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
손화신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 대상에 빛나는 작품으로, 가볍지만 명쾌한 위로의 메시지로 연재 당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이 책은 ‘어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딜레마와 좌절의 순간에 어린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라는 의문을 전제로 삼는다. 우리의 어린 시절 속에 모든 해답이 담겨 있기에 책에 담긴 44개의 태도는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서툴지만 솔직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통해 독자는 성숙을 향한 강박을 한 꺼풀 벗겨낼 수 있을 것이다.
책속에서
‘기억하자. 내가 어린이였다는 것을 오늘도 기억하자.’ 어쩌면 내가 기억해 내기만 한다면 다시 어린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의 감각으로 충만했던 완성된 존재, 어린이. 모든 게 새로움이었던 어린 시절엔 작은 빗방울 하나도 ‘큰 사건’이었다. 그렇게 큰 사건들에 하나하나 감탄하다 보면 내 하루는 가득하게 찼다.
<저는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겠습니다> 중
버스에 올라타면 어린이는 승객이 ‘된다’. 빵집에 들어가면 어린이는 빵 고르는 사람이 ‘된다’. 미용실에 가면 어린이는 머리카락 잘리는 사람이 ‘된다’. 놀이터에 가면 미끄럼틀 타는 사람이 ‘되고’, 동물원에 가면 기린과 인사 나누는 사람이 ‘된다’.
그들은 매 순간 주체다. 어린이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주체적 인간이 아니라는 말은 어른들의 헛소리다. 의사가 되고 싶고, 배우가 되고 싶고, CEO가 되고 싶은데 아직 그것들이 안 된 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인간으로서 충만한 하루를 보낸다.
<버스에 올라타면 나는 승객이 됩니다> 중
하루는 나의 구원이다. 살아간다는 게 꽉 막힌 관 속에 누워 누군가에게 발견되길 기도하며 버티는 일처럼 느껴지던 때, 그때 찾아낸 아니, 내게 운명처럼 와준 구원이 ‘하루’였다. 하루는 나를 죽지 않게 했고 앞으로도 죽지 않게 해 줄 영원의 열쇠다.
하루씩만 살기. 이것이 얼마나 강력한 삶의 방식인지 내가 느낀 대로 설명해낼 수 있을까. 설명되지 못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삶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일주일을 살지도 말고, 한 달을 살지도 말고, 한 해를 살지도 말고, 20대를 살지도 말고, 노년을 살지도 말고 오직 하루만 사는 것.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다. “내일은 없다. 오늘만 산다”라는 말은 내가 사는 나라의 칙령이고 삶이라는 마법 세계의 주술문이다.
<오늘 돌릴 팽이를 내일로 미루지 않겠습니다> 중
실수는 행복이 그렇듯 제각각이어서, 어떤 사람에게 실수라고 여겨지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실수가 아니기도 하다. 아이에겐 방바닥에 쏟은 물도 실수의 흔적이 아니다. 어른들은 바닥에 물을 쏟았을 때 “앗! 실수!”라고 말하며 당황해 하지만, 물을 쏟은 게 잘못한 일일까 생각해 보면 막상 그렇지도 않다. 듣는 사람 없으면 욕 한 번 하고 나서 닦아 버릴 일이라면, 그건 잘못한 것도 아니니까. 우리는 물을 쏟지 않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니까.
<오늘 내가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자랑 좀 하겠습니다> 중
그것이 사실이라서 믿는 게 아니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산타든 괴물이든 무언가를 백 퍼센트 믿는 아이들처럼 믿음의 순도가 더 높아질 때 맘이 더 편안해지고 현재를 가볍게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믿는 거다. 산타 안 믿고 똑똑해지거나 산타 믿고 행복해지거나,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난 그냥 산타 믿고 오늘 하루 설레고 싶다. 맘 편히 행복해지고 싶다.
<산타 믿고 그냥 행복하겠습니다> 중
어린아이처럼 노래하고,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춘다는 건 무언가를 ‘움켜쥐는’ 일이다. 머리로 짜내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솟아나는 감정이나 영감을 거칠게 낚아채, 순간에 꽉 움켜쥐는 행위다. 그런 작품들에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내가 당신을 울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중
예전엔 나의 한 평생이 참 긴 것처럼 여겨졌다. 이제 막 생의 출발선을 떠나온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은 내 인생이 꽤나 내달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오래달리기인 줄 알고 뛰었는데 100미터 달리기였단 걸 알았을 때 느끼는 당혹감이란! 우리네 인생이 90세까지라 하더라도, 그것이 의외로 길지 않은 시간이란 생각이 들 때면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세상의 숫자를 없애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중
난 내가 카스텔라인 줄 알았다. 옆구리를 먹든 머리를 먹든 한결같이 균일한 맛의 카스텔라. 그런데 알고 보니 나는 여러 겹으로 된 크레이프 케이크였다. 층마다 색깔도 다르고 맛도 다른. 겹겹이 누운 그 층들이 하나의 케이크를 만들었고, 모든 층이 나였다. 그러니 가장 바깥으로 보이는 자아만 나라고 생각하고 그것만이 ‘공식적인’ 나라고 여길 필요가 애초에 없었던 거다.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준비해 둔 ‘사회적인 자아’뿐 아니라 혼자 있을 때 슬며시 드러나는 ‘심층적인 자아’도 나로 인정하는 일. 지금부터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은 이것인 듯하다. 촌스럽게 크레이프 케이크를 한 겹 한 겹 먹지 말고, 이제라도 대범한 수직적 포크질을 해야 할 때다.
<저는 여러 겹으로 만들어진 크레이프 케이크입니다> 중
어쩐지 이 사회는 초심을 강요하는 듯하다. 아이가 뽀로로 인형을 갖고 놀다가 내팽개치고 피카츄 인형에 뽀뽀를 퍼부어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지만, 어른이 그러면 수군수군댄다. 줏대가 없다느니 무게가 없다느니. 이런 게 무서워서 나는 몇 분 전의 내 감정을 ‘기억하려고’ 애쓰는 습관에서 아직도 벗어나질 못했다.
<내 엉덩이에 무슨 일이 생기든 말든 울다가 웃겠습니다> 중
‘돈 안 되는 일’을 하나쯤 하는 것. 이것이 휴머니즘을 회복하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순수한 마음을 전할 때 오히려 돈은 방해꾼이다. 좋은 의도만으로 누군가를 돕고 싶다면 “내게 돈을 주면 이 일을 안 하겠다”라고 엄포를 놓고서 해야 한다. 사례를 받으면 돕고자 하는 순수한 의도가 손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용돈은 감사합니다만 종이접기에 쓰겠습니다> 중
아이들이 예쁜 이유는 걱정을 마음에 오래 담아 두지 않아서다. 꽁하고 담아 놓는가 싶다가도 만화가 시작되면 걱정 따위 다 휘발해 버리고 없다. ‘어린이 사주팔자 50% 할인’ 같은 광고를 본 적 없는 이유, 어린이의 사주를 점치지 않는 이유는 아이들이 이미 이상한 걱정을 하느라 운명을 잘못 운전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걱정도 팔자라면, 그때그때 털어 버리는 단순한 자의 사주엔 복이 있나니!
<걱정은 지나가던 강아지에게 모두 줘 버렸습니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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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안 하겠습니다 |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 [에세이]
책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를 소개합니다. 손화신 작가의 '브런치북 대상' 책인데요. 세상에 이리저리 치여서 당당함을 잃었다면, 어느새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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