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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다산의 마지막 습관 - 조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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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마지막 습관

조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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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朝益暮習 小心翼翼 一此不懈 是謂學則
조익모습 소심익익 일차불해 시위학칙
다산의 이 말은 외면의 엄정함을 말하고 있다. 내면을 잘 갖췄다면 겉으로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수양은 깊은데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칠어 보인다. 하지만 내면은 잘 갖춰져 있지 않은데 겉만 번드르르한 사람은 스스르의 삶마저 기만하게 된다. 겉과 속이 잘 어우러져야 어른다운 어른이라 할 수 있다. 군자의 모습이 꾸며서 된 것이 아닌 것처럼 다산이 아들들에게 내린 말도 모습을 꾸미라는 가르침이 아니다. 스스로의 삶이 배움이며, 일상이 곧 배움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행하는 모습 자체다. 이루고 싶은 경지가 있다면 하루하루의 충실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런 모습이 누적되고 쌓이면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를 만들 수 있다. 평범한 일상들이 쌓여 비범해졌을 때, 우리는 ‘위대하다’고 한다.

_〈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모두 나의 스승이다〉 중에서

凡內外 鷄初鳴 咸?漱 衣服 斂枕? 灑掃室堂及庭 布席 各從其事
범내외 계초명 함관수 의복 렴침점 쇄소실당급정 포석 각종기사
아침에 일어나 귀찮음을 떨치고 침대를 정리한다. 사소한 일이지만 나는 하루의 시작부터 이겨냈다. 첫 번째에서 이겼다면 두 번째에서도 이길 것이고, 그렇게 이겨낸 경험이 쌓이면 스스로를 이기는 것은 습관이 된다. 사소한 지점부터 차근차근 돌아보며 해법을 찾아나간다면 고난을 이겨낼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그 시작은 바로 자신의 삶을 단순화하고, 옳지 않은 것은 중단하고, 주어진 일상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공자가 말했듯이 그 어떤 높은 이상도 땅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은 물론 온 집안이 부도덕한 사람이 사회의 정의를 부르짖는다면 우스꽝스러워 보일 뿐이다. 아무리 높은 이상도 그 시작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가는 일상이다. 일상에서 증명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인정받을 수 없다.

_〈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책상부터 정리하라〉 중에서

孔子於鄕黨 恂恂如也 似不能言者 其在宗廟朝庭 便便言 唯謹爾 朝 下大夫言 侃侃如也 與上大夫言 誾誾如也
공자어향당 순순여야 사불능언자 기재종묘조정 변변언 유근이 조 하대부언 간간여야 여상대부언 은은여야
우리는 물 흐르듯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전하는 능력을 부러워하곤 한다. 하지만 잡다한 지식과 전문용어를 남발하며 과시하듯 말하는 것은 진정한 말의 능력이라고 할 수 없다. 굳이 복잡하게 표현하거나 외국어를 섞어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에게 공자는 “말이란 뜻을 전달하면 그만이다(사달이이의 辭達而已矣)’라고 가르쳤다. 꾸밈은 있으나 뜻은 사라져버린 말을 안타까워한 것이다. 말해야 할 때 하고, 말하지 않아야 할 때는 자제하고, 숨기는 것 없이 진심으로 말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행동도 마찬가지다. 당당하면서도 나설 때와 나서지 않아야 할 때를 잘 구분해서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 말이든 행동이든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_〈말은 뜻을 제대로 전달하면 족하다〉 중에서

曾子曰 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有若無 實若虛 犯而不校 昔者 吾友?從事於斯矣
증자왈 이능문어불능 이다문어과 유약무 실약허 범이불교 석자 오우상종사어사의
사람인 이상 누구에게나 부족한 면이 있고 누구든 저마다 한계가 있다는 사실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뛰어난 사람은 자신은 물론 타인의 한계도 인정한다. 하지만 상대의 잘못을 비난하는 데 열중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논어》 에 실려 있는 “군자는 남의 장점을 키워주고 단점은 막아준다. 소인은 이와 반대로 한다”가 말해주는 바와 같다. 다산이 말하는 대인관계의 해답도 같다. 반드시 먼저 베풀 수 있어야 한다고 두 아들을 가르쳤다. “남이 먼저 내게 다가오기를 바라는 것은, 너희들의 오만한 근성이 아직도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는 적용하지 못하는 엄격한 기준을 타인에게 들이대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 것은 수양의 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오늘을 품고자 하는 자는 어제의 실수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

_〈누구나 지옥을 걷고 있으니 타인에게 관대하라〉 중에서

勿以惡小而爲之 勿以善小而不爲
물이악소이위지 물이선소이불위
장괴애가 숭양현의 현령을 지낼 때 관아의 창고지기가 돈 한 푼을 훔치는 현장을 잡았다. 장괴애가 창고지기를 장형에 처하자, 창고지기는 “이까짓 동전 한 닢으로 매질을 하다니요?”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자 장괴애는 “하루에 돈 한 푼이 천 일이면 천 푼이 된다. 노끈으로 나무를 자를 수 있고, 낙숫물이 댓돌을 뚫을 수 있는 것과 같다”라고 하며 그를 처벌했다. 《소학지언》 에서 다산은 “악이 작다는 이유로 행해서는 안 되며 선이 작다는 이유로 행하지 않아서도 안 된다는 경계는 《주역》 〈계사전〉에서 나왔다”라고 그 출처를 밝히기도 했다. 일상에서 사소한 악과 마주했을 때 ‘착한 사람이 되어라!’라는 너무나 당연한 도리를 떠올리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악은 너무나 쉽고 흔하다. 그러나 악당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_〈악은 ‘평범함’과 ‘사소함’이라는 가면을 쓴다〉 중에서

某自守官以來 常持四字 勤謹和緩
모자수관이래 상지사자 근근화완
황상이 처음 다산을 찾아왔을 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에게는 세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너무 둔하고, 앞뒤가 꽉 막히고, 사리분별을 못합니다.” 그러자 다산은 이렇게 가르쳐줬다. “배우는 사람에게는 큰 병통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한 번 보고 척척 외우는 사람은 그 뜻을 음미하지 않아 금세 잊어버린다. 둘째, 제목만 던져 줘도 글을 짓는 사람은 똑똑할지언정 글이 가볍다. 셋째, 한 마디만 해도 금세 알아듣는 사람은, 곱씹지 않아 깊이가 없다.” 당장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또 단기적인 실적에 집착해서 초조해할 것도 없다. 처음에는 반짝반짝 빛나던 인물들이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는 까닭은 모두 초조함과 조급함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눈앞의 성과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기가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면서, 꾸준히 자신을 연마하는 사람이 결국에는 이긴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그리고 꾸준함이다. 옳은 방향으로 쉬지 않고 갈 수 있다면 결국 일은 이루어진다.

_〈느리기에 방향이 확실하고 무겁기에 발자국이 깊다〉 중에서

다산이 제제와 아들에게 이와 같이 가르침을 내릴 수 있었던 까닭은 자신의 삶이 가르침과 한 치의 어긋남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다산이 가진 진정성을 부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면의 충실함은 엄정한 겉모습이 뒷받침되어야 하듯이, 이루고 싶은 큰 꿈이 있다면 하루하루의 충실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일상은 단지 하루만의 모습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쌓아가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누적되고 쌓이면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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