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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절멸의 인류사 - 사라시나 이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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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멸의 인류사

사라시나 이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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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인 볼트도 별수없다
만약 산길을 걷고 있는데 큰곰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초원을 걷고 있을 때 표범과 마주친다면? ‘달려서 도망쳐’라는 조언은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도망쳐 봤자 곧 붙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는 속도가 느린 우리는 애초에 달려서 도망치는 걸 포기하게 된다. 육식 동물 중에서 달리는 속도가 느린 편에 속한다는 사자도 올림픽 100미터 달리기에서 금메달을 딴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게 달린다. 하물며 뚱뚱한 하마조차 우사인 볼트와 비슷한 속도로 달릴 수 있다.

우리에겐 무기가 필요없었다
종종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게 된다. 수사를 맡은 경찰은 범행에 사용되었을 흉기를 찾는다. (실제 수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텔레비전 안에서는 그렇다.) 왜 흉기를 찾을까? 그것은 살인을 위해서는 대개 흉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몸에는 살인을 위한 흉기가 없다. 만약 엄니가 있다면 흉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엄니라는 흉기를 버렸다.
약 700만 년 전에 침팬지류와 인류는 분리되었고 서로 다른 진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침팬지류는 흉기를 계속 갖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인류는 흉기를 버렸을까? 그것은 인류가 서로 위협하거나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쩌면 우리는 태어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중요한 것은 개코원숭이였을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도 매우 빠르게 달리는 개코원숭이 때문에 속을 썩였을 것이다. 민첩하게 돌아다니는 개코원숭이에게 자주 먹을 것을 빼앗겼을 것이다. 특히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는 재빠르게 움직이는 개코원숭이에게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개코원숭이를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들이 먹지 않는 단단하고 먹기 힘든 식물을 먹어야 하는 인류가 생겼고 그것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와 같은 강인한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를 단순화해서 아프리카의 초원에 사는 영장류는 개코원숭이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 호모 에렉투스밖에 없다고 해 보자. 건조화가 진행되는 환경에 잘 적응한 순위를 매겨 보면 첫 번째가 개코원숭이, 두 번째가 호모 에렉투스, 세 번째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생존과 멸종의 경계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가 된다. 만약 아프리카의 환경이 좀 더 나빠져 경계가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이로 올라갔다면 당신과 나는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진화에는 우연과 필연이라는 양면이 있는데 우연, 즉 운명에 맡겨야 하는 부분도 상당하다.

돌고래와의 승부에서 이긴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인류는 약 700만 년 전에 침팬지류와 갈라졌다. 그 무렵 뇌화 지수는 약 2.1이었다. 당시 가장 뇌화 지수가 높았던 동물은 다름 아닌 돌고래였다. 돌고래의 뇌화 지수는 약 2.8이다. 그 당시 인류는 지구에서 가장 뇌가 큰 동물이 아니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시대가 되어서도 뇌화 지수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호모속이 나타나면서 뇌가 커지기 시작했다. 호모 에렉투스에서 돌고래를 추월했다. 뇌 크기는 변이가 상당해서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지만 대개 150만 년 전쯤의 일이었다. 그리고 현재 사람의 뇌화 지수는 약 5.1이다.
지구에서 인류가 가장 뇌화 지수가 높은 동물이 된 것은 불과 150만 년 전으로, 최근의 일이다. 그 이전 수천만 년 동안 뇌화 지수가 가장 높았던 건 늘 돌고래였다.

인류는 가장 큰 뇌의 주인공이 아니다
과거 인류의 뇌는 컸다. 아니 너무 컸던 것일지도 모른다. 네안데르탈인의 뇌는 약 1550cc였고 1만 년 정도 전의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약 1450cc였다. 참고로 현재 호모 사피엔스는 약 1350cc이다. 시대가 지나면서 음식 사정이 개선되었기 때문에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뇌가 작아진 이유는 뇌에 제공되는 에너지가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아마 이렇게 큰 뇌는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문자가 발명된 덕분에 뇌 바깥에 정보를 둘 수 있게 되면서 뇌 속에 기억해야 하는 양이 줄어들었기 때문일까? 수학과 같은 논리가 발전해서 적은 노력으로 답을 찾게 되면서 뇌 속의 사고가 절약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옛 인류가 했던 사고의 다른 형태를 우리가 잃었고 그만큼 뇌가 작아진 것일까?
상상에 그칠 수밖에 없으나, 지금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옛 인류는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일상이나 자손을 늘리는 것과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진화 과정에서 잃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네안데르탈인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 눈동자에 빛나는 지성은 아마 우리의 그것과는 다른 형태의 지성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야기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네안데르탈인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지능보다 중요한 것은 번식력이다
우리는 지능이 뛰어난 쪽이 승리한다는 뿌리 깊은 편견을 갖고 있다. 분명 다른 인류보다 우리의 머리가 더 좋았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네안데르탈인을 살펴보면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살아남은 이유들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인류는 예전부터 협력적인 사회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특히 호모 사피엔스는 고도로 뛰어난 언어를 발달시켰고 그를 통해 이전의 인류보다 훨씬 뛰어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다른 인류보다 훨씬 유리해진다. 그렇지만 과연 그뿐일까?
이미 살펴본 것처럼, 결국 생물의 생존과 멸종은 자손의 규모에 달려 있다. 따라서 그 원인이 무엇이었든 네안데르탈인의 아이들 수보다 우리 아이들의 수가 많았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이 많았을 수도 있고 태어난 아이가 많이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한 명의 여성이 많은 아이를 낳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서든 생존할 수 있는 생물이라는 점이다. 추워도 더워도 우리는 태연하게 살 수 있다. 의복과 같은 문화적인 궁리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지구는 넓지만, 그 크기는 유한하다. 유한한 지구에서 계속 인구를 늘려 가기 위해서는 여러 환경에서 견디며 살 수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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