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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심리학이 나를 안아주었다 - 이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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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나를 안아주었다

이정미

누구에게나 부족한 점은 있다. 하지만 알아야 하는 건 강점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우리가 강점으로 시선을 돌릴 때 행복은 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질문지를 통해 자신의 강점을 살피고 더 발전하도록 돕는 방법을 제안한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부족한 사람이라 여기는 일에서 벗어나는 일이 서툴지라도, 충분히 혼자서도 해낼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의 불안은 당연하다, 사람이니까. 하지만 작가는 사람이니까 불안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성격 감정을 알아차리고 행복 습관을 쌓을 수 있는 질문을 거치다 보면, 불안의 늪에서 허둥대지 않고 자신만의 행복을 얻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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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기존 심리학의 목적은 문제의 진단이나 평가에 기초해 그 문제를 수정하거나 교정하는 것이다. 이 목표는 문제 감소에 기여할 수 있지만, 문제에만 집중하다 보면 문제가 실제보다 크게 부각되고 그 때문에 당사자들이 느끼는 자존감과 웰빙도 낮아지게 되는 부작용의 위험이 있다. 모든 에너지를 문제를 다루는 데 쓰느라 성장과 발달에 할애할 여유가 없어지고 결국 본래 잘하던 강점까지도 잘 발휘하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기존 심리학의 접근법인 ‘문제 초점 전략’의 큰 결함이라 할 수 있다.
비단 학문적 접근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도 직결된다. 이는 실험을 통해서도 입증되었다. 문제를 줄이겠다는 부정적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바람직한 일을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 비해 비관적이다. 또한 새롭고 도전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이 낮았다. 반면, 긍정적인 목표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더 잘 몰입하고, 도전적인 활동에 적극적으로 시도할 뿐만 아니라, 낙관적인 마인드로 과제에 접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적인 목표, 즉 문제를 줄이거나 회피하기 위한 목표는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 긴장, 불안과 같은 마이너스 정서, 즉 ‘부(-)적 정서’를 느끼게 한다. 부정적 목표에 집중할수록 부적 정서를 더 많이 더 자주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에너지를 떨어뜨리고 의지를 상쇄시킨다. 이러한 부정적인 목표로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결과는 기껏해야 문제를 피하는 정도다. 설사 문제를 성공적으로 피했다는 안도감을 얻게 된다 해도, 이는 다른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힘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대개는 문제를 줄이거나 피하지도 못한 채, 목표 추구 과정에서 경험한 부적 정서로 인해 문제가 더 심각해져 버리기 일쑤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목표는 결코 우리를 성취, 행복, 번영으로 이끌지 못한다.
반면, 우리가 바라는 어떤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는 긍정적 목표는 설렘, 즐거움, 기대감 등의 플러스 정서, 즉 ‘정(+)적 정서’를 느끼게 한다. 긍정적인 목표에 집중할수록 정적 정서를 더 많이 더 자주 느끼게 되며, 이는 에너지와 활력을 불러일으켜 우리의 의지를 더욱 북돋운다. 긍정적인 목표는 원하는 상태에 도달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보상이 어마어마하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해도 실패한 게 아니다. 최종적으로 이루어 내지 못했을 뿐, 목표 설정 이전에 비해 분명한 변화와 성장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긍정적 목표를 지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성공 궤도에 오른 셈이다.

사랑받을 권리는 태어나는 생명 누구에게나 선험적으로 주어지지만, 슬프게도 그것은 가능태일 뿐 누구에게나 현실태로 구현되지는 않는다. 꽃으로 피어날 가능성을 지닌 똑같은 민들레 홀씨라 할지라도 어디에 떨어지냐에 따라 실제 꽃을 피울 수도 있고, 그냥 도랑물에 떠내려가 버리거나 바위 위에 떨어져 햇빛에 말라버리기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토양 위에 떨어질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만나게 될 가족 배경, 처하게 될 사회적 상황이나 조건은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조건 위에 주어진 시간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다. 가능태를 현실태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다. 금수저로 태어났더라면 좀 더 쉬웠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또 힘든 역경이 있는 법이다.
내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더라면 정말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았어도 나름대로 의미 가득한 삶을 살 수 있었다. 남들보다 고생을 더 한다는 것이 당시에는 억울하고 힘들 일이었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긴 삶의 여정 속 한 모퉁이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라도 자신에게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면, 불안을 일으키는 원인이 무엇인지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만약 삶을 어떻게 채워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어 불안을 느낀다면 안심해도 좋다. 이것은 고차원적인 지성이 살아 있다는 신호이고, 지극히 정상적으로 지성이 활동하는 사람의 특징이다. 결코 정신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 아니다. 이런 불안은 나침반의 떨림과 같은 것으로 우리의 영혼이자 깊은 내면의 진정한 자기가 보내는 일종의 신호 같은 것이다. 어떠한 흔들림도 없이 오직 한 곳만을 고정적으로 가리키는 나침반은 고장 난, 존재 이유를 잃은 나침반이다. 나침반이란 모름지기 방위를 가리키기 위해 방향을 찾느라 끊임없이 떨리기 마련이다. 떨리지 않는 나침반이 오히려 문제인 것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느껴질 때, 절망에 자신의 마음을 온통 내어 준 뒤 얻게 되는 증상이다. 절망감에 빠진 순간,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잔해지고 어떠한 희망도 없다고 자포자기할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인지적 증상을 ‘자살 사고 suicide ideation’라고 한다. 이 위험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한 번뿐인 이 삶에서 꼭 이루고 싶은 단 하나의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나만의 가치가 무엇인지 묻는 것이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그 사실이 내가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나만의 가치와 얼마나 깊이 관련 있는지, 나를 죽고 싶게 만드는 그 고통이 내 존재 가치와 내 삶의 의미를 훼손할 정도로 강력한지 자신에게 물어보자. 그렇게 묻다 보면, 그 고통이 내 삶을 의미 없게 만들 만큼 가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당부하건대, 부정적 정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슬픔, 분노, 두려움, 억울함 등의 불쾌 정서에도 나름의 기능이 있다. 어떤 정서든 우리가 경험하고 그것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한 도움이 된다. 마치 도로 위의 신호등과 같은 것이다. 멈추라고 하는 신호등을 무시해 버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부적 정서라는 신호등에 불이 들어오면, “잠깐!” 하고 하던 일을 멈추는 게 먼저다. 상황이나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렇듯 부적 정서는 문제를 알아차리고 원하지 않는 문제 상황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결책을 찾는 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없애버려야 하는 부정적인, 좋지 않은 어떤 것이 결코 아니다.
경험한 정서가 정적 정서인지 부적 정서인지 내용을 파악했다면, 파악한 정서에 적절한 이름을 붙여야 한다. ‘뭔지 모를 감정’은 반드시 우리를 힘들게 하므로, 느낀 정서에 대해 꼭 이름을 붙일 것을 권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정서 명명하기’라고 하는데, 정서 인식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어느 누구도 과거를 지우거나 바꿀 수 없듯이, 어느 누구도 미래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다. 과거도 미래도 우리의 통제권 밖에 있으며,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오늘, 그나마도 내가 생생하게 깨닫고 느낄 수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뿐이다. 충실히 살아내는 지금 이 순간이 흘러 나의 새로운 과거가 되고, 오늘 내가 보낸 하루에 따라 오지 않은 미래의 방향도 변화된다.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철저히 나 자신으로서 온 마음을 다해 현재에 임하는 것만이 역설적이게도 과거와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일과 가족(혹은 친구나 연인)은 양립할 수 없는 게 아니다. 일하느라 가족(혹은 소중한 사람들)을 등한시하게 된다면, 지나치게 일하고 있다고 판단해도 된다. 업무 외에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면 조절을 위한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일을 할 때는 최선을 다하지만,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나를 사랑할 시간, 혹은 업무와 무관한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 나눌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피곤해서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없고 일에 지쳐 친구조차 만날 시간이 없다면, 일을 효율적으로 하고 있지 않는다는 신호다.
불필요한 부분까지 업무의 일환으로 여기며 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을 핑계로 둘러대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호감이 가는 누군가와 관계를 시작할 때를 생각해 보자. 두근거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서로를 더 알고 싶어 하고, 아무리 바빠도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며, 어쩔 수 없이 만나지 못하는 때에는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고 메시지를 남기며 쉬지 않고 소통하려고 애쓴다. 그를 만나러 가는 시간이 행복하고 설레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는 이 세상에 오직 그와 나, 단둘이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에게 집중한다.
자신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마치 누군가와 처음 시작하는 관계처럼 자기 자신을 더 알고 싶어 하고, 내면의 자기와 자주 대화하고, 바쁜 중에도 잠깐이나마 짬을 내어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어떤지 살펴야 한다. 또한 무엇을 경험했고, 그 경험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그렇게 느끼게 된 배경에는 과연 나의 어떤 바람과 기대가 있는지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시시때때로 자기 자신을 마주하며 자신과 시간을 보내고, 정성을 기울여 자기 자신과 접촉하고자 노력해야만 한다.

지금 누군가로부터 공격 받고 상처 입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자. 불쌍한 건 내가 아니라 매일매일 어두운 불평과 불만의 골짜기를 돌고 있을 바로 그 사람이라고. 남을 비난하고 흉을 보면서 살아가는 인생이란 얼마나 가여운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일 테니 말이다. 우리는 그저 그가 상처를 주려고 해도 상처 입지 않는 선택을 하면 그뿐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넓은 안목, 즉 소인의 비난에 대인의 아량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주변에 대인이라 할 만한 사람이 있는지 평소에 잘 살펴보자. 소인을 미워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느니, 차라리 좋은 예를 닮으려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편을 택하자.
타인과 건강한 관계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했으니 이제 방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 구체적 방법을 이용하는 것보다, 삶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갖추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사랑이란 서로를 지켜봐 주고 따뜻한 마음으로 그의 영혼에 시선을 주는 일이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보잘것없는 내가 생명을 가진 하나의 존재로서 살아 있음을 알아줄 한 사람쯤 갖고 싶은 것은 인간 본연의 욕구다. 그러므로 서로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여 주는 관계는 참사랑일 수 없다. 지질하기 짝이 없는 모습마저도 서로의 일면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이여야 한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잘난 모습뿐 아니라 못난 모습, 멋진 모습뿐 아니라 초라한 모습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관계가 두렵고 불안하다. 내 못난 모습을 상대가 알면 나에 대한 사랑이 식을까 두려워서 예쁘고 멋진 모습으로 자꾸만 포장하고, 언젠가 진짜 모습을 들킬까 불안해하기도 한다. 또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의 못난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하고 혹 그런 모습을 알게 되면 실망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만을 그에게서 보고자 한다면 그는 계속해서 내게 거짓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은 채 말이다. 이러한 두려움, 불안이 지나쳐 공포가 되기도 하는데, 용기와 진정성 없이 열정과 두려움만이 가득한 사랑은 불안정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두려움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진짜 모습을 바라보는 용기를 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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