 강력한 항염증제라서 사용하면 대부분의 환자가 좋아진다. 하지만 스테로이드는 부작용이 워낙 강해 두어 달 내에 끊는 게 목적인 약이다. 약인데 유지 요법으로 쓰지 못하고 중단하는 것이 목적인 약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이렇게 스테로이드를 쓰다가 중단하면 크론병이 재발하고 다시 사용하면 바로 좋아지지만 중단하면 도로 재발이 예상되니 의사는 자연스럽게 2단계 면역조절 치료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런 치료를 하다보면 금세 여러 해가 흐른다.

인간의 타고난 심리적 면역 체계는 자기 합리화 기전을 발휘하여 회복 탄력성을 기르게 하는데, 못된 것에 대해서는 욕하고 말지만 그것이 사실상 못난 것이었음을 알아내면 우리는 나 자신이 못난 그들보다 한결 나음을 확인하고 심리적인 만족감을 되찾을 수 있다. 못된 것 안에 숨어 있던 못난 본질은 각 상황에서 벌어졌던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맥락을 의미한다. 맥락을 읽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빠진 과정을 찾아 퍼즐 맞추듯 이어가면 된다. 상대방은 항상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흘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읽고 못 읽고는 오롯이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못돼 보이는 것에서 못난 것을 찾아보자. 본질을 알게 된 나는 훨씬 더 행복해진다.

의사는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의 모든 증상을 기존에 알고 있던 ‘질병’의 패턴으로 분석하려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의과대학과 전공의 과정을 거치며 질병에 주목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본질을 놓치고 현상에만 반응하는 의사가 상당수 있어 그 피해는 환자에게 갈 수밖에 없다. 본인이 배우고 아는 범위 내에서 진단과 치료를 행했기 때문에 어떤 특별한 잘못을 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하지 않아도 됐을 검사와 치료로 인해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갔다면 누군가 잘못된 지점을 지적하고 교정하면 된다. 그것이 인간사회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보여준 통찰의 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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