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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좋아요 살인시대 - 우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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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살인시대

우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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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정말 나라가 바뀌어야 당신들이 행복해질 거라 생각하는가? 당신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북유럽에 가더라도 그런 삶의 자세로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는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백번 양보해 이 나라가 그렇게 살기 막막한 나라라면, 거기에 맞춰서 자신들의 기준을 바꿀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나라는 후진국인데 왜 당신은 선진국의 삶을 사려고 하는가? 나는, 피해의식과 자기 연민에 젖어서 여러 사람에게 불행을 전파하며 주위 사람들을 함께 끌어내리려 하는 몹쓸 중산층들이 참 밉다.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 나라 탓, 사회 탓, 남 탓하며 잔에 물이 반밖에 없다고 징징거리고 있다.

묻고 싶다. 그 ‘소확행’이랍시고 하는 일들이 정말 행복을 가져다주었는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얻는 신기루 같은 ‘좋아요’처럼 아무 의미 없이 사라지는 만족감들 아니었는지. 정말 행복해지고 싶다면 남들 시선에 아랑곳않고 스스로 홀로 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개인으로 각성한 사람이 많아져야만, 한국 사회는 이 자해적 집단 우울증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 불행의 쳇바퀴에서 빠져나와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행복을 좇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진정으로 빈다. 소소할 필요도 없다.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곧 가장 ‘확실한 행복’이다.

저항하지 않으면 사람은 시스템에 의해 너무나 쉽게 휩쓸린다. 시스템에 의해 모든 사람은 괴물이 될 수도 있고 노예가 될 수도 있다. 스탠퍼드 감옥도, 군대도, 나아가 국가, 정부, 사회도 모두 이러한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언제나 개개인을 침식한다. 특히나 권력과 통제가 주를 이루는 시스템일수록 개인성은 빠르게 배제된다. 그렇기에 개인에 대한 시스템의 영향, 즉 통제와 간섭, 개입 등은 최소화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시스템이 개인을 통제하고 부양하려고 하면 사람들의 개인성은 사라지게 되고, 괴물이나 노예가 탄생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정의롭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군중은 위험하다. 그러나 이는 집단 심리, 군중 심리의 습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널리스트들과 지식인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군중 속에서 꿈틀거리는 괴물을 객관성과 합리성으로 억누르는 것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의무를 저버리고 반이성 집단주의의 시류에 편승하는 순간, 분노를 배설하고 싶은 군중의 폭주가 시작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자. 자기 자신에게 당당하자. 자기 자신으로 살자. 타인의 시선 때문에 성형수술이나 사진 보정으로 자기 자신을 부정할 필요 없다. 마찬가지로 꾸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특정 집단의 눈치를 보며 자기 자신을 부정할 필요도 없다. 탈코르셋한다는 집단의 가치에 매몰되지 말고, 자기 자신의 판단대로 오롯이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자. 그게 진정한 탈코르셋이요, 자유다. 화장품을 갖다 버리고 사진을 찍는다고, 숏컷을 하고 셀카를 찍어 올린다고, 인터넷에 탈코르셋 선언을 한다고 자유가 오지는 않는다. 자유는 소속감이 아니라 홀로 서려는 삶의 태도니까.

선진 정치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답답한 ‘선악 프레임’부터 깨야 한다. 기득권, 적폐 세력, 일베충, 친일파, 기타 등등 온갖 꼬리표를 붙여가며 상대의 주장을 들어보지도 않고 무작정 까내리기 전에 일단 한 번 들어보라. 너도 나도, 우리도 저쪽도, 기본적으로는 ‘더 나은 나라’,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정치’ 한번 만들어보자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신들이 불의에 분노하고 정의를 원하는 것처럼, 또 당신들이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고자 하는 것처럼, 당신들이 ‘악’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똑같이 숭고한 정의감에 의해 문제 의식을 제기하고 있다.

성적 매력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매력을 정확히 알아야 이를 표현하고, 어필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섹스 어필은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를 전제한다.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고 알아가는 것, 이 얼마나 건강한 행위인가. 자신의 매력적인 모습들을 찾아가며 자존감이 생기고, 자신에 대한 애정이 생기며,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시야가 생긴다. 그렇게 자긍심과 자신감을 얻게 되면, 어딜 가든 자신만의 색채를 유지하며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섹시한 사람’이 된다.

세상은 애당초 불공평한 것이다. 공평해질 수 없다. 항상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 ‘운’. 그것은 바로 세상이 기회를 분배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진 남들을 바라보며 분노하거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이용하여 삶을 이끌어나가거나, 주어진 것들을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이에 순응하며 패배감과 자기 연민에 빠진 노예 같은 인생을 살 것인가, 가진 것들을 이용하여 성취를 이뤄가며 스스로 삶을 이끌어가는 주인 같은 인생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다.

결국 중요한 건 자긍심과 자존감이다. 자기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특정 다수로부터의 칭찬에서, 관계에서, 시선에서 자신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언젠가 자기가 만들어 낸 콤플렉스에 잡아먹힐 수밖에 없다. 본인이 숨기고 있는 결핍에 대해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으니까. 내 삶에 떳떳하고 내가 살아온 발자취에 긍지를 가지는 것이 홀로 서는 인간을 만든다. 그런 사람들만이 타인을 매료시키는 카리스마를 내뿜는 것이다. 우리가 이토록 열심히 살려는 이유는 나 자신으로부터 떳떳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이슈가 창조되고 소비되고 대체되었는가. 매번 그림자와 같은 문제와 위기에 의해 사회 전체가 떠들썩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여론의 관심은 금세 새로운 이슈로 떠나가버리고, 뻔뻔스러울 정도의 무관심한 태도로 기존의 문제들을 외면한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사실은, 이러한 소모적인 이슈들에 의해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서가 피폐해지고, 경제가 침체되고, 살만한 나라가 마치 지옥처럼 느껴지게 된다는 것이다. 매번 축제를 벌이는 아큐들과, 굳이 문제를 만들어서 장사를 하는 기레기들과, 시끄러울 때마다 등장해서 호시탐탐 권력을 탐하는 정치꾼들이 바로 소시민들의 진짜 적이다.

이 책은 무난한 내용이 아니다. 누구든 이 책을 읽고 나면 온갖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당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일 것이며, 당신의 작품을 구석구석 파헤치도록 강요할 것이다.

기억에 남는 문구

당신들만 정의로운 게 아니다.