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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가끔 여행하고 매일 이사합니다 - 하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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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여행하고 매일 이사합니다

하지희

때때로 우리는 스스로를 지우며 먹고사는 일에 매달린다. 자기만족과 자기계발이라는 포장을 내세우지만, 사실 남들과 똑같이 살기 위한 발버둥이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우리는 긴 시간을 소비하거나 혹은 영영 모른 채 오늘을 버리고 만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오늘의 희망을 배팅하는 것이다.

삶을 고스란히 살기 위해 매일의 이사를 마다하지 않는 연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두 평 남짓한 밴으로 모든 짐을 옮기고 살아가는 이 연인도 한때는 일상을 잊고 살았다. 매일 표정을 감추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만 안고 있던 이들에게는 마음을 꿰맬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일상 대부분의 것을 포기해도 결국 돌아오는 건 월급 절반의 월세였다.

하지만 가난한 주머니보다 더 부족한 건 나를 돌보는 시간이었다. 결국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진단명을 받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장 난 마음을 수리하고 방향을 찾아야만 했다.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아주 작고 생각보다 더 불편한 집, 밴으로 옮긴다는 건 큰 결심이었다. 하지만 매일 이사하는 번거로움 속에서 처음으로, 온전히 그들을 위한 질문을 갖게 되었다. 편안하고 안락한 집을 지키기 위해, 오지 않을 미래를 위해 지금을 버릴 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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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생각 좀 하면서 살자고 쉽게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내가 그런 사람이었나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움직였다. 우리는 그저 작은 밴으로 옮겼을 뿐이지만, 삶은 완벽하게 달라졌다. 매일 같은 하루가 시작된다는 게 두려웠던 우리는, 내일은 어떤 낯선 풍경으로 이사할지, 어떤 새로운 사람을 만날지, 어떤 신기한 일이 생길지 기대하며 눈을 뜬다. 두 사람이 누우면 가득 차는 2평 남짓의 밴에서 서로 배려하는 법을 배우고,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깨닫는다. 그는 시간과 여유가 부족해서 도전하지 못했던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나는 고등학교 이후로 시도한 적 없던 글과 그림을 시작했다.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해도, 생각만으로 밴 라이프라는 특이한 삶을 결심하긴 힘들었다. 그럴 때 인터넷에서, 책에서, 주변에서 독특하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삶을 가꾸어나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계약직이 불안하다고 불평하는 대신 매번 새로운 직장을 실험해보는 즐거움이라고 하는 직장 동료, 배낭 하나만 짊어지고 친구 집과 농장의 작은 방을 전전해도 매일 새로운 집이 기대된다는 독일인 친구, 직업은 만들기 나름이며 내 삶에서는 내 선택만이 정답이라는 작가. ‘이렇게도 살 수 있다’,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다양하다’고 알려준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도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파리 하면 떠오르는 낭만적이고 여유로운 그림과는 달리 우리는 일생에서 가장 가난한 한 해를 보냈다. 빨래방 의자에 걸터앉아 유리창 너머 화려하게 차려입은 관광객들을 멍하니 바라볼 때면 속이 울렁거렸다. ‘나도 언젠가 저들처럼 명품 가방도 척척 사고 예쁘게 차려입고 여행도 다닐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조금만 더 참자.’ 질투와 불안감으로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언젠가’라는 단어로 겨우 꾹꾹 눌렀다.

우리의 생활은 가느다란 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모습이었다. 당장의 문제는 없었지만, 어느 날 두 사람 중 누구 하나가 아프거나, 다치거나, 해고당하면 금방이라도 기우뚱대다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은, 일종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기분이었다. 실제로 건강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게다가 언젠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둘 중 한 사람은 그만둘 수밖에 없는, 언젠가 끝나버리는 직장인의 삶이 10년 후일지, 내년일지, 당장 내일일지 모르는 일이었다. 언젠가 그만두기 위해 회사에 많은 것을 바치고 있는 우리가 허무했다.

그즈음 전 세계에 미니멀리즘 바람이 불었다.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어준다는 말에 혹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짐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물건이 ‘짐’으로 보였다. 이전엔 그저 그 자리에 있는, 당연히 가지고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살펴보니 4년 전 유학을 오며 가지고 왔던 작은 소품들과 한 번도 쓰지 않은 펜 몇 자루도 원래 들어 있던 가방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 이사를 네 번이나 다녔는데 그때마다 가방을 열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옮겨 다니기만 한 것이었다. 주방 찬장엔 요리 공부한다는 핑계로 모아둔, 1년에 한 번 쓸까 말까 하는 도구들이 가득했고, 옷장 곳곳엔 몇 년간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이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내가 그동안 이렇게 내 환경을 무시하며 살았구나.’ 나도, 내 물건들도 너무 불쌍했다. 제대로 손질되지 않고 아무렇게나 방치된 물건이 꼭 나를 비추는 것 같았다.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건들을 꺼내다 주저앉아 눈물 쏟기를 몇 번, 마음을 비워내고 다시 힘을 냈다. 천천히 깨끗해지는 집을 보며 조금씩 웃음을 되찾았고, 나를 누르고 있는 우울함이 덜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전엔 물건을 살 때 ‘살 때의 기쁨’, ‘사용할 때의 편리함’만을 생각했다면 지금은 ‘집에 들였을 때 차지하는 자리’, ‘관리하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 ‘언젠가 처분해야 할 때의 번거로움’을 먼저 고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물건을 가졌을 때 기쁨과 편리함을 가져다주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우리의 공간, 시간, 노동력은 아주 귀하다. 값이 저렴하다고 해서, 특별 할인을 한다고 해서 쉬이 내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그의 밝은 얼굴과 골목길 한구석에 세워둔 우리의 작은 집을 번갈아 보았다. 점점 더 확신이 들었다. ‘우리, 이 방향으로 가는 게 옳구나. 우리에게 맞는 선택을 한 거구나.’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었다. 손을 힘껏 흔들며 다가오는 그를 불렀다. 그가 손짓으로 드라이브 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낡았지만 넉넉한 집도 샀고, 밝고 여유로운 연인의 얼굴도 다시 얻었다.

옳은 선택을 한 것이라고 확신을 하면서도 마음 한쪽으로 불안과 죄책감이 부풀어 올랐다. 그럴 때면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 부모님 때문에 자유롭게 살 기회를 놓쳤어’, ‘그때 고양이들 때문에 여행할 기회를 놓쳤어’라고는 절대 탓하지 말자고. ‘그때 그들 덕분에 그걸 잘할 수 있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자고. 후회는 해도 원망은 하지 말자고.

우리는 그토록 바라던 집주인이 되었다. 이상한 색의 페인트를 발라도, 벽에 본드로 병뚜껑을 덕지덕지 붙여도, 천장을 커튼 조각으로 씌운다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 마음에 들면 그만이다. 정말 자유롭다(너무 자유로운 덕에 정체불명의 인테리어가 되어가고 있긴 하지만). 페인트를 바르며 ‘이거 나중에 다시 바꾸라고 하면 어쩌지?’ 따위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집이 너무 작아서 재미있기도 하고, 아늑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나는 ‘무슨 놈의 청소가 해도 해도 끝이 없어’라고 불평하는 날이 줄어서 좋고, 그는 아직 ‘이놈의 집구석 답답해서 도저히 못 살겠네’라고 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니 이 정도면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지금의 우리에게 맞는 집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시시할 정도로 사소한 발전들이 좋은 것은 모두 실패를 통해서, 배려를 통해서, 인내를 통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한 해의 끝에 뿌듯해할 정도의 발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지만, 나에게는 수줍게 내보일 수 있는 자랑스러운 일이다. 의외로 이런 점 때문에 밴에서 살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곱씹게 된다. 앞으로도 계속 어디에서 살든, 이 실패와 배려, 인내를 품고 살 수 있으리라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소비는 곧 투표라고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천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의류 공장 붕괴 사고가 났을 때, 서로 자기의 책임이 아니라고 미루던 패션 브랜드에 나는 소비라는 투표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된다고, 이런 사고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싸고 예쁜 옷만 잘 만들어달라고 한 셈이다. 번아웃 증후군까지 겪으면서 일을 힘들어했던 나지만, 정작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을 모른 척했다. 그렇게 그들의 목숨 값으로 싸게 산 옷들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의 쓰레기 산에 쌓였다. 이 순환 속에서 만족하는 사람은 패션 브랜드 사장 외에는 아무도 없어 보였다.

우리의 집이 변했다. 그다음엔 삶의 방식이 바뀌었고 관심사가 달라졌다. 각자 자기만의 세계로 나가면서 지인과의 대화가 예전처럼 이어지기 힘들어졌다. 대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알고 싶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주제에 대해서 활기 넘치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여행하면서 평생 만나보지 못했을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할 기회도 얻었다.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 대화의 순간 하나하나만으로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무치게 깨닫는 것이다. 우리의 밴, 우리의 집은 우릴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밴에서 살게 된 이후로 감사하게도 시간과 힘이 넘쳐난다. 우리 인생에 ‘부자’라는 단어가 붙을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전에 없던 ‘시간 부자’가 되었다. 이젠 기꺼이 시간을 내어 동네 장터에 가서 천천히 필요한 만큼만 준비해 간 가방에 담아 오는 여유를 부린다. 간편한 즉석식품 대신에 번거롭더라도 덜 운반되고 덜 가공된 재료를 사 와 다듬는다.

어떤 이에겐 밴 라이프가 실패일 수도, 결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밴 라이프는 연습이고 배움이다. 그걸 가속화하는 일이 우핑이었다. 잠시라도 이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우리지만, 그러면서도 자유를 잃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삶과 일을 같이 나누고 배우면서 우리의 삶과 일을 고민하고 준비할 수 있었다. 어느 땅도 가지지 않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땅을 잠깐 내어준 이들을 만나 돈이 아닌 서로의 시간과 노동, 그리고 대화를 주고받았다. 곧 다시 우리의 밴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에게 배운 순수한 노동의 가치는 잊지 않았다. 우리는 꿈꾼다. 자유롭지만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함께 ‘밥값’ 하며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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